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신체보다 더 중요한 균형의 기술
우리는 흔히 강해지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더 무거운 중량을 들고, 더 단단한 의지를 세우며, 더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것. 나 역시 오랫동안 근력 운동에 몰입해 왔다. 단단한 신체는 성취의 상징이었고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감과 짜증, 깊은 피로가 내 일상에 스며들었다. 몸은 분명히 강해졌는데, 왜 마음은 점점 무너지는 걸까?
우리의 신경 체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흥분과 긴장을 유도하고, 다른 하나는 이완과 회복을 관장한다. 삶의 리듬은 이 두 신경의 조화 속에서 유지된다. 그런데 긴장만 누적되고 이완의 과정이 없다면, 결국 몸도 마음도 망가진다. 근력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무산소 운동은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켜 집중과 각성을 유도한다. 그 결과 근육은 성장하지만, 신경계는 점점 과각성 상태에 머문다. 젖산이 쌓이고 피로는 누적되며, 이는 곧 무기력과 우울감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나를 회복시켜 준 것은 유산소 운동, 특히 달리기였다. 달리기는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회복의 호르몬을 분비시키며, 과도하게 흥분된 신체와 마음을 진정시키는 숨구멍이 되어주었다. 무거운 중량을 드는 강도 높은 훈련 뒤에 느껴지는 정적, 그 속에서 나를 가다듬는 시간. 그것이 진짜 회복이고, 진짜 강함의 시작이었다.
근력 운동만을 고집한다면 강한 신체는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균형 잡힌 정신은 갖기 어렵다. 근육과 신경, 긴장과 이완, 흥분과 안정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이제 추구하는 ‘균형의 기술’이다.
이 깨달음은 단지 운동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의 개념처럼, 모든 탁월함은 과도함과 결핍 사이 어딘가에서 발견된다. 용기가 지나치면 무모함이 되고, 부족하면 비겁함이 된다. 절제가 과하면 무감각이 되고, 모자라면 방탕이 된다. 심지어 분노조차 적당하지 않으면 무력함이나 성급함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든 영역에서 균형을 이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균형을 이루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하루하루 치우치는 감정과 욕망을 붙잡고 중심을 잡는다는 건 끊임없는 성찰과 훈련이 필요하다. 삶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다면, 아마도 그 예술성은 바로 이 균형을 다루는 기술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예술가가 여러 모순된 색을 조화롭게 섞듯, 인간은 강함과 부드러움, 고통과 회복 사이의 리듬을 조율해야 한다.
나는 오늘도 고강도 웨이트를 진행한 후, 천천히 달린다. 그곳에서 숨을 고르고, 나를 회복한다. 몸은 다시 단단해지고, 마음은 조용히 중심을 찾아간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진짜 강함은 균형 속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