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의 삶이 요구하는 치열한 정신노동

by 신아르케

우리는 종종 살아 있음에도 마치 누군가의 삶을 대리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실존적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 기준에 따라 매 순간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이다. 그러나 실존의 길은 편안하지 않다. 오히려 매우 고독하고 치열하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지를 누군가가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 실존의 무게를 감당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타인이나 전통, 조직이 내려주는 판단이 아닌 나 자신의 신앙적·윤리적 기준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과정이 곧 정신적 노동이라고 믿는다. 육체의 수고도 귀하지만, 삶의 의미를 묻고 진리를 탐구하는 내면의 노력은 결코 덜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흔히 '일' 하면 땀 흘리는 노동을 떠올린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진리를 찾는 영적 분투 또한 높이 평가하신다. 전도서 9장 10절은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일’은 눈에 보이는 노동만이 아니라, 마음의 일, 생각의 일도 포함된다고 나는 해석한다.


이러한 실존적 사유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우리 몸 에너지의 20% 이상을 소비한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익숙한 생각과 자동반응에 의존하려 한다. 우리는 쉽게 습관과 관행, 편견에 기대며 ‘왜?’라고 묻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실존이 단절된다.


우리 사회, 특히 한국 교회는 이러한 두려움 속에 머물러 있다. 지도자들의 말에 비판 없이 순응하고, 공동체의 분위기에 휩쓸려 신앙을 판단하는 문화가 팽배하다. 이로 인해 참된 신앙의 자유, 양심에 따른 가치 판단, 영적 주체성이 위협받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는 더욱 각성해야 한다. 실존적으로 신앙을 살아가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를 넘어,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끊임없는 사유와 성찰을 의미한다. 나에게 기도는 곧 정신적 노동이며, 신의 뜻을 향한 부단한 탐색이다.


물론, 이러한 삶은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이 편안함과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실존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홀로 서야 할 존재이며, 그분 앞에서의 고독한 책임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이고 영광이다. 실존적 삶은 고단하지만, 그 길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빚고, 신 앞에서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해 간다.


마지막으로 나는 매일 기도한다.

“주님, 저의 나태함을 용서하소서. 생각 없이 살아가지 않게 하시고, 실존적으로 신앙하며, 당신의 뜻을 내 삶에 구현하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