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고결한 중독
나는 오늘 글쓰기가 주는 유익에 대해 사유해보고자 한다.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이며, 그 사유의 결과물을 정제하는 수단으로 글쓰기를 사용한다. 글쓰기는 곧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며, 무의식 속 감정과 사고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행위다.
먼저, 영어 단어 'conceive'를 떠올려보자. 이 단어는 중등 교육 과정에서 반드시 익혀야 할 필수 어휘다. '생각하다'라는 의미 외에도 '임신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많은 학생들이 후자의 의미를 간과하곤 한다. 나는 종종 학생들에게 그 어원을 설명해 주며 단어의 깊이를 전한다.
"conceive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단어야. 고대 그리스인들은 생각이란 마음속에 오래 머물면, 결국 좋은 개념을 낳는다고 믿었지. 그래서 conceive의 명사형은 concept이야. 사유가 깊을수록 명확한 개념이 생긴다는 뜻이지. 이 개념의 생성은, 여인이 아이를 잉태하고 해산하는 과정에 비유되곤 해."
이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단어를 단순히 외우는 것을 넘어, 그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나 역시 글쓰기를 이와 같은 잉태와 해산의 은유로 받아들인다. 긴 사유의 시간을 통해 언어의 태아를 마음속에 품고, 고통의 출산을 거쳐 문장으로 태어난 생각의 결실을 받아 안는 일. 그것이 곧 글쓰기의 본질이다.
이제 나는 글쓰기의 행위를 '중독'이라는 관점에서 성찰해보려 한다. 중독은 대개 부정적으로 여겨진다. 술, 마약, 성, 음식 등 육체적 욕망에 얽매인 중독은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파괴한다. 그러나 영적이고 정신적인 영역에 몰두하는 중독은 우리를 치유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나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어떤 형태의 중독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 생각한다. 마음은 항상 어떤 것으로 채워지기를 원하며, 완전한 진공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기가 지구의 대기를 채우듯, 우리의 내면도 반드시 무언가로 채워진다. 그렇기에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중독 대상을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낮은 차원의 욕망에 중독되기보다, 더 고상하고 고귀한 정신적 활동에 몰입하는 삶은 우리를 더욱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만든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에 중독되는 일은 매우 가치 있는 선택이다.
글쓰기는 창조적 쾌감을 제공한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여러 차례의 퇴고를 통해 정제된 문장을 마주했을 때의 기쁨은 순수하며 강력하다. 이는 정신적 수축과 이완의 과정이며, 감정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집중의 경험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영감을 얻는 수동적 상태에서 출발해, 능동적인 창조의 절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한 후 탄생한 한 편의 글은, 더없이 아름다운 결실이 된다. 지금의 나에게 이보다 더 순수하고 강렬한 기쁨은 없다.
그러나 이 고결한 기쁨은 누구에게나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글쓰기라는 고통스러운 잉태와 출산을 반복하며, 그 즐거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나는 믿는다. 누구든 삶의 고귀한 의미를 갈망한다면, 글쓰기라는 길 위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결국 글쓰기는 자기를 향한 성찰이자, 세상을 향한 선한 기투이며, 영혼을 건강하게 하는 가장 고결한 중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