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기록, 영혼을 설득하는 연습

by 신아르케

매일의 기록, 영혼을 설득하는 연습

우리는 왜 매일 글을 써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철저하고 깊이 있는 철학적 사고는, 우리 삶에 지대한 유익을 가져다준다. 한 가지 인생의 원리를 스스로 철저히 납득하면, 이후에는 반복된 내적 갈등이나 사고의 우회 없이 삶의 중요한 장면들에서 더욱 단단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성이 납득한 명제는 자아를 설득하고, 자아는 순종한다. 그리하여 삶은 에너지 효율적으로 정리되고, 결단력과 목적 지향성은 배가된다.


그렇다면 왜 하필 '글쓰기'인가?


인간은 동물과 달리 단순한 육체적 자극을 넘어서,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의미화하는 존재다. 먹고, 자고, 배설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행동 자체는 다른 동물들과 다르지 않지만, 그 경험을 되돌아보고 의미를 묻고 성찰하는 능력은 인간만의 특권이다. 그러나 이 능력도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성찰이 없는 삶은 동물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진정 인간답게 살기 위해 우리는 경험한 것들에 대해 ‘멈춰서 생각’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찰의 결과를 ‘글’로 정제해 낼 수 있을 때 우리는 한층 더 고양된 의식의 차원으로 나아간다. 글쓰기는 막연한 통찰을 명확한 개념으로, 감각적 인상을 논리적 언어로 변환하는 고도의 정신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글쓰기 훈련을 매일 반복함으로써, 우리는 삶의 소소한 경험 속에서도 철학적 명제를 길어 올릴 수 있다. 이것은 나무가 깊은 뿌리를 내려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과 같다. 견고하고 아름다운 존재로의 성장은 시간의 누적과 훈련의 집약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오직 성실한 연습을 통해 형성된다.


또한 나는 글쓰기의 사명을 '선지자적 역할'과 연결해 보고자 한다. 고대 성경의 선지자들은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으면 반드시 그것을 말이나 글로 남겼다. 그들에게는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때때로 삶 속에서 아름답고 위대한 생각을 만난다. 나는 그러한 생각이 우연히 떠오른 것이 아니라 신이 인류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인간의 마음에 불어넣은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 영감은 찰나적이다. 의지를 다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따라서 글쓰기는 이 신적인 순간을 붙들고, 인간의 언어로 구체화하는 행위이다. 글 쓰는 사람은 축복받은 동시에 책임을 부여받은 존재다.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방종이 아니라, 받은 만큼 정직하게 쓰려는 윤리적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신에게 진 빚을 진실한 노동으로 갚아야 한다. 이 진실한 노동이 바로 ‘매일의 글쓰기’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닌, 시대를 읽고 방향을 제시하는 사유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창조이며, 인간 존재의 존엄을 증명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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