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편입니다

배우자에 대한 마음 가짐

by 신아르케

인간에게 있어 “내 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감정적 기호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에 대한 감각은 때로 생존과 직결되며, 진화심리학적으로도 깊은 뿌리를 갖는다.

집단에 속한 개체는 더 오랜 시간 살아남았고, 그로 인해 우리 신경 체계는 여전히 소속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방금 전까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던 사람들이라도 외부의 위협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단결한다는 점이다.

공동의 적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순간, 그들은 다시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어 결속한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급변하는 태도는 인간을 우습게 보이게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지혜가 숨어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많다.

일부 권력자들은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회적 공포를 조장하거나 '공동의 적'이라는 허상을 만들어낸다.

위기감이 고조될수록 국민들은 분열보다 단결을 선택하고, 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잠시 보류하게 된다.

‘단결’ 그 자체는 중립적이다.

그 목적이 정의롭지 않다면, 단결은 집단적 맹목으로 이어지고 만다.


불을 예로 들어보자.

불은 음식을 익히고 생명을 따뜻하게 보호할 수 있는 도구이지만, 타인을 해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공동의 적에 대한 단결 본능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그리고 그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러한 본성을 가장 의미 있게 활용해야 할 곳은 가정이다.

가족은 그 어떤 외부 집단보다도 더 본질적인 운명 공동체다.

하지만 종종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이들과 대립한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의견 차이, 성격 차이, 감정의 충돌은 때때로 상대를 ‘적’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인생이라는 전장에서 가장 믿고, 끝까지 함께 싸워야 할 한 편을 곁에 두고 있다.


적은 밖에 있다.

삶의 불확실성, 경제적 고난, 육아와 질병, 시간 부족, 외로움 같은 문제들이 진짜 적이다.

기독교적 시각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방해하는 ‘어둠의 세력’이라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적을 외면하고 같은 편을 공격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가장 가까운 존재가 적이 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전력의 절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속한 편 안에서 싸우지 않는다.

싸움에서 이겨도 결국 손해이고, 지면 상처만 남는다.

공동의 목표가 있는 한, 서로 다른 의견을 대화와 타협으로 조율하며 나아가는 것이 진짜 이익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특별하다.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인 아내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우자는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곁에 남아 있어야 할 유일한 아군이다.

설령 인생에서 크나큰 실수를 저지른다 하더라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마지막까지 변호하고 감싸 안아줄 단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내가 행복하면, 그 기쁨은 고스란히 내게 돌아온다.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길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내 편으로 굳건히 지켜내는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매 순간 대립보다 협력, 침묵보다 대화, 고집보다 타협을 택하려 한다.

그리고 ‘가상의 공동의 적’을 향해 함께 나아가며, 우리라는 팀이 성공적으로 인생을 항해해 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