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자유를 품은 자녀들

아이를 믿는다는 것 – 홈스쿨링 10년, 우리의 철학적 중간 평가

by 신아르케

‘교육’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빚어가는 예술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의 교육을 공교육에 맡기기보다, 직접 삶 속에서 체화된 철학을 토대로 키워보자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 선택이 결코 쉽지 않았고, 수많은 우려 속에서 시작된 실험이었지만, 지금 나는 두 가지 분명한 기준에서 이 교육의 결실을 ‘성공’이라 말할 수 있다.


첫째, 신이 주신 이성을 스스로 활용할 줄 아는가?

둘째, 주어진 자유와 시간을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이 두 기준은 시간과 함께 우리 부부의 교육철학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우리 아이들의 삶을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이다.


우리 첫째 딸은 대학에 조기 입학해, 또래보다 한 발 먼저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고 있다.

춤을 좋아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표현해 온 그녀는 당연히 대학에서도 댄스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러던 중, 축제 무대에 서기 위한 집중 연습 일정이 발표됐다. 주 3회, 저녁 두 시간씩. 누구보다 간절했던 그녀에게 이건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꿈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무대에 서는 대신 그녀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선택이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라는 점에서, 나는 놀라움과 존경을 동시에 느꼈다.

그녀는 욕망이 허락되었음에도, 그것이 자신의 체력, 통학 거리, 학업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이성적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지금의 우선순위를 스스로 정했다.


이것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다. 욕망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스스로 아는 힘,

그리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다.


둘째 딸은 외적으로 조용하지만, 내면의 질서는 강단이 있다.

정해진 규칙이 생기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 틀을 유지하려는 안정성과 성실함이 있다.

그녀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그냥 보리(우리 집 강아지)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아.”

사춘기의 한복판에서, 그렇게 자신의 이성을 자각한 순간, 아이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날 이후 그녀는 스스로 학습 계획표를 짜고, 매일 아침 8시에 가방을 메고 스터디카페로 향한다.

문제집을 고르고, 공부 방법을 시도하고, 실패하면 바꾸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자기만의 커리큘럼을 만들어간다.

학원을 보내주겠다는 제안에도 그녀는 단호히 말했다.

“스스로 할 수 있어. 그리고 이게 더 좋아.”


나는 그 모습에서, 단순히 성실함을 넘어서 삶을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는 성숙함을 보았다.

중학교 3학년이라는 나이에, 이처럼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힘을 지닌 아이를 보는 것은 부모로서 큰 기쁨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통제하거나 조종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이성이 빛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려 했다.

때로는 불안했고, 때로는 실험 같았지만, 지금 이 아이들의 모습은 말해준다.

‘교육이란 결국,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일’ 임을.


이제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시간이다.

그들이 설사 실패하거나 넘어지더라도, 우리는 확신한다.

그들은 다시 일어설 줄 아는 힘, 스스로를 조율할 줄 아는 이성,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 속에서 책임질 줄 아는 성숙함을 가졌다고.


아이들이 있어 우리의 철학은 현실이 되었고, 그 현실은 지금도 아름답게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