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비합리성을 인정하는 용기

by 신아르케

인간이라는 존재를 오래 관찰하고, 또 나 자신을 성찰할수록 하나의 불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말과 행동을 들여다보아도, 내 안의 마음을 냉정히 분석해 보아도, 이 결론은 쉽게 부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이성적 존재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판단을 내린다. 기분이 좋으면 관대해지고, 기분이 상하면 같은 말도 공격으로 들린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면, 우리는 그 행동의 동기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감정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기보다는, 사실에 색을 입힌다.

더 놀라운 점은, 우리는 그 감정적 판단을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합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도, 감정이 가라앉은 뒤에는 논리로 포장된다. 상대에게 상처를 준 사실은 쉽게 잊어버리면서도, 나의 마음에 작은 생채기만 생겨도 우리는 오래도록 그것을 붙들고 괴로워한다. 이기적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인간을 설명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이 사실은 더욱 선명해진다. 어제 확신하던 생각이 오늘은 흔들리고, 아침의 판단이 저녁에는 달라진다. 나는 나의 마음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한다. 감정은 기상 변화처럼 예측하기 어렵고, 때로는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든 방향으로 나를 끌고 간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만, 동시에 관계를 구원한다.

만약 인간이 본질적으로 감정에 흔들리는 존재라면, 우리는 타인의 말과 행동을 ‘본심’으로 단정해 버리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부부 관계나 가족 관계, 직장에서의 관계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는 상대의 한 마디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 “저 말은 나를 무시한 것이다”, “저 행동은 나를 배신한 것이다”라고 단정하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러나 조금만 거리를 두고 생각해 보면, 그 말은 단지 그날의 감정에서 비롯된 순간의 반응일 수도 있다. 나 역시 감정이 격해지면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을 내뱉는다. 그렇다면 타인의 변덕스러움에 분노하기 전에, 나의 변덕스러움을 먼저 떠올려 보는 것이 더 정직한 태도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모든 행동을 가볍게 넘기라는 뜻은 아니다. 반복되는 폭언과 폭력, 의도적인 모욕은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관용은 방임이 아니다. 다만 일시적인 감정의 파동을 영구적인 인격의 결함으로 확대 해석하지 말자는 것이다. 즉시 결론을 내리기보다, 시간을 두고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대화를 통해 의미를 조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일관되지 않고, 때로는 모순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이 불편한 진실을 마음 깊이 새길 때, 우리는 오히려 조금 더 합리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비합리성을 인정하는 순간, 타인을 향한 분노는 조금 누그러지고, 이해의 여지가 생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감정에 덜 휘둘릴 수 있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즉각 반응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게 되고, 나 자신의 판단 역시 절대적 기준이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

그 결과, 관계에서 오는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나도, 타인도, 완전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마음은 조금 더 유연해진다. 그리고 그 유연함 속에서 우리는 더 따뜻해질 수 있다. 완벽한 이성을 기대하기보다, 불완전한 감정을 이해하려는 태도 속에서 공동체는 유지된다.

결국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인간의 한계를 먼저 인정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는 모두 감정에 흔들리는 존재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쉽게 단정하지 않고, 쉽게 악마화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유보하고, 판단을 늦추며, 이해의 가능성을 남겨 둔다.

그것이 인간을 다루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