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다 2

by 물음표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일단, 질문부터 해보죠.

‘결과’로부터 가장 먼 단어는 무엇일까요?

저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 제가 설명한 동경과 이해, 이와 관련한 예시를 다룰 때에도 ‘시작’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시작’을 내포할 가능성이 있는 단어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해 드렸지요. 그 단어는 바로 '동경'입니다.

아마 동경이 어떻게 ‘시작’을 의미하는지 의문이 드시겠죠. 그렇기에 이제부터 찬찬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앞서 '동경'은 ‘남이 증명한 결과’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 말에 틀린 부분은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기에 놓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이 증명한 결과를 ‘보며 시작되는 것’이 동경이란 것이죠.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이상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면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며 이상적인 것이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하다는 근거를 발견하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도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의지를 갖게 되는데, 이것을 동경이 가능하게 합니다.

즉, '동경'은 ‘남이 증명한 결과’이자 동시에 ‘증명된 결과로써 나의 시작의 근거’로 볼 수 있는 것이죠.


앞선 예시의 어린 아이가 부모가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모습을 보고 느낀 동경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죠.

‘어떻게 어른들은 저렇게 쓴 커피를 맛있게 마실까? 나도 어른이 되면 맛있게 마실 수 있겠지?’

여기에서 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증명된 결과’로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자신도 가능할 수 있을 거라는 ‘시작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경을 ‘시작의 근거’로 바라볼 때, 비로소 '이해'는 앞서 해석한 2개 중 ‘결과’가 아닌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하는 ‘과정’'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보면 문장은 완전히 뒤집어집니다. 바로 이렇게 말이죠.


‘동경은 이해와 가장 가까운 감정이다'


이는 물리적인 시간 순서로도, 심리적으로 발현되는 순서로도 놀랍게 딱 들어맞습니다.

제가 설명한 대로 본다면 '동경'의 의미는 '(남의) 결과와 (나의) 시작'이고, '이해'의 의미는 '과정과 (나의) 결과'입니다.

이것을 한 개인을 바탕으로 좀 더 풀어서 말해 보자면, '동경'은 ‘내가 증명한 것이 아닌 결과’와 ‘그 결과를 내 시작의 근거로 삼는 것’이고, '이해'는 ‘근거를 바탕으로 시작해서 내가 실현하는 과정’과 ‘과정을 바탕으로 내가 얻게 되는 결과’인 것이죠.


(남의) 결과를 보고 시작하게 되어,

과정을 경험하고,

(나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동경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남이 증명한 '결과'에서 내가 증명한 '결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기에 '이해'는 가장 멀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경하고 '시작한다'면,

증명된 남의 결과를 보며 내가 '시작'하여 내가 실현하기 위한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이해'는 가장 가깝게 되는 것이죠.


아까 들었던 예시를 이어서 재구성해 보도록 하죠.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아이는 다시금 커피를 마셔보지만 여전히 써서 마실 수 없었고, 그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커피는 여전히 쓰기만 하고 맛이 없네.’

하지만,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해야 할 때 카페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며, 그는 점점 커피를 마실 필요성과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즉, 커피가 단순히 맛이 아닌 삶에 필요한 무언가로 다가오는 것이죠.

이것이 '이해'의 첫 번째 의미인 ‘과정’입니다.

어른이 되기 위해, 또는 커피가 필요해서 마시는 이유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이해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커피를 매일 마시며 두 가지 결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1. 커피를 계속 마시다 보니, 쓴맛이 익숙해지고, 어느덧 "커피는 맛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제 커피가 쓰지 않고, 정말 맛있다고 느껴져. 부모님도 이랬겠구나.”


2. 여전히 커피의 쓴맛을 느끼지만, 커피의 쓴맛 속에서 어른으로서의 필요성(피로를 풀거나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커피는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지만, 왜 부모님이 마셨는지 이제야 알겠어.”


이 두 가지 중 어떤 결과에 도달하든, 이해의 두 번째 의미인 ‘결과’에 다다르게 됩니다.

부모님처럼 커피를 즐기게 되는 동경(시작의 근거)으로부터 출발해서 도달한 이해(내가 현실화를 이룬 같은 결과)

또는

쓴 커피의 이유를 받아들이게 되는 동경(시작의 근거)으로부터 출발해서 도달한 이해(내가 현실화를 이룬 다른 결과)


이렇듯 동경은 나의 이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증명된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시작의 근거’로 삼을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스스로 경험하여 이해(과정)하고, 일어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해)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정리하자면, 동경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남이 증명한 결과'를 뜻할 수도 있고, '나로 증명된 결과'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남이 증명한 결과’로만 바라본다면,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을 모르게 되고 경험함으로 얻게 되는 사실을 알 수 없게 되어 결국 이해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더 나아가 대상과 자신을, 즉 대상이 만든 결과물과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비교하고 자신의 현실에 끝없는 부족함을 느끼게 될 확률이 높겠죠.

하지만 이를 ‘증명된 결과’로 보고 ‘시작의 근거’로 삼는다면, 자신도 도달하기 위한 과정과 결과를 경험하게 되고 그에 따라 얻게 되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더 나아가 이상을 현실로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 또 다른 누군가의 동경 대상이 될 수도 있겠죠.


그렇기에 동경을 증명한 결과로만 바라본다면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라 하는 것도 맞는 문장이고, 동경이 증명된 결과이자 시작의 근거로 바라본다면 이해로부터 가장 가까운 감정이라 하는 것, 이 또한 맞는 문장인 것이죠. 결국 틀린 것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뤄낸 것들은 이상적인 것을 현실에 실현시켜 동경의 대상이 되게 하고, 우리를 움직이게 하여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해하게 만드니까요.


이렇게 쓰다 보니 '동경'은 '선택'이고, '이해'는 그 선택으로 경험하게 되는 '과정이자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다’ 이 문장이 단순히 동경과 이해의 물리적인 또는 심리적인 거리를 말하는 대사가 아닌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당신은 동경을 결과로만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시작으로 삼을 것인가?”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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