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마음속으로 되뇌는 짧은 기도 구문이 있다. 하루를 살아가다 문득 몸과 마음이 차분하고 평온한 순간을 만날 때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려는 기도다. 그 평안이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고요한 순간이 찾아오면, 먼저 감사하려 애쓴다. 평안은 내가 만들어낸 결과라기보다, 허락된 선물에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늘 고요하지 않다. 육신의 피로가 쌓이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고, 타인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건드릴 때, 그 얇은 평안은 쉽게 금이 간다. 더 힘든 것은 외부의 자극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내 안에서 스스로 생성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다. 걱정과 염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수시로 마음을 공격한다. 나는 그것을 ‘내면의 전쟁’이라 부른다.
기독교는 인간의 내면을 선과 악이 맞서는 전쟁터에 비유한다. 나는 그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고 느낀다. 우리는 평생 그 전쟁 속에서 살아간다. 조금만 방심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고개를 들고, 자칫하면 그것이 감정을 지배하고 행동을 규정한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내 의지와 노력으로 마음을 다스려 보려 했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마음은 기상의 변화처럼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스럽다. 맑다가도 갑자기 흐려지고, 잔잔하다가도 거칠어진다. 통제하려 할수록 더 멀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최근에야 나는 조금 다른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노력은 필요하지만,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면의 전쟁을 온전히 나의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나는 생각보다 연약하다. 그래서 나는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성령, 곧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다. 머릿속에서 평안을 깨뜨리려는 생각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조용히 평온을 달라고 기도한다. 놀랍게도 그 단순한 기도가 다른 어떤 방법보다 깊은 안정을 가져다주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배 위에서 잠드셨다는 성경의 장면을 떠올린다. 바람과 파도는 거칠었지만, 그분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장면을 삶의 은유로 읽는다. 폭풍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신뢰가 있었던 것이다. 신앙은 환경을 바꾸는 힘이라기보다, 환경 속에서 마음의 중심을 붙드는 힘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신앙을 가진다고 해서 삶의 폭풍이 멈추지는 않는다. 문제는 여전히 발생하고, 육신은 여전히 피로하며, 인간관계는 여전히 복잡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평안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조건적 안정과는 다른 차원의 평온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다 해도 마음이 불안하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반대로 외적 조건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마음이 고요하다면, 삶은 견딜 만해진다.
어쩌면 신앙의 가장 큰 유익은 바로 이 지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평안을 얻는 것. 나는 그것이 세상 어떤 성취보다 값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같은 기도를 되뇌인다. 폭풍을 없애달라는 기도보다,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허락해 달라는 기도. 그 기도를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동시에 나를 붙드는 보이지 않는 손길을 의지한다. 그리고 그 의지 속에서, 나는 조금 더 평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