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균형대

by 신아르케

삶은 어떤 의미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는 활동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균형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의 몸은 생리학적으로 항상성을 유지하려 끊임없이 조절된다. 체온, 혈압, 혈당, 수분, 산성도 같은 수많은 조건들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유지될 때 생명은 안정된다. 이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내고, 그것이 우리가 질병이라 부르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균형이 완전히 붕괴될 때, 생명의 징후는 서서히 사라진다.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행복이나 평안이라는 감정 역시 일종의 내면의 평형 상태이다. 생각과 감정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을 때, 인간은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 마음은 쉽게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삶은 어느 순간 극단으로 치닫는다.

게으름 역시 균형을 깨뜨리는 한 형태다.
만약 사람이 평생 편안하게 누워 있기만 한다면 몸은 곧 망가지기 시작한다. 욕창이 생기고, 근육은 빠르게 약해지며, 신체 기관의 기능도 점차 약해진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아래로 끌어당기는 중력을 거슬러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일하고, 땀을 흘리고,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고, 다시 배출하는 과정을 평생 반복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삶이란 참으로 지난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쉬지 않고 계속 무리하게 활동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몸은 결국 고장을 낸다. 지나친 긴장과 과로 역시 균형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결국 삶의 지혜는 양극단을 피하는 데 있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그 사이 어딘가에서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의 연속이다.

이 원리는 생각과 사상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철학적으로도 한 극단에 치우친 사상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논리적으로 완벽해 보일지라도, 그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오히려 모순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칸트가 말한 ‘안티노미’는 바로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 인간의 이성이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려 할 때, 서로 반대되는 주장들이 동시에 논리적으로 성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인간의 이성이 어느 한 극단에 서서 세계 전체를 설명하려 할 때 생기는 한계를 보여 준다.

신앙의 영역에서도 균형은 중요한 덕목이다.
기독교 복음은 하나님을 정의와 사랑이 함께 존재하는 분으로 묘사한다. 정의만 있다면 세상은 숨 막히는 심판의 공간이 될 것이고, 사랑만 있다면 세상은 질서를 잃은 혼란 속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마치 균형대 위를 걷는 사람과도 같다. 한 손에는 정의를,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중심을 잡으며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지나치게 엄격한 규칙으로 몰아붙이면 몸과 마음이 쉽게 지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담을 주게 된다. 반대로 너무 게으르고 무절제한 삶을 살면 삶의 구조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결국 근면과 휴식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이러한 균형의 기술은 책을 읽는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삶을 통해 체득되어야 하고, 각자의 형편과 기질에 맞게 다듬어져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 적절한 균형이 다른 사람에게는 무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균형을 잡는 기술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일종의 예술에 가깝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 전체가 그 예술을 연마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매일의 삶은 그 연습장이 된다.

기독교적으로 이 과정을 설명하자면 또 하나의 차원이 더해진다.
인간은 죄성을 지닌 존재이며, 언제나 유혹과 연약함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과정이 신앙의 길이다. 우리의 삶은 죄와 회개, 그리고 은혜가 반복되는 파동 속에서 움직인다.

중력이 우리 몸을 끊임없이 아래로 끌어당기듯이, 죄성 또한 인간을 게으름과 이기심, 어둠의 방향으로 끌어당긴다. 그래서 우리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수면 위에 머무르려는 사람처럼 끊임없이 물길질을 해야 한다. 노력과 성실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힘만으로는 그 균형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새가 하늘에 떠 있기 위해 계속 날개만 퍼덕일 수 없는 것처럼, 결국 공기의 흐름과 바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다시 기억하게 된다.
삶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 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완벽한 균형에 도달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일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그 성실한 노력 자체가,
어쩌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미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