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신앙과 성숙한 신앙

깊어지는 믿음에 대하여

by 신아르케

순수한 신앙과 성숙한 신앙은 다르다.
나는 최근 들어 이 둘을 구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신앙을 말할 때 오직 한 가지 형태만 떠올리려 한다. 뜨겁고, 즉각적이며, 감정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신앙만이 참된 것처럼 여기기 쉽다. 그러나 삶을 조금 더 오래 살아 보고, 믿음의 시간을 조금 더 지나와 보면, 신앙에도 분명한 결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차이가 아니라 성숙의 차이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이 나이와 경험을 따라 자라듯, 신앙도 그렇게 자라기 때문이다.

신앙의 초기에 사람은 대개 매우 순수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대한다.
믿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거나, 인생의 경험이 아직 많지 않거나, 나이가 어린 학생일수록 신앙을 대하는 시선은 단순하고 직선적이며 뜨겁다. 하나님은 선명하게 느껴져야 하고, 기도는 즉각적인 응답으로 이어져야 하며, 진리는 흑백처럼 또렷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신앙은 어디까지나 아름답다. 그것은 첫사랑의 풋풋함과 닮아 있다. 거기에는 계산이 없고, 복잡한 반성이 없고, 조건을 따지지 않는 열정이 있다. 사람은 그 순수함 앞에서 어떤 빛과 향기를 느낀다. 그러므로 순수한 신앙을 미성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 자체로 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귀히 여기셨다. 순수함은 신앙의 약점이 아니라 분명한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인간은 거기에서만 머물 수 없다.
삶이 쌓이고, 실패와 후회가 쌓이고, 관계의 복잡성이 드러나고, 반복되는 경험이 마음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면, 신앙도 함께 변한다. 같은 성경 말씀을 읽어도 예전처럼 단선적으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한 사건을 보더라도 여러 각도에서 보게 되고, 한 인물을 판단할 때에도 쉽게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게 된다. 윤리적 판단을 내릴 때에도 단순히 “이건 선, 저건 악”이라고만 나누기보다, 상황과 맥락과 인간의 연약함까지 함께 보게 된다. 성숙한 사람은 그래서 쉽게 치우치지 않는다. 쉽게 성급한 일반화를 하지도 않고, 감정 하나로 모든 것을 해석하지도 않는다. 신앙에도 균형이 생기는 것이다.

이 균형은 때때로 오해를 부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히려 열정이 줄어든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크게 울지 않을 수도 있고,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감정적으로 격하게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 보기에는 이전보다 덜 뜨거워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식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어진 것일 수 있다. 표면의 파도가 잠잠해졌다고 해서 바다가 얕아진 것은 아니다. 성숙한 신앙은 외적 표현이 덜 격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향한 진지함과 열정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더 절제되고 더 깊은 형태로 내면에 자리 잡은 것이다.

나는 성숙한 신앙을 오래 함께 산 부부의 사랑에 자주 비유하고 싶다.
스무 살 언저리의 사랑과 오십, 육십이 된 부부의 사랑은 다르다. 처음 사랑은 풋풋하고 격렬하다. 작은 일에도 크게 흔들리고, 감정의 진폭도 크며, 서로를 향한 마음이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반면 오랜 시간을 함께 건너온 사랑은 다르다. 산전수전을 함께 겪고, 서로의 약점을 견디고, 수많은 위기와 일상을 함께 통과한 사랑은 겉으로는 덜 극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훨씬 깊은 신뢰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과장하지 않아도 느끼며, 굳이 매 순간 확인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어떤 결이 있다. 그렇다고 첫사랑보다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고 더 넓게 사랑하는 것이다.

신앙도 이와 같다고 나는 믿는다.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께 지금 당장 기적을 보여 달라고 조급하게 매달리지 않는다. 감정이 고조된 상태만을 신앙의 증거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 대신 깊은 강물처럼 조용히 흐르며, 주어진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 낸다. 삶의 과업을 피하지 않고, 맡겨진 책임을 묵묵히 감당하며, 특별한 흥분 없이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한다. 겉보기에 아주 평범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함 속에 깊은 신뢰가 숨어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속해서 삶을 통해 배우고, 깨닫고, 다시 배워 가는 것이다.

성숙한 신앙은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이 사유한다. 철학적 사고는 더욱 깊어지고, 가장 근본적인 것을 묻는 질문도 더 진지해진다.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인간은 무엇인가. 은혜란 무엇인가. 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가. 사랑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성숙한 신앙은 이런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단순한 공식으로 서둘러 봉합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오래 붙들고, 때로는 침묵하며, 반복된 경험과 반성을 통해 조금씩 답을 얻는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온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실제로 검증된 진리로 마음 깊이 새겨진다.

그래서 성숙한 신앙은 쉽게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작은 죄의 유혹에 넘어지고, 실수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서 지나치게 자책하거나 죄책감에 짓눌리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죄를 가볍게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더 잘 안다. 다만 그것에 완전히 압도되지 않을 뿐이다.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또다시 자신을 훈련의 자리로 데려간다. 성숙한 신앙은 죄를 슬퍼하되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되 자기 파괴로 기울지 않는다. 넘어짐을 경험해도 다시 은혜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또한 성숙한 신앙은 자기 판단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무조건 초자연적으로, 특별하고 선명한 음성으로만 들어야 한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호흡하듯, 삶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한다. 그리고 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도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성숙의 표지다. 미성숙한 신앙은 자기 확신을 신앙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 생각과 판단을 반성하고, 되돌아보고, 다시 비추어 본다. 이 겸손이야말로 깊은 신앙의 흔적이다.

결국 순수한 신앙과 성숙한 신앙의 차이는, 뜨거움의 유무가 아니라 깊이의 차이다.
순수한 신앙은 시작의 빛을 가지고 있다. 성숙한 신앙은 지속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순수한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직선적 열망을 보여 준다. 성숙한 신앙은 그 열망이 삶의 연륜과 반성과 인내를 통과하며 더 깊은 신뢰로 정제된 상태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숙은 순수함을 잃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순수함에 깊이와 균형과 인내가 더해지는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처음 믿던 때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돌아가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첫 믿음의 순수함은 여전히 귀하지만, 나에게는 이제 나이와 경험, 실패와 깨달음, 반복된 은혜와 오랜 성찰이 함께 쌓여 있다. 나는 그 시간을 부정한 채 다시 단순한 열정만을 흉내 낼 수 없다. 내게 필요한 것은 순수함의 부정이 아니라 성숙함으로의 진보다. 더 깊게 믿고, 더 차분히 신뢰하고, 더 겸손하게 반성하며, 더 성실하게 살아내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생각한다.
신앙은 단지 뜨거워지는 일이 아니다.
신앙은 깊어지는 일이다.
신앙은 크게 소리치는 일이 아니라, 더 조용히 진실해지는 일이다.
신앙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신뢰가 되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성숙한 신앙이란
불꽃처럼 타오르는 믿음이 아니라
깊은 강물처럼 흐르는 믿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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