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드러나는 것이다: 내면과 외면의 일치'

by 신아르케

나는 내가 바라는 인간상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정확한 목표가 있어야 매 순간 선택하고 실천할 때 방향을 잃지 않는다. 존재란 완성된 고정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며, 내가 어떤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지는 곧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반영된 나만의 청사진이다.


나는 자유, 개성, 독립성이라는 헬레니즘적 덕목을 깊이 존중한다. 동시에,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내 존재나 행동이 불필요하게 타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존재로서 살아가고 싶지만, 그것이 위압적이거나 공격적인 인상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반대로, 상대방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해 내 생각이나 행동이 왜곡되는 것 역시 피해야 한다. 이처럼 충돌할 수 있는 다양한 가치와 이해는 나의 존재 안에서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러한 균형은 고립된 사고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실제 접촉 속에서, 나의 얼굴 표정, 말투, 걸음걸이, 손과 발의 움직임, 그리고 말의 내용 등을 통해 내 존재가 외현화된다. 기독교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자 영적 존재이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한다. 이는 진리와 정신이 인간의 육체를 통해 구현된 사건이다. 나는 직접 예수를 만난 적은 없지만, 복음서를 통해 그의 존재 방식을 접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도 나의 내면—정신, 가치, 신앙—을 나의 육신을 통해 구현해내야 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 삶을 통해 자신만의 인간이라는 고유한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신이 우리를 빚고 계시며, 삶이라는 캔버스 위에 우리를 살아 있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그려가고 계신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단지 기능적이거나 생물학적인 존재가 아니라, 선과 진리, 신의 정신이 구체화된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글로 정리하면서, 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표정과 말투를 가져야 할지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매 상황마다 인위적으로 애쓰는 대신, 내 내면이 자연스럽게 외면에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때의 전제는 명확하다. 나의 내면이 바르지 않다면, 그 출발점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외면을 꾸미기보다, 먼저 내면의 방향성을 점검하고 바로잡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정직성이라는 덕목에서 나는 이미 아름답지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매일 내면을 성찰하고, 그것이 외면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나의 존재는 진리와 신의 뜻을 구현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