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는다는 것에 대하여

문자 너머의 메시지를 향한 겸손한 독해

by 신아르케

우리는 성경이라는 책에 대해 보다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성경에 대한 이해 없이 신앙을 말하는 것은, 지도 없이 낯선 도시를 걷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길을 걷고 있다고는 느끼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결과는 흔들리는 확신, 왜곡된 신앙, 그리고 때로는 이단이라는 극단적 길로의 이탈이다.

물론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신앙은 개인의 내면과 깊이 연결되어 있고, 해석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그러나 조심스러움이 곧 무지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성경을 잘못 이해했을 때 발생하는 위험은,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보다 훨씬 크다.

성경은 흔히 “한 권의 책”으로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성경은 하나의 저자가 한 시점에 쓴 단일 저작물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다양한 저자와 공동체가 남긴 기록들의 묶음집, 다시 말해 하나의 도서관에 가깝다. 개신교 전통에서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목록은 초대교회가 예배와 가르침 속에서 오랜 시간 사용하고 검증해 온 책들이 점차 합의되어 정리된 결과다. 이는 몇몇 인물이 임의로 골라낸 결과라기보다, 공동체적 사용과 신학적 분별의 축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성경의 장르는 매우 다양하다. 율법서, 역사서, 시가와 지혜문학, 예언서, 복음서, 서신, 그리고 묵시문학까지. 이 다양한 장르들은 각기 다른 언어와 표현 방식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는, 마치 모든 글을 동일한 규칙으로 읽을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시를 읽는 방식으로 역사서를 읽을 수 없고, 묵시문학을 신문 기사처럼 받아들일 수도 없다.

이 점에서 창세기 초반부를 과학 교과서처럼 읽으려는 시도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어떻게’의 과정보다 ‘왜’와 ‘무엇을 위해’를 말하는 텍스트다. 문자 그대로의 연대 계산이나 물리적 메커니즘에 집착하는 순간, 본래 전달하고자 했던 근본 정신—창조 질서, 인간의 위치, 책임과 관계—는 오히려 가려진다. 이는 성경을 존중하는 태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성경이 사용한 언어의 방식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 오류다.

요한계시록의 해석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요한계시록은 대표적인 묵시문학으로, 상징과 이미지, 숫자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숫자 7, 12, 144,000과 같은 표현을 문자 그대로 계산하고 현실의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입하려는 시도는, 본문이 의도한 방향을 벗어나기 쉽다. 이 숫자들은 수학적 값이라기보다 상징적 표지판에 가깝다. 그것은 “얼마나”를 말하기보다 “어떤 성격의 현실인가”를 가리킨다.

그래서 나는 성경을 읽을 때, 시를 읽는 마음에 가깝게 읽으려 한다. 성경은 창조자가 인류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인간의 이성과 감정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한 기록이다. 언어와 문자, 비유와 상징, 꿈과 이미지가 사용되었고, 계시는 한 시대에 끝나지 않고 긴 시간에 걸쳐 이어졌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다양한 시대와 배경, 서로 다른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보여주는 근본적인 일관성이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이 인간의 손을 거쳐 기록되었다는 사실 또한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전승 과정에서의 차이, 서술의 긴장, 강조점의 다양성은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성경이 전하는 중심 메시지—사랑, 정의, 회복, 책임, 그리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긴장은 성경을 우상화하지 않고, 메시지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문자 하나하나의 절대화가 아니라, 성경이 관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근본 정신이다. 그리고 그 이해는 결코 지식이 많거나 지능이 높은 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오히려 교만한 자, 이미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믿는 자에게는 성경의 말씀이 닫혀 있다. 반대로, 마음을 열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성경의 진리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우리가 양심을 통해 선과 악을 분별하듯, 성경의 메시지도 마음이 열릴 때 비로소 들린다. 그래서 나는 성경을 과학적 잣대로만 재단하며 무가치하다고 치부하는 태도 역시 안타깝게 느낀다. 동시에, 성경을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창조론적 열심 또한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그 열심의 순수함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방법이 극단으로 흐를 때 신앙은 균형을 잃고, 진리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어떤 신념이든, 아무리 고귀해 보일지라도 극단에 이르면 위험해진다. 성경은 우리에게 승리를 위한 무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거울로 주어졌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경을 통해 세상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 앞에서 먼저 자신을 비추는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