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한 성찰

by 신아르케

셰익스피어는 인생을 연극이라 했다. 사람은 무대 위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연기가 본질을 압도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아와 멀어질 수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직면한 위기 역시 이와 닮아 있다.

한국교회는 본래 공동체적 신앙을 위해 모인 공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담임목사라는 개인에게 과도한 권한이 집중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목회자의 해석과 결정이 교회의 색깔과 방향을 좌우하고, 회중은 순종이라는 이름 아래 목소리를 잃어버린다. 민주적 장치가 존재한다 해도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결국 한 사람의 의지가 교회의 기류를 지배한다.

신앙의 표현은 본래 다양하다. 어떤 이는 조용히 눈물로 기도하고, 또 다른 이는 찬송 속에 몸을 흔들며 환희를 드러낸다. 문화와 기질에 따라 기도의 형태, 찬양의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는 이러한 다양성이 존중받기보다는 갈등의 원인이 되고, 종종 담임목사의 취향이 표준처럼 강요된다. 영적 감수성의 차이를 포용하지 못하는 구조가 신앙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목회자 자신이 ‘목자’라는 상징적 지위에 갇힐 때다. 성도들은 “우리 목사님”을 자랑하며 인격적 권위를 덧씌우고, 목회자 스스로도 자신이 특별히 구별된 존재라는 착각에 빠진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허물이 아니라, 구조적 권위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목회자의 가정과 자녀들까지 과도한 평가와 기대 속에서 고통받는 현실은 그 부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설교의 구조 또한 교회의 권위 편중을 심화시킨다. 설교는 본래 한 사람의 깊은 묵상과 해석을 나누는 자리다. 그러나 이것이 공동체 신앙을 규정하는 유일한 통로가 될 때, 회중은 수동적 청자로 전락하고, 해석의 권위는 한 개인에게 집중된다. 최소한의 견제 없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는 때로 영적 권위라는 이름으로 권력화된다.

나는 여기서 묻고 싶다. 진정한 목자는 누구인가?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참 목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나머지는 모두 같은 양일뿐,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 위에서 서로를 돕고 격려하는 동행자다. 목사, 장로, 권사, 전도사라는 직함은 단지 기능을 구분하기 위한 이름일 뿐, 결코 신앙적 서열이나 우월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는 누구도 계급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목회자는 권위를 내려놓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종의 자세로 낮아져야 한다. 설교는 권위적 선포가 아니라 겸손한 나눔이 되어야 하며, 회중은 단순한 청중이 아니라 말씀을 함께 해석하고 실천하는 주체적 공동체로 세워져야 한다. 교회는 성도 각자가 직접 성경을 읽고, 삶의 자리에서 신앙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돕는 훈련의 장이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회복은 결국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 달려 있다. 우상화된 구조와 권위주의적 문화를 벗어던지고, 모든 성도가 평등하게 말씀 앞에 서는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 목회자는 앞에서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동행자여야 한다. 겸손과 섬김이 교회의 제도와 문화 속에 뿌리내릴 때, 한국교회는 다시금 빛을 회복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