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에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 말에는 조건이 따른다. 고통과 고난은 자동으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 안에서 배우는 것이 있고, 어떤 형태로든 이전과 다른 성장이 있을 때에만, 고통은 비로소 의미가 된다.
육체적·정신적·영적 성장 없이 반복되는 고통은 그저 소모일 뿐이다. 그런 고통은 미화할 필요도, 억지로 끌어안고 견딜 이유도 없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맞다. 그렇기에 내 삶 속에, 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찾아오는 어려움과 시련, 고난을 의미 없는 고통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삶을 치열하게 고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고난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묻고, 그 안에서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을 통과한 뒤의 나는 이전과는 다른 존재여야 한다.
내 삶에 변화가 없다면 안 된다. 고난을 통과하며 나는 더 유연해지고, 마음의 폭이 넓어지며, 인내심이 깊어져야 한다. 기술은 더 정교해지고, 힘과 집중력은 단단해지며, 삶은 이전보다 정돈되고 질서를 갖추어 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사랑과 용서, 이해와 관용, 타인을 향한 배려와 존중이 말과 행동에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존재로 성장해 간다면, 그때 고난은 나를 무너뜨리는 짐이 아니라 나를 밀어 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고난은 고통스럽기에 무조건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관점을 바꾸면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과정이 된다. 미래의 나를 떠올리며, 이 과정을 지나면 내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면, 고난은 반드시 절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품은 통과 의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말하고, 마음에 새기려 한다. 인생의 저점에 찾아오는 고난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자고. 비가 내린 뒤에 땅이 더 단단히 굳어지듯, 모진 비바람은 나의 뿌리를 더 깊이 내리게 만든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쉽게 뽑히지 않기 위해서다.
어쩌면 인생의 고난은 연료와도 같다. 그 연료 없이는 나는 익숙한 관성을 깨고, 늘 돌던 삶의 궤도를 벗어날 수 없다. 고난이 있기에 사람은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방향을 수정하며, 이전과 다른 선택을 시도하게 된다.
과정 중에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 역시 배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유혹에 넘어져 넘어지고, 죄를 짓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일어나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 실패로부터 배운 것을 삶에 남긴다면, 실패는 낙인이 아니라 교훈이 된다.
우리의 인생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끊임없는 도전과 좌절, 실패와 성공, 그리고 성장이 반복되는 여정이다. 성경은 말한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는 성공을 경계하라는 말이 아니라, 교만을 경계하라는 경고다. 자신이 이미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다.
단, 내가 그 고난을 통해 배우고, 이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을 때에만 그렇다.
고난이 나를 정의하게 두지 말고, 고난을 통해 내가 다시 정의되게 하자.
그럴 수 있다면, 어떤 시련도 헛되이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