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인간에 대하여

by 신아르케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 질문 앞에서 각자의 언어로 답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존재는 결코 1+1=2처럼 명확하게 떨어지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단일한 정의로 포획되기보다는, 매우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성질을 지닌 채 드러난다.

나는 그 여러 측면 가운데 하나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존재란 고립된 상태에서 완성되는 실체가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존재는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끊임없이 되어 가는 것이며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고, 새로워지며, 때로는 성숙하고 때로는 퇴보한다. 윤리적으로 아름다워질 수도 있고, 반대로 죄와 타락의 방향으로 기울 수도 있다.

특히 인간은 관계적 존재다.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타인의 반응을 끊임없이 살핀다. 말로 표현된 반응뿐 아니라, 미묘한 표정 변화, 몸짓, 분위기, 침묵까지 감지하며 자신의 판단과 태도를 조정한다. 이는 계산된 위선이 아니라, 인간에게 깊이 각인된 생존 방식에 가깝다. 인간은 말 그대로 뼈 속까지 사회적 존재다.

이러한 특성은 성장 과정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어린 시절에는 가정 안에서, 학교에 들어가서는 또래 집단을 통해, 이후에는 직장과 사회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타인들과 부딪히며 살아간다. 그 과정 속에서 사회의 가치관, 규범, 금기, 기대를 무의식적으로 몸에 새긴다. 그렇게 나는 ‘동시대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나의 존재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형성해 왔다.

그러므로 현재의 나는, 내가 누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해 왔는가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항상 배울 점이 있는 좋은 사람을 곁에 두라”는 어른들의 말은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삶의 구조를 꿰뚫는 통찰에 가깝다. 동시에 나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과연 타인에게 어떤 존재로 남고 있는가. 나는 누군가를 자라게 하는 사람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편향을 강화하는 사람이 되고 있는가.

이 질문은 관계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자신과 잘 맞는 사람,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 자신의 말에 동의해 주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는 것은 편안하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만 반복될수록 인간은 서서히 교만해지고, 독단적이며, 폐쇄적인 존재로 굳어질 위험에 놓인다. 자기 세계가 좁아질수록, 그 좁은 세계는 곧 ‘옳음’으로 착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나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 성격과 기질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살아가며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선택이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 예절, 공감의 감수성이 자라난다. 자녀 역시 그러한 환경에 노출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자기와 다른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차이를 적대가 아니라 대화의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나와 다른 욕망과 관점을 가진 타인과의 충돌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능력이다. 인간은 본래 감정에 치우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 쉬운 존재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미워하고 배척하며, 관용과 인내보다 분노와 적개심을 먼저 드러내기 쉽다.

특히 오랫동안 추앙과 특권을 누려 온 위치에 있을수록, 이러한 위험은 더 커진다. 칭찬과 복종이 반복되는 환경은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오만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를 앗아간다. 그렇기에 어떤 위치에 있든,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나는 지금도 더 온전한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께서 삶으로 보여 주신 사랑, 희생, 용서, 관용, 인내의 덕목은 저절로 체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책상 앞에서 완성되지도 않는다.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 갈등과 오해 속에서, 때로는 고난과 좌절 속에서 겸손하게 다듬어지고 깎여 나갈 때에만 비로소 형성된다.

아름다운 성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 상처를 견디고, 성찰을 반복하며, 성숙에 성숙을 더해 가는 긴 과정의 결과다. 존재는 그렇게, 언제나 타인과 함께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