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내 마음에 들고, 나를 좋아하며, 나와 같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집단이 아름답고 이상적이라는 상상에 나는 오래전부터 불편함을 느껴왔다. 갈등이 없고, 이견이 없고,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 존재하는 공동체를 우리는 흔히 ‘천국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런 상태를 매우 경계한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건강한 사회의 모습과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갈등이 사라진 사회는 대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름을 견디지 못한 누군가가 ‘한 마음’을 강요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 순간 사회는 도덕적 전체주의로, 극단적 집단주의나 종교적 절대주의로 기울기 쉽다. 특히 지도자가 이러한 환상을 품고 있다면, 그 집단은 어떤 형태로든 폭력에 가까워진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지켜온 소중한 가치가, ‘질서’나 ‘조화’라는 이름으로 손쉽게 훼손된다.
나는 내 자녀가 순종적이기만 한 아이로 자라기보다는, 강한 자아와 개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물론 균형은 중요하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후자를 택하겠다. 마찬가지로 내 배우자가 내 말에 잘 맞추는 사람보다, 때로는 조율하느라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가정은 조용하지만 병든 공간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관계의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직원들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고, 때로는 나와 대립했으면 좋겠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나를 경계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더라도, 그 불편함 덕분에 나는 교만해지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비판과 견제가 사라진 자리는 늘 독선으로 채워진다.
이런 생각을 나는 종종 음악에 비유한다. 군가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박자, 똑같은 음정, 똑같은 목소리로 불러야 한다. 한 음이라도 어긋나면 틀린 것이 된다. 반면 합창은 다르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서로 다른 음을 낸다. 각자의 소리는 다르지만,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조율할 때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이 만들어진다. 사회가 군가가 될 때, 개인은 사라진다. 사회가 합창이 될 때, 개인은 살아남는다.
내가 바라는 사회는 군가가 아니라 합창에 가깝다. 서로 다른 욕구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때로는 부딪히고, 어색해하며, 갈등을 겪더라도 대화를 통해 조율해 가는 공동체. 누구의 의견도, 누구의 욕구도 묵살되거나 억압되지 않지만, 동시에 질서와 규칙이 존재해 서로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사회. 나는 그런 사회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과도하게 추켜세우고, 우상화하며,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조직을 지양한다. 그런 곳에서는 평화가 유지되는 듯 보일지 몰라도, 그 평화는 침묵 위에 세워진 불안한 구조일 뿐이다. 진정한 조화는 다름을 제거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견디고 조율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모두가 같은 노래를 부르는 사회는 잠시 안정적일 수는 있어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각자의 목소리가 살아 있는 합창은 때로 불협화음을 내더라도, 스스로를 조정하며 더 깊은 화음으로 나아간다. 나는 그런 사회, 그런 가정, 그런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싶다. 군가가 아닌 합창을 꿈꾸는 이유는, 그 안에서 비로소 인간이 인간답게 숨 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