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는 왜 자유보다 먼저 오는가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최종정리

by 신아르케

토마스 홉스,영국 철학자는 인간을 낭만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자연 상태를 냉정하게 해부한다. 국가도 법도 공통의 권력도 없는 상태에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solitary), 가난하며(poor), 비열하고(nasty), 잔인하고(brutish), 그리고 짧다(short)”고 그는 단언한다. 이 문장은 인간 혐오의 선언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둘러싼 조건에 대한 현실 진단이다.

문제의 핵심은 인간의 악함이 아니라 불안정성이다.
각 개인은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각자 나름의 윤리와 욕망을 기준 삼아 행동한다. 이 기준은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정의라 부르고, 누군가는 생존이라 부르며, 또 다른 이는 욕망이라 부른다. 공통의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차이들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이것이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

이 투쟁 상태를 끝내기 위해 인간은 이성을 사용한다.
서로를 신뢰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인간은 사회계약에 이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계약이 이상을 향한 약속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계산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자신의 자연권 일부를 포기하고, 그 권리를 하나의 주권체에 모은다. 이것이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 곧 주권 권력이다.

이때 주권은 나누어질 수 없다.
권력이 분산되는 순간, 충돌은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홉스에게 주권은 절대적이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는 그 대가로 제한된다. 그러나 이 제한은 자유에 대한 경멸이 아니라, 자유가 실질적 의미를 가지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질서가 무너진 사회에서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폭력의 다른 이름이 된다.

이 지점에서 홉스의 사상은 종종 오해된다.
그는 자유보다 질서를 택한 사상가로, 혹은 독재의 이론가로 단순화된다. 그러나 홉스가 정말로 우선시한 것은 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생존이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최소 조건이 질서이며, 자유는 그 다음에야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다시 말해, 홉스에게 자유는 질서의 적이 아니라 질서 안에서만 가능한 가치다.

오늘날 이 리바이어던은 한 사람의 군주가 아니라 국가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의지는 헌법과 법을 통해 구현된다. 대한민국에서 어떤 개인도 헌법 위에 설 수 없으며, 모든 시민은 법 앞에서 동일하다. 개인의 자유는 무제한이 아니라,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장된다. 그렇기에 준법 정신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사회계약 자체를 잠식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국가는 언제 정당성을 상실하는가.
홉스의 논리는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 국가가 더 이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존재가 될 때, 사회계약은 심각한 균열 상태에 들어간다. 인간에게 자기보존은 양도 불가능한 최후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복종의 의무는 보호의 기능을 전제로 성립한다.

홉스의 사상은 그 명확함 때문에 위험했고, 그래서 배척되었다.
그의 이론은 당시 왕권, 귀족 권력, 종교 권위 모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권력이 하나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그의 논리는, 언제든 기존 권력을 정당화하거나 전복하는 논거로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오랫동안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이 모든 논의를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하나의 생각에 이르게 된다.
완전한 의미에서의 절대 권력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부패하지 않는 권력, 한 치의 치우침도 없는 정의는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다. 홉스가 꿈꾸었던 완전한 질서의 이상은, 어쩌면 하나님 나라에서만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교회는 정치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
교회가 권력을 가지는 순간, 신앙은 타락하고 복음은 도구가 된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내면을 다스리는 나라이지, 국가 제도와 권력을 통해 강제되는 나라가 아니다. 정치와 제도, 문명의 영역은 세상의 몫이며, 교회의 사명은 그 영역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내면을 비추는 것이다.

홉스는 자유를 부정한 사상가가 아니다.
그는 자유가 무너지는 지점을 정확히 보았고, 그 붕괴를 막기 위해 질서를 먼저 세운 사상가였다. 그의 리바이어던은 자유의 적이 아니라, 자유가 무너지기 전에 세워진 마지막 방파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