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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정의 사이에서

관계의 균형을 찾아서

by 신아르케

인생의 모든 관계에 똑같은 태도를 적용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항상 친절해야 한다”는 말은 옳고 아름답지만, 모든 상황의 정답일 수는 없다. 때로는 사랑과 평화가 관계를 살리고, 또 다른 순간에는 정의와 자유, 평등이 공동선을 지켜야 한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맞추어 최선의 선(善)을 선택하는 일이다.


사람들 가운데는 마음의 평화를 삶의 최우선 가치로 두는 이들이 있다. 물론 내적 평화는 소중하다.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다면 행복도 무의미하다. 그러나 평화만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문제가 생긴다.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거나 갈등을 미루다 보면, 작은 문제는 더 커지고, 결국에는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진정한 평화는 갈등을 피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의와 왜곡을 바로잡은 뒤에야 얻어질 수 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는 겉으로는 온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정체시키거나 조직을 병들게 할 수 있다. 때로는 평화를 지키려는 마음이 사실은 불편한 상황을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회피적 습관일지도 모른다. 그런 평화는 허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첫째, 지금 상황에서 드러난 사실은 무엇인가?

둘째, 충돌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평화인가, 정의인가?

셋째, 지금의 선택이 당장의 편안함을 주는가, 아니면 장기적으로 옳고 건강한 결과를 낳는가?


이 기준을 붙들고 판단할 때, 단호해야 할 순간에는 단호해야 한다. 다만 그 방식은 정중하되 흔들림 없는 태도여야 한다. 존중을 담되, 원칙과 경계는 분명히 세워야 한다.


물론 이러한 태도를 몸에 익히는 길은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기질이 있고, 그 기질은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의식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친절이 앞서는 사람은 경계를 세우는 법을, 강경한 성향의 사람은 경청과 유연함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훈련을 거듭해야만 균형 잡힌 인격이 자라난다.


나는 신앙인으로서 이렇게 믿는다. 사랑과 관용이 넘치면서도 불의 앞에서는 용감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이 최선의 선인가?” 그 질문을 놓지 않고 훈련해 간다면, 언젠가 본능처럼 직관적으로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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