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우리가 내면에서 경험하는 감정과 생각들에 대해 선택권이 거의 없다고 믿어 왔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불안이 몰려오고, 어떤 날은 사소한 자극에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는 흔히 그 감정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라”는 조언을 듣거나, 반대로 “흘려보내라”는 말에 의존한다. 혹은 감정과 생각의 뿌리를 끝까지 추적하며, 이성으로 규명하려 애쓰다가 깊은 밤을 사투처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 최면과 자기 암시에 대한 탐구와 훈련을 통해, 나는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감정과 생각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이 아니라, 내가 환경과 사건에 반응하는 기본 방향성, 다시 말해 내면의 ‘기본값’을 어느 정도는 훈련을 통해 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물론 인간의 내면은 기계처럼 단순하지 않다. 감정은 자동적으로 떠오르고, 생각 역시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든다.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오랜 시간 반복적인 훈련과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우리는 어떤 감정과 해석을 더 자주 선택할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도록 둘 것인지를 서서히 바꿀 수 있다. 이는 즉각적인 변화가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방향성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실존주의 철학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인간의 존재는 미리 완성된 상태로 주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매 순간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자신을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존재다. 나는 과거의 선택들로 형성된 존재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선택을 통해 과거의 나를 갱신해 가는 과정 속에 있다. 나의 존재는 하나의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수정되고 재구성되는 연대기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어떤 이상적인 존재의 형상을 품고 살아간다. 더 성숙한 사람, 더 사랑이 많은 사람, 더 담대한 사람, 더 평안한 사람. 그러나 그 이상은 어느 날 갑자기 도달되는 완성의 상태가 아니다. 나의 존재는 초승달이 보름달을 향해 조금씩 위상을 바꾸어 가듯, 점진적으로 만들어져 간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반복되는 방향 선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기 최면과 자기 암시는 단순한 자기기만이나 허황된 긍정주의가 아니라, 존재의 방향을 의식적으로 설정하기 위한 하나의 훈련 도구가 된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듯, 마음 역시 반복적인 자극과 연습을 통해 특정 방향으로 단련된다.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언어와 이미지로 구체화하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행위는 내면의 자동 반응을 조금씩 재조정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 생명이다. 우리는 이성과 감정, 그리고 영적인 차원을 함께 지닌 존재다. 그렇기에 자신을 초월해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감정과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현실의 한계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그 한계 속에서 가능한 선택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다.
예컨대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단순히 “사랑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을 사랑이 많은 존재로 이미지화하고, 그러한 언어를 스스로에게 반복하며, 실제 삶의 순간마다 평안함과 이해심, 차분함을 선택하려는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마음의 훈련은 근력 운동처럼 눈에 띄는 즉각적 성과를 보여주지 않지만, 시간이 쌓이면 분명한 변화를 드러낸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결국 이 지점이다. 원하는 모습을 마음에 그리고, 그 가능성을 믿는 언어를 반복하며, 행동으로 옮기는 것. 이러한 방법론들이 시대와 표현을 달리해 반복되는 이유는, 인간이 ‘되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기 암시와 자기 최면은 그 과정에서 나를 속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훈련의 언어다.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감정에 휘둘리고, 생각에 잠식되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매 순간 나를 다시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 암시는 그 글쓰기의 방향을 조금 더 의식적으로 잡아 주는 연필에 가깝다. 존재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계속해서 다듬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듬음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우리가 되고자 했던 존재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