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다 1

by 물음표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어릴 적에 읽었던 유명한 일본 만화책 ‘블리치’에 나온 대사입니다. 최근 유튜브를 보다가 이 대사가 크게 유행했던 것을 알게 되었죠. 사실 그 당시에는 그저 전투 장면만을 집중해서 봤기에 이 대사가 크게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다시 접하게 되니 ‘동경이라는 단어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대사가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 만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하려면 복잡하고 길어질 것 같아, 이해하기 쉬운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회사에 인정 많고 상냥한 팀장이 있었습니다. 팀장은 항상 부드러운 말투로 직원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멋진 리더입니다. 팀원들은 그를 무척 신뢰했고, 일부는 "나도 저런 리더가 되고 싶다."며 그를 동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회사의 주요 기밀이 유출되었고, 그 배후에 바로 그 팀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겁니다. 그는 실제로는 직원들의 신뢰를 이용해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 했던 냉혹한 사람이었고, 그동안의 다정했던 모습은 모두 연기였던 거죠.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을 가장 신뢰하고 늘 동경해 온 부하에게 누명을 씌우고 그 책임을 떠넘깁니다. 그리고 해고를 당해 나가는 부하에게 팀장은 냉정히 이렇게 말합니다.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야.”


이 예시는 원작의 상황을 간단히 풀어낸 것인데, 잘 이해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 이 대사로 당시의 저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문장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모두 이해했다고 믿으며 가볍게 지나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을 하던 도중, 문득 아주 작은 의심이 피어났습니다.

‘과연 동경과 이해는 정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까?’

물음표가 찍히더군요.

이 물음표를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 보니, 문장이 주는 강렬함에 이끌려 중요한 사실을 깜빡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제가 동경과 이해라는 개념에 대해 제대로 알아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언제나 그래왔듯, 이제 동경과 이해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동경(憧憬)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함


사전에 나온 동경의 의미를 보자 오히려 머리가 더 복잡해졌습니다. 제가 생각한 동경의 늬앙스는 무언가를 간절히 그리워한다는 의미보다는 경외와 존경이 적절히 섞인 것으로 봤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좀 더 명확히 이해하고자 어원을 찾아봤습니다.


동(憧)은 '동경할 동'이라는 한자로, 心(마음 심)과 童(아이 동)이 합쳐진 형성자입니다. 여기서 童(아이 동)은 본래 '높고 멀리 있는 대상을 바라보는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동(憧)이라는 한자는 '아이가 아직 닿을 수 없는 대상을 향해 갖는 순수한 마음'을 뜻하며 이것을 동경으로 보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 대상은 아마도 ‘어른’을 뜻하겠죠.


경(憬)은 '깨달을 경, 동경할 경'이라는 한자로, 心(마음 심)과 景(경치 경)이 합쳐진 형성자입니다. 여기서 景(경치 경)은 햇빛이 비치는 밝은 경치를 의미하며, ‘밝고 명확한 상태’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놓고 봤을 때, 경(憬)이라는 한자가 뜻하는 바는 '마음이 밝고 명확한 상태, 즉 희망이 있음을 깨달아 비로소 동경하게 되는 마음'을 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해석한 동경의 어원을 가지고 의미를 좀 더 세세하게 말하자면 어린 시절, 누구나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어른’은 단순히 나이를 먹은 사람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롭고 뭔가 멋있는 사람'이겠죠.

즉, 사회에서 경험하게 될 나쁜 일들에 대한 정보나 관심은 일절 없는,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상상하는 최고로 긍정적인 모습, 즉 ‘가장 이상적인 어른만을 바라보며 희망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 이것이 ‘동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리하자면, 사전에서 설명하는 동경은 ‘어떤 것(의 자신이 상상하는 가장 이상적인 면)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번엔 '이해'에 대해 알아볼 차례입니다.


이해(理解)

1.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2.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


여기에서 '사리'란 '일의 이치'를 뜻합니다. 이치는 '사물의 근본 원리와 논리적 타당성을 강조'하는 단어로서, 1번을 좀 더 풀어 설명하자면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존재하는 이유와 원리, 그리고 그것에 내재된 논리적인 체계를 분별하여 해석하는 것’을 뜻합니다.

역시나 이것만으로는 이해에 대한 개념이 분명치 않아 어원도 살펴봤습니다.


이(理)는 '다스릴 리'라는 한자로, 玉(구슬 옥)과 里(마을 리)로 이뤄진 형성자입니다. 본래의 뜻은 옥을 가공할 때 옥의 결을 따라 다루지 않으면 안되므로 '옥을 결대로 다스린다'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분명 마을 리(里)가 추가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보이더군요. 그러다 문득 옥을 가지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떠올랐습니다. 바로 왕이죠.

'왕이 마을을 다스리는 것은 옥을 결대로 다루는 것과 같이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겠구나.' 하고 보니 마을을 뜻하는 한자가 포함된 것이 이해가 됐습니다.


해(解)는 '풀 해'라는 한자로 角(뿔 각)과 刀(칼 도), 牛(소 우)가 합쳐져 만들어진 회의자입니다. '소(牛)의 살, 뼈, 뿔(角) 등을 칼(刀)로 따로 바른다'는 뜻으로 '풀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어원만을 가지고 ‘이해’라는 단어를 설명하면, 국어사전의 의미와 연결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의외로 쉽게 해석이 되더군요.


옥을 결대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리고 붙어있는 돌조각도 떼어내기 위해 손질을 해야 하죠.

마찬가지로 왕이 마을을 다스리는 것도 비슷합니다.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며, 외부의 위험에서 마을을 분리해야 하고, 내부에서 생기는 불안도 잠재워야 합니다. 이 밖에 할 일은 더욱 많겠죠.


즉, 이러한 다스리는 행위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존재하는 이유와 원리, 그리고 그것에 내재된 논리적인 체계를 분별하여 해석하는 과정’을 바탕으로 이뤄집니다.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풀어헤쳐서 자세히 봄으로써 ‘문제를 깨닫고 알아야 하며, 더 나아가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까지 해야 하는 것이죠.


정리해서 제가 해석한 '이해'를 말씀드리자면,

1.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하는 ‘과정’으로부터

2. 깨달아서 알게 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써 초반에 찍혔던 물음표의 답에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다'라는 문장에 대해 풀어보도록 하죠.


여기서 ‘이해’가 의미하는 바는 ‘깨달아서 알게 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동경’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네. 자신이 상상하는 가장 이상적인 면이자 이미 실현된 결과, 즉 ‘타인이 증명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나는 상상만 가능했던 이상적인 결과’를 의미합니다.

조금 더 정리해서 말하자면, '이해'에서 의미하는 ‘결과’는 ‘내가 증명하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동경'에서 의미하는 ‘결과’는 ‘남이 증명한' 결과를 뜻합니다.


그렇기에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다'라는 문장이 말하는 것은

'남이 이뤄낸 ‘이상적인’ 결과는 내가 이뤄낸 ‘현실적인’ 결과로부터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가장 멀다'는 것을 뜻하게 되는 거죠.


간단한 예시로 설명해 보죠.

어린 아이가 커피를 마시는 부모를 보며 궁금해 합니다.

‘어떻게 어른들은 저렇게 쓴 커피를 맛있게 마실까? 나도 어른이 되면 맛있게 마실 수 있겠지?’

이때 어린 아이가 느낀 것이 '동경(결과)'입니다. 부모가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모습(남이 증명한 이상적인 결과)을 생각하며, 어른이 되기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아이는 다시금 커피를 마셔보지만 여전히 써서 마실 수 없었고, 그래서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커피는 여전히 쓰기만 하고 맛이 없네.’


이때 어른이 된 아이가 경험하는 것이 '이해(결과)'입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쓰기만 한 커피(내가 증명하는 현실적인 결과)를 받아들이며 '어른이 되는 것과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이렇듯 '동경'과 '이해'는 '남이 증명한 이상적인 결과'와 '자신이 경험한 현실적인 결과'의 '차이'를 통해 대비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통해 보자면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다'라는 문장이 맞는 말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만을 놓고 보자면 제가 물음표를 찍은 부분이 틀렸고, 블리치의 대사가 맞은 것입니다. 이 또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더 자세히 알게 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니까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제가 틀린 것이 확실하다면 제 안의 물음표가 사라질텐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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