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기까지

by 신아르케

우리는 종종 상대방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에 빠진다. 그러나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인간은 노력만으로 타고난 기질과 성향을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억지로 자신을 바꾸며 살아갈 때, 우리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불편한 삶은, 본래적 존재로서의 ‘나’를 부정하는 삶이다. 신이 나에게 부여한 신체적 기질과 성격은 우연이 아니라 존재의 목적을 담은 선물이다. 그렇기에 내가 가장 ‘나다울’ 때,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존재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낙천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 사람은 그 기질을 감사히 여기며 주변을 밝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반면 어떤 이는 생각이 많고, 조심스럽고, 경계심이 많다. 이 역시 신이 주신 고유한 특성으로, 더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축복일 수 있다.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말한다.


“차라리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낫다.”


진지함과 사고의 깊이는 때론 고통이 따르지만,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느끼게 된다. 어릴 적 환경에 의해 잠시 감춰졌던 나의 기질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나조차 내 성격을 바꾸기 힘들다. 그렇다면 가까운 타인, 더 나아가 배우자의 성향을 바꾸려는 시도는 얼마나 부질없는가?


이제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존재의 방식에 이유를 묻는 것은 사물에게 “왜 그렇게 존재하냐”라고 묻는 것만큼 어리석다. 장미는 빨갛고, 돌은 단단하며, 물은 흐른다. 존재는 그 자체로 의미이다. 그리고 의미는 변화가 아니라 수용을 통해 성숙된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바로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인 아내와의 관계를 다시 성찰하는 과정에서였다. 우리는 결혼을 통해 하나가 되었고, 그 관계는 서로를 바꾸기 위한 계약이 아니라,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 위한 약속이어야 한다.


관계를 아름답게 유지하는 비결은 노력이나 기술 이전에 철학이다.

그 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존재를 조건 없이 사랑할 때, 우리는 가장 완전한 인간이 된다.”


나는 오늘도, 내 존재를 조금 더 수용하고, 아내의 존재를 조금 더 이해하며, 신이 나에게 맡기신 이 소중한 관계 앞에 무릎 꿇고 배운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기까지, 그 길은 곧 나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