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에서 자유로 가는 영혼의 길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크고 작은 걱정거리들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모든 걱정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대개 인생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봐 느끼는 불안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인생이 내가 정한 방향성대로 흘러가는 것이 나에게 유익하고, 진정한 행복으로 이끄는 길일까?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종종 이 질문에 대한 성찰 없이 세속적인 기대와 기준에 스스로를 얽어매고 있다. 물질의 풍요, 건강과 젊음의 지속, 사회적 명성과 권력—이 모든 것이 축복이라 믿으며, 그 기대에서 벗어나는 삶을 실패로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인간 존재의 한계, 즉 불완전성과 유한성을 망각한 결과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정반대에 있다. 인간은 갈망을 분수처럼 가진다. 분모는 실제 소유, 분자는 욕망이다. 분자가 커질수록 만족은 줄어든다. 바닷물을 마시는 자가 더 갈증을 느끼듯, 욕망을 좇는 삶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간의 실존을 지배하는 가장 깊은 두려움은 '죽음'이다. 우리는 종종 그것을 회피하거나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서는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말했다. “인간은 죽음을 향해 존재한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할 때 비로소 실존적 삶을 시작한다고 보았다.
키에르케고르 역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죽음을 외면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깊은 절망이라고 경고했다. 죽음을 잊고 사는 사람은 영원한 것을 망각하고, 순간적인 것에 몰두하며, 결국 진정한 자아로부터 멀어진다.
죽음을 기억하는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지금 내가 갖고자 애쓰는 것들, 이루고자 조급해하는 것들, 그것들 모두는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내 건강한 육신도, 명예도, 소유한 재산도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사랑, 신에 대한 믿음, 진실된 삶의 가치들은 죽음조차 침범할 수 없는 것들이다.
진정한 자유는 이러한 가치를 지키려는 데서 온다. 명예, 권력, 부는 자칫 나를 불태우는 우상이 될 수 있다. 그것들은 축복이 아니라 시련일 수 있고, 경계하지 않으면 나를 옥죄는 사슬로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의식 중에 그것들을 갈망하고 있다. 그래서야말로 정신적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마음에 걱정이 떠오를 때마다 말이다. "이 걱정은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걱정은 버려야 할 무게다. 그렇게 나는 나의 마음을 점검하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려 한다.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 앞에서도 여전히 남을 가치를 좇아 살아가라. 그것이야말로 걱정에서 자유로 가는, 영혼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