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과 자기애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우연히 '브런치'란 앱을 알게 되었고, 그간 제가 하던 얘기를 정리해서 글로 써보라는 조언을 듣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두 달 반 정도가 흘렀습니다.
기존에 하던 것을 글로 정리해 열린 공간에 올렸을 뿐인데, 나 자신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크게 변화하게 된 것은 지금도 신기합니다.
특히나 ‘자존감 1’을 적으며 조금씩 바뀐 제 생활 습관과 사고방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저를 지탱하는 자신감 중 하나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이 생활을 유지해 오면서 의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존감이 올라간다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죠.
‘자존감 2’ 글에서 자존감은 내려가는 게 아니고, 급하지 않게 천천히 나아가다 보면 올라가 있을 것이라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나아가면서 느껴진 것은 자존감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만 오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리저리 고민을 해보고 깊은 사색에 빠져봤지만, 명쾌하게 생각나는 것이 딱히 없더군요.
그러던 도중 예전에 잠깐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예전에는 ‘자존감이 올랐다’는 말은 쓰지 않았고, ‘자신감이 올랐다’는 표현만 사용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 왜 한국에는 자존감이란 표현은 쓰이지 않았고 자신감이란 단어를 주로 사용했을까?' 하는 물음표가 마구 찍히더군요.
그러나 그전에 자신감이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알아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찾아봤습니다.
자신감(自信感)
자신이 있다는 느낌
너무 간단해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물론 저 설명 말고는 딱히 자신감을 더 표현할 방식이 없을 겁니다. 아주 조금만 더 풀어서 보자면 '스스로를 믿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것만을 가지고는 제가 가진 의문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기에 늘 그렇듯 한자의 어원을 찾아봤습니다.
자(自)는 ‘스스로 자’라는 한자로 자신을 뜻합니다. 이 한자는 인간의 코를 형상화한 상형자로, 코를 뜻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스스로’만을 의미하게 된 이유는 중국과 일본에서 자기 자신을 나타낼 때 코를 가리키는 문화로 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신(信)은 ‘믿을 신’이라는 한자로 ‘믿다’를 뜻합니다. 원래는 편지라는 뜻이었는데, 편지에는 중요한 내용이 담겼으므로 ‘정보’라는 뜻이 생겼고, 정보는 믿을 만한 사람한테 전달해야 하므로 ‘믿다’라는 뜻이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어원을 찾아보며 저는 ‘자신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신(信)’입니다.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정보의 신뢰도'겠죠. 그리고 그러한 신뢰도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진실성'과 '사실성'입니다. 여기서 진실성은 '의도나 동기'를 뜻하고 사실성은 '결과'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학생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고 해보죠. A가 시험을 보기 전에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싶어.’라고 얘기하며 열심히 준비했다는 것이 정보의 진실성입니다. 그리고 A가 실제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 이 정보의 사실성이죠.
즉, 자신감이란 ‘스스로를 믿게 만드는 (진실성(동기)과 사실성(결과)을 갖춘 신뢰도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한) 느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존감을 올리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맞이하는 것'이라 말씀드렸죠. 그러나 자신감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이것이 자존감을 올리는 것이 아닌 '자신감을 올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보다 나아지겠다는 동기와 실제로 조금이라도 나아진 사실을 바탕으로 스스로가 또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근거이자 믿음을 갖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얻게 되는 것은 자신감이었던 것이죠.
그렇습니다. 제가 ‘자존감 2’ 글에서 말한 것들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하자면 겉핥기만 했던 것에 가깝습니다.
저로 예시를 들자면, 제가 아침에 일어나 침대를 정돈하는 일을 놓고 봐보죠. 이부자리를 정리하게 된 이유는 이불과 베개를 어질러진 상태로 두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래서 정리하게 되었고 그 결과 방에 들어갈 때마다 쾌적함을 느끼게 되었죠. 특히나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그 감정은 배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제가 해석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바라보면 이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를 정돈할 필요성을 느꼈고(동기), 그에 따라 실제로 행동했고, 그 행동의 결과 쾌적함을 얻었다는 결과(사실성)를 바탕으로 나를 믿을 수 있는 자신감(신뢰도 높은 정보)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자존감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자신감이라면, 도대체 자존감은 무엇일까요?
답은 생각 외로 간단했습니다.
'존중'이 '귀하고 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뜻한다고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견, 선택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갖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나와 다르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에도 상대방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를 바탕으로 자존감에 대해 조금만 시선을 다르게 보면 됩니다.
'나'라는 존재를 '정신을 담당하는 나' A와 '육신을 담당하는 나' B, 이렇게 둘로 나눠보죠.
'행동'은 A(정신)와 B(육신)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녁시간이 다가오자 B(육신)가 배고픔을 느낀다고 해보죠. 그러나 A(정신)는 다이어트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저녁을 건너뛴다면 B(육신)가 A(정신)를 존중하기에 저녁을 안 먹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A(정신)가 B(육신)를 존중한 것이죠.
또 다른 예시로, A(정신)는 건강을 위해 채소와 영양소가 많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B(육신)는 자극적인 음식이 먹고 싶어 강하게 끌리는 상황입니다. 이 경우에도 A(정신)가 B(육신)를 존중해 원하는 음식을 즐겁게 먹거나, 반대로 B(육신)가 A(정신)의 건강 목표를 존중해 건강한 식사를 선택하는 것 모두 존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과 휴식에 있어서도 똑같습니다. A(정신)는 오늘 하루 동안 목표를 더 많이 달성하고 싶다고 느끼고 있지만, B(육신)는 피로를 느끼고 쉬고 싶어 합니다.
이때 A가 B를 존중해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면, 이는 자신의 필요와 상태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B가 A를 존중해 집중력을 발휘하고 목표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죠.
이외에 머리를 기르는 것, 머리를 자르는 것, 누워서 쉬는 것, 앉아서 쉬는 것, 물을 마시는 것, 음료를 마시는 것 등등 이런 모든 것이 자신이 ‘나’라는 존재를 존중하기에 같이 고민해 주고 어떤 의견이든 귀 기울여주고 동의해 주기에 일어나는 ‘행동’인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자존감이란 것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이미 ‘나라는 존재를 존중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보자면 일반적으로 쓰이는 자존감이 왜 자신감과 비슷해 보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자신감은 진실성(동기)와 사실성(결과)을 바탕으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동기가 결과로 나타나려면 필요한 것이 바로 '행동'인 것이죠.
위에 언급한 제 예시를 다시 보자면,
아침에 일어나 침대를 정돈할 필요성을 느꼈고(동기)
그에 따라 실제로 행동(나를 존중하는 것)했고, 그 행동의 결과 쾌적함을 얻었다는 사실(결과)을 바탕으로
나를 믿을 수 있는 자신감(신뢰도 높은 정보)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한다면
‘나쁜 행동을 하는 것도 존중하는 것이냐?’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더 나아가 마약을 한다든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자존감이 있는 거냐?’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대답부터 하자면, '네 그렇습니다.'
A(정신)를 존중하기에 B(육신)가 따르는 것이죠. 그것이 어떠한 행동이든지 간에 말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무엇이 되었든 어떤 이유가 있든 방해가 있든 상관없이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이미 내가 나를 존중해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감과 자존감만으로는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띄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되지도 않고 이해되지도 않습니다.
왜 자신을 해치는 행동들도 자신을 존중하는 것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억나실지는 모르겠지만, ‘자존감 2’ 글에서 다른 것들과 비교를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이미 사랑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자존감의 핵심 키워드인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위에 언급된 것들을 연결할 수 있는 연결고리인 것입니다. 즉, 자신감과 자존감 그리고 여기에 자기애를 더해야지만 '세간에서 말하는 자존감'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언급하는 자기애는 나르시시즘적인 자기애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가 완전무결한, 완벽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죠. 누구나 단점은 있고,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고 망상입니다. 그러한 '단점과 못난 점조차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사랑스럽게 느끼는 것'이 '진정한 자기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기애를, 스스로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이 궁금하시겠죠. 이는 제가 이미 알려드렸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이죠.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자신이 바라본 스스로의 단점과 못난 점은 그럼 무엇이냐는 의문이 들 겁니다. 이것에 대한 답은 무척이나 간단합니다. 그것들은 어려서부터 성장하며 ‘주관적인 시선’에 의해 비교, 평가를 당하기도, 또 스스로에게 하면서 쌓인 자기혐오입니다.
아마 첫 시작은 부모 또는 주변 어른들로부터 시작된 비교일 겁니다. '저 아이는 의젓하네, 저 아이는 참 어른스럽네, 저 아이는 참 이쁘네.' 같은 간접적인 비교의 말로 그것이 의젓하고 어른스럽고, 이쁘다는 것을 알게 되겠죠.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과 비교를 할 겁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모든 것들은 결국 '주관적인 시선'이라는 겁니다. 다수가 그렇게 느끼더라도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물은 액체입니다’는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물은 따뜻합니다’는 주관적으로 맞다 또는 아니다로 나뉠 수 있는 것이죠. ‘기온이 20도입니다’는 객관적, ‘기온 20도는 춥습니다’나 ‘덥습니다’ 같은 것은 주관적인 것인 겁니다.
그렇다면 'A라는 사람은 CEO다' 'A라는 사람은 명품을 입었다'는 객관적, 'A라는 사람이 능력 있어 보이는 것도, 힘이 센 것도, 날씬한 것도, 멋있는 것도, 뛰어난 것'도 전부 다 주관적인 시선에 의한 판단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주관적인 시선에 의한 판단들은 성장 과정에 있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세상을 알아가는 데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정보이며, 사실로 느껴집니다. 마치 ‘물은 따뜻한 겁니다’라는 말을 ‘물은 액체입니다’와 같은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커가면서 집단 또는 사회에 속하게 되고, 그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들의 주관적인 의견들 중 공통된 내용을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을 판단하며 스스로에 대한 혐오까지 쌓게 되는 겁니다.
한국을 예시로 놓고 보자면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은 글자의 어원으로만 놓고 보더라도 객관적인 사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영수(국어, 영어, 수학) 바탕으로 한 교과서만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부라는 것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학문이나 기술 등을 익히고 연마하는 것을 뜻하니까요. 그렇기에 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미용을 배우든 엔지니어링을 배우든 공부를 하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조금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주요 과목을 위주로 공부하고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또는 좋은 대학을 가지 않으면 패배자로 보거나 불쌍하게 바라보죠. 당사자들 또한 그러한 시선을 느끼고 자신에 대해 의구심을 갖거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겁니다. 주관적인 시선에 의해서 말이죠.
한국의 학생을 예시로 들었지만, 이것뿐일까요? 가족 구성원에게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른들에게서도, 문화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수많은 집단에서 생긴 객관적인 척하는 주관적인 시선들 때문에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로 조금씩, 어떨 때는 크게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고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겁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상태인데 어떻게 자신을 혐오하냐 하시겠지만, 시작부터 혐오인 것은 아닙니다. 자그마한 의심 정도겠죠.
‘나는 왜 이걸 못하지?’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티끌 같은 의심은 점차 실망으로 변하게 되고, 주변으로부터 세워진 주관적인 기준들에 맞추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넘어 어느덧 혐오와 증오로 변하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형성된 자기혐오 또는 자기 증오는 폭력성을 띄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던 술, 담배, 마약 더 나아가 자학이나 범죄 등과 같은 자기 파괴적인 양상을 띄는 것 또한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름답게 바라보는 자기애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채, 주관적인 것들로 비교하며 조금씩 쌓인 증오의 결과물들인 것입니다.
앞서 자존감은 사실 이미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들에 녹아져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간에서 말하는 나쁜 행동들도 똑같습니다. A(정신)가 주관적인 시선들로 인해 생긴 착각들을 바탕으로 B(육신)를 또는 반대의 경우로 미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파괴적인 행태를 띄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 또한 결국 A(정신)를 존중하기에 B(육신)은 따르는 것입니다.
앞서 존중에 대해 다시금 설명할 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때로는 나와 다르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에도 상대방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혐오로 인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스스로를 미워하는 자신조차 결국 존중하기에 힘들고 고통스러움에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모든 것들은 결국 객관적이다, 보편적이다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하는 '주관적인 것들의 집합'을 렌즈로 만들어 끼운 안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대단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악인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구세주가 되는 것처럼 모든 것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보자면 내가 쓴 안경으로 인해 단점으로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은 단점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안경은 몇 년에 걸쳐 만들어지고 십몇 년 또는 더 많은 시간 동안 쓰고 있었기 때문에 벗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의 주관이 내가 사랑스럽고 멋지다는 것을, 나를 증오할 이유도 나를 혐오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는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근거를 찾고, 또 쌓아 올리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눈치채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자신감이죠.
자신의 주관이 맞다고 하려면, 머릿속에 있는 이상향이 아닌 현실에서 존재하고 느낄 수 있는 사실에 기반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상향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자신감을 올리는 것입니다. 전에 ‘자존감 2’ 글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자신감을 올리기 위해 할 것들은 큰 게 아니죠.
방에 어질러져 있는 이불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방에 있는 휴지조각을 줍는 것만으로도, 아침에 일어나 사랑하는 가족에게 웃으며 좋은 아침이라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을 올리는 것이며, 어제의 나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되는 것,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이 또한 나를 존중하는 것입니다.)을 통해 스스로가 충분히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쌓아 올리는 겁니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한 것만으로는 내가 이상적으로 꿈꾸던 사람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다 보면, 밤새 땀에 젖었던 것이 떠올라 탈취제를 뿌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주말마다 이불을 빨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방청소도 하게 되고,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긴 채 안 쓰는 물건들을 버리게 되며, 깨끗해진 방과 거실을 바라보며 거실도 청소하게 되고, 주방도, 어느새 집 전체를 치우고 정돈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을 가꾸게 되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천천히 자신이 바라던 이상점에 도달한 스스로를 볼 수 있겠죠.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쌓여 있던 자기혐오적인 마음은 사라질 것이고, 주변의 것들과 자신을 비교하던 버릇도 없어질 겁니다.
이것을 세간에서는 자존감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 칭하겠죠. 그러나 사실은 자기애와 자신감, 그리고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 합쳐진 것뿐이라는 걸 이제는 아시게 됐을 겁니다.
정리하자면 '자기애, 자존감, 자신감' 이 세 가지는 '순환'하는 겁니다.
자기애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더 좋은 것들을 주고 자기 계발을 하길 바라며,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존중을 바탕으로 행동하게 되고, 결과에 의해 자신감이 오르며 또다시 나를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다시금 필요성을 느끼고 다시 존중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순환을 말이죠.
방에 떨어져 있던 휴지조각을 집어서 버리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날마다 집 전체를 치우고자 청소기를 돌리고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해서 저녁에 버리는 것으로 집 전체가 깨끗해졌고,
간식을 한 개씩 줄였던 것이 어느덧 간식을 아예 안 먹고 음식의 무게를 재가며 식단 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산책하던 것은 1시간 넘게 하게 되었고, 운동은 턱걸이까지 시도하고 있습니다.
허리 사이즈는 36에서 32로 줄었고, 좋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며 염색도 하고, 옷도 새로 몇 벌 사서 외출하는 것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주관들로 가득한 안경을 벗고 저를 바라보니, 이렇게 행동하는 제 자신이 충분히 멋진 사람인 걸 알게 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자기 전에는 내일을 기대하며 보내고, 아침에는 그날에 마주하게 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하며 즐겁게 시작하죠.
나를 사랑하는 것도, 나를 존중하는 것도, 나를 믿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휴지를 줍는 것으로 이만큼 왔듯이, 이 글을 읽는 분들 또한 이미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해오던 모든 것들이 이미 존중하기에 이뤄졌다는 것을,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도 휴지 줍는 것만큼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그 자체로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고, 또한 충분히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