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에 대하여 ― 불편한 진실의 가치

by 신아르케

나는 이따금씩 있는 부부싸움을 그렇게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다. 물론 언성이 오가고 감정이 앞서며,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굳이 주지 않아도 될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부싸움이 지닌 어떤 유익한 측면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언성이 높아지는 순간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때 우리는 진실을 찾기보다, 자신의 자아와 감정을 지키기 위해 이성을 동원한다. 자신을 옹호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과거의 사실을 왜곡하고, 상대의 의도를 확대 해석하며, 자신이 서운했던 기억만을 선별적으로 떠올린다. 그리고 결국 상대를 자신의 상상 속에서 재단하고, 필요 이상으로 악마화한다. 맞는 지적도 분명히 섞여 있겠지만, 그 판단은 감정에 깊이 물든 상태다. 틀릴 가능성 또한 크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사건이 대립하는 부부에게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는 사실이다.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상대방은 가해자이고, 자신은 피해자다. 그리고 각자의 논리는 놀랍도록 완결되어 있다. 그래서 싸움 중에는 어느 쪽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모두가 옳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사사건건 각을 세우고, 불필요한 다툼을 일으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러나 상처받기 싫다는 이유로, 혹은 “어차피 말해봐야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대화 자체를 피하는 태도 역시 부부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때로는 언성이 오가고, 밑바닥이 드러나고, 서로 자기 말만 옳다고 우기는 순간조차도 나는 그 싸움이 가진 가치를 본다.

어떤 의미에서 한쪽이 늘 져주고 맞추는 관계 역시 평등한 부부관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배려라기보다 회피일 수 있고, 평화라기보다 문제의 유예일 수 있다. 정상적인 부부라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일 것이다. 그렇기에 감정이 실린 비판일지라도, 그 말 속에는 상대가 나를 오래 지켜보며 쌓아 온 관찰과 불만, 그리고 기대가 함께 들어 있다.

싸움 당시에는 자존심이 상해 인정하기 싫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차분해진 이성으로 그 대화를 되짚어 보면, 배우자의 말이 맞았기에 더 강하게 반박했던 지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선택 앞에 서게 된다. 자신의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한 지적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시도할 것인가.

마흔 중반을 넘어 나이를 먹어가고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수록, 나의 말과 행동을 정면에서 지적해 줄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그렇게 사람은 자신을 합리화하며 굳어 간다. 듣기 싫은 말을 피하고, 익숙한 방식에 안주하며, 어느 순간 스스로를 성찰할 줄 모르는 사람, 더 이상 고쳐질 여지가 없는 사람으로 늙어 갈 위험에 놓인다.

날 선 비판은 대개 옳은 말이기에 아프다. 그러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충고를 가장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물론 억울한 부분도 있고, 실제로 상대가 잘못한 지점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그녀 역시 나의 말과 태도에 상처받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부싸움을 그저 부정적인 사건, 서로를 할퀴는 상처의 시간으로 끝내지 않는 일이다. 싸움 뒤에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며, 작게라도 변화를 시도하려는 의지와 태도가 있다면, 그 싸움은 관계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아니라 관계를 다듬는 과정이 된다.

부부싸움은 피해야 할 실패가 아니라, 제대로 다루어야 할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아픔 속에서도 배움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부부는 조금 더 성숙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