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by 물음표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처음 이 말을 알게 됐을 때부터 싫었습니다. 물론, 단순하게 어구만 놓고 본다면 '미움을 받더라도 용기를 내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제게는 용기라는 단어 자체를 폄하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죠.

2014년, 한국에 이 책이 출판되고 나서 시간이 꽤 지난 현재에 이르러 다양한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뉴스나 사설, 인터뷰 등과 같은 곳에서 사례들이 나올수록 제 안에서는 확신이 가득 찼습니다.

‘저 말은 잘못됐다. 말 자체가 좋지 않은 말이다.’라고 말이죠. 그렇지만 여전히 무엇이, 왜 잘못된 건지는 세세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처음 느꼈던 때에 비해 어구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뿐이었죠.

혼자 이리저리 궁리를 하고 사색을 해봤지만 여전히 ‘확실히 이것이 잘못이다.'라고 꼭 짚기 어려워지려는 찰나에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바로 용기라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본 바가 없다는 것이었죠. 물론 일반적으로 어느 상황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서 용기가 뭔데?’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을 알고 나니 용기란 것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일어나더군요. 그래서 일단 용기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용기(勇氣)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


여기서 기운은 정신력으로 표현할 수 있고, 기개는 신념이나 가치관을 지키려는 불굴의 의지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용기는 한자 날랠 용(勇)과 기운 기(氣), 두 한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용(勇)에서의 날래다는 뜻은 '나는 듯 빠르다'는 뜻입니다. 물론 날래다는 뜻 말고도 '용감하다, 과감하다, 결단력이 있다'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용감하다는 것은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이를 무릅쓰고 나아가거나 행동할 수 있는 정신적 힘을 뜻하고, 과감하다는 일반적인 틀이나 한계를 넘어서 주저하지 않고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결단력이 있다는 것도 어떤 상황에서 신속하고 확고하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이 네 개는 한 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행동하는 것’이죠.

빠르게, 두려움에도 주저하지 않고, 확고하게 판단해서 행동하는 것이 용(勇)이라는 글자가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氣)에서 기운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만물이 나고 자라는 힘의 근원 또는 사람이나 동물이 활동하거나 일을 하는 데 필요한 힘'이라고 합니다.

사실 기(氣)는, 기운이란 것은 측정하는 것은 어렵고, 눈에 보인다고 말하기도 힘들기에 전 용기에서 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언가가 가지고 있는 강한 의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용기를 제 방식대로 해석하자면 ‘강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제 해석을 가지고 미움받을 용기를 다시금 보도록 하죠.

일단 용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강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가 필요하죠.

어찌 보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감이 낮은 사람 입장에서는 용기를 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고, ‘미움받을 용기’라는 말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용기'라는 단어가 가진 본래의 의미를 모른 채 하게 되는 자기 위로에 가깝습니다.


용기를 낸다는 것은 좋은 결과를 맞이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맞이할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안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더라도, 자신을 믿고 실낱같은 희망일지라도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행동하는 것, 그것이 용기입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세상은 실패한 결과를 낸 용기는 '미련하다, 멍청하다, 고집부리더니 결과가 아쉽네' 등과 같이 비난에 가까운 언사들로 점철될 뿐 그 용기 자체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는 당연한 겁니다. 마치 모두가 초능력자면 초능력이 특별해지지 않는 것처럼 용기를 내는 것만으로 성공을 보장받는다면, 이 단어가 가진 특별함은 사라졌을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이것이 미움받을 용기라는 표현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 표현은 성공했을 때의 결과만을 조명하며, 실패했을 때를 얘기해 주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용기를 낸 결과가 성공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패할 확률이 높을 때 필요한 것이 용기입니다. 용기를 내어 시도해 봤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미움받을 용기를 내봤지만 결과가 아쉽네요.’라고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지요?

적어도 저는 단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미움받아도 상관없다는, 미움받는 게 당연한 용기는 없습니다. 그러한 두려움조차 이겨내고 도전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용기는 결과가 아닌 과정, 나아가 시작점에 대한 단어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용기는 그저 달리기 경주에서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와 같습니다.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운, 실패가 걱정되며 불안할 때, 실낱같은 희망을 바라고 숨 쉴 곳을 찾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 용기입니다.

과정에 있어서는 비난을 받거나 비웃음을 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을 이겨내기 위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결과라는 것은 누누이 얘기했듯 바란다고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미움받는 것을 당연시하며 행동하는 순간, 용기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만용'뿐일 겁니다.

진정으로 용기를 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저 자신을 믿고 다른 사람의 얘기는 참고만 하며, 필요한 경우에만 계획을 수정하는 데 활용하면 됩니다. 행동함으로써 맞이하게 될 결과의 주인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니까요.

물론 그 결과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모욕과 비난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렵게 낸 용기 자체가 폄하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용기 내는 것을 막는 이유가 될 수도 없고 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앞선 글인 ‘긍정과 부정’에서 말했듯이 '실패는 과정일 뿐이며,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는 여정에서 발견하게 될 오답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나아가다 보면 마주하게 될 다양한 오답지들은 가고자 하는 도착지에 대한 이정표가 될 겁니다.

아주 작게 들리는 신호탄이라도 그것을 듣고 움직이고, 오답지들을 확인하며,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다 보면, 그 한걸음 한 걸음이 모여 어느덧 도착지에 도달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실패할 확률이 높은, 누군가가 보기엔 아주 작은 누군가의 용기가 세상을 바꾸어 왔던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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