지금까지의 삶이 내 기준에서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해서, 내일도 그 궤도가 그대로 이어지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삶은 습관의 관성으로 굴러가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한 사람의 선택이 궤도를 비틀어 놓는다. 사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강요받는다. 머뭇거림도, 미루기도,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모두 선택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결정의 연속이자 책임의 축적이다.
이 연속과 축적 속에서 인간은 언제든 미끄러질 수 있다. 성서가 전하는 최초의 이야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앞에서 망설이다가 결국 손을 뻗은 장면은 한 번의 과오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매 순간 맞닥뜨리는 내적 풍경이다. 그래서 경고는 간결하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12). 자신감은 필요하지만 자만은 금물이다. 잘 서 있다고 느끼는 바로 그때, 우리는 가장 쉽게 방심한다.
그렇다면 목표는 무엇인가. 무결점의 삶이 아니라, 괜찮게 보낸 시간의 지분을 늘리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넘어질 것이다. 게으름에 젖고, 분노에 흔들리고, 원망과 부정적 사고에 갇힐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라는 주식이 우리 손에 배당될 때마다, 나는 가능한 많은 몫을 ‘괜찮게 보낸 시간’으로 사들이고 싶다. 이 지분은 스스로의 영혼을 단단하게 하고, 타인에게 은근한 덕이 되어 번져간다.
그 지분은 마치 작은 씨앗 같다. 눈에 띄지 않게 심겼다가도, 계절이 바뀌면 어느 날 내 삶의 정원 한쪽에서 조용히 꽃을 피운다.
그 지분은 어떻게 쌓이는가. 먼저 이성과 영을 깨우는 일상이 필요하다. 집중하고 몰입하며, 생산적이고 때로는 희생적인 노동으로 사랑을 실천한다. 내게 주어진 신체적·정신적 자원을 한껏 사용해 잠재력을 현실로 끌어올린다. 깊이 책을 읽고, 고요히 성찰하며, 기도 속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글로써 생각을 붙든다. 기록은 사유의 흔적이 아니라 성장의 지렛대다. 적어두면 보이고, 보이면 고칠 수 있다. 또한 아내와 가족, 지인과 진솔한 교감을 나누는 시간을 꾸준히 확보한다. 이런 시간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하루의 결산표에서 ‘괜찮음’의 비율은 자연히 높아진다.
물론 실패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회복의 속도다. 넘어졌을 때 오래 눕지 않는 습관, 잘못을 변명하지 않고 고백하는 용기, 상처를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 절제. 회개는 죄책감의 웅덩이에 빠지는 일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어 다시 걷기 시작하는 결단이다. 인간의 품위는 무오류에서 나오지 않는다. 넘어지되 오래 눕지 않는 태도, 더디더라도 뒤로 걷지 않는 성실에서 나온다.
나는 안다. 내일의 어둠은 오늘의 결심을 시험할 것이다. 그러나 시험이 오는 것과 그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선택은 훈련된다. 작은 순간의 정직, 사소한 약속의 준수, 눈앞의 유혹을 한 번만 더 미루는 절제가 근육을 만든다. 이렇게 길들여진 선택은 위기의 문턱에서 우리의 본능처럼 작동한다. 그때 ‘괜찮게 보낸 시간’의 지분이 나를 지켜 준다. 어제 쌓아 둔 작은 선들이 오늘의 큰 추락을 완충한다.
신앙의 언어로 말하자면, 나는 언젠가 하나님을 뵐 것이다. 그 자리에서 완벽한 성과를 내놓을 자신은 없다. 다만 분투의 자세,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려 애써 온 습관, 작은 선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끈기, 사랑을 일로 번역하려 노력한 흔적들이 평가받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결과의 화려함만이 아니라, 방향의 정직성과 걸음의 지속성을 보신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의 몫을 산다. 한 시간의 집중, 한 페이지의 독서, 한 줄의 기도, 한 단락의 기록, 한 사람과의 좋은 대화. 이렇게 하루가 저물면 나는 조용히 묻는다. 오늘의 결산에서, ‘괜찮게 보낸 시간’의 지분을 조금이라도 늘려 두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 날이 많아질수록, 넘어짐은 줄지 않더라도 삶의 품격은 오르고, 두려움은 줄고, 평안은 깊어진다.
내일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늘의 인간다움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나는 오늘도 한 시간을 정직하게 쓰고, 한 걸음을 성실하게 내딛는다. 그 작은 초과가 결국 나를 만든다. 그리고 언젠가, 그 지분이 충분히 쌓였을 때, 넘어짐의 기록들 사이로 하나의 궤도가 또렷이 드러날 것이다. 내가 누구였고, 무엇을 사랑했는지 말해 주는 궤도. 그 궤도가 곧,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이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