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쓴 글은 그 사람을 온전히 드러낼까.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렇지 않다. 십 년 지기라 해도 겉인사만 나누는 사이라면, 그가 아는 것은 나의 표면적 모습에 불과하다. 반대로,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더라도 내 글을 읽은 이들은 내가 어떤 가치관과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훨씬 깊이 알 수 있다. 진솔한 글은 일종의 정신의 나체와도 같다.
물론, 글이 꾸밈없이 쓰였을 때만 그렇다. 거짓과 기교가 걷힌 글만이 진실한 나를 드러낸다. 그래서 지인들이 내 글을 읽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서 더 대담하게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이 곧 나의 전부는 아니다. 내가 쓴 문장 속에는 종종 내가 되고 싶은 나가 들어 있다.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지금의 나는 그 이상에 늘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이 글을 헛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글은 내가 나아갈 방향을 비추는 불빛이다.
말과 삶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다. 설교는 유려하지만 삶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이를 본 적이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문장을 쓴다고 해서 곧 그 사람의 인격이 아름답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간극을 부끄러움으로만 남길 것인지, 아니면 삶의 과제로 삼을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나는 후자를 택하고 싶다. 쓴 대로 살고자 애쓰는 과정 자체가 글쓰기의 윤리라 믿는다.
그러니 내 글을 읽고 현실의 나를 만났을 때, 글과 삶이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해서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글은 오늘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내일의 나를 향해 길을 밝히는 등대다. 나는 그 빛 사이를 오가며, 조금씩 닮아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