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의 신앙이 아닌,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

by 신아르케

생에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신을 믿는다고 공언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맥락에서 보면, 그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했기에 죽은 후에는 천국에 갈 것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말이 아닌 그의 삶, 태도,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전반적인 모습은 그 고백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신의 음성을 듣지도, 말씀을 따르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신앙은 기만일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신을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삶으로 입증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사람이 신을 믿는지를 그의 언어가 아닌, 삶이 말해주는 방식으로 평가하려 합니다. 단지 매주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그가 진실로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입술의 고백뿐 아니라 삶을 통해 그 진리를 구현하는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존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내는 신앙, 그 안에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흥미로운 역설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말하면서도, 그의 삶과 태도는 지극히 신앙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이보다 더 도덕적이고, 정의롭고,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신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태도, 정의롭지 못한 방법을 거부하고 불의에 항거하며, 소외된 이웃을 보살피고 존중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배려와 예의를 갖추며 살아가는 사람은 신의 뜻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을 믿는다는 고백 없이도 말입니다.


따라서, 자신은 신을 믿지 않는다고 공언하면서도, 삶의 궤적이 오히려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실천의 연속이라면, 저는 그것이 곧 믿음의 또 다른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다만 자신의 믿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소년이 한 소녀를 사랑하지만,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부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늘 그녀를 생각하고, 돌보고, 존중하며, 위기에서 지켜주려 합니다. 입으로는 사랑하지 않는다 말하지만, 그의 행동은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음의 진실을 부정한 채 살아가는 인간의 흔한 모순이자, 실존의 역설입니다.


물론 신학적으로 조심스러운 물음이 될 수 있지만, 만약 누군가 제게 이렇게 묻는다면:

“신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삶으로는 부정하는 사람과,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삶으로는 믿는 사람, 과연 누가 구원에 더 가까운가?”

저는 후자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믿음은 말이 아니라 삶에서 드러나는 실존적 진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