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과 완전에 대한 제언 2

by 물음표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完(완전할 완)

‘완전하다’, ‘다 이루다’, ‘일을 완결 짓는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宀(집 면)자와 元(으뜸 원)자가 결합한 글자입니다. 여기서 元자는 사람의 머리를 강조해 그린 것으로 '으뜸'이나 '처음'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머리를 강조했지만, 그것이 '으뜸'이나 '처음'이라는 뜻을 가지려면 단순히 한 명만을 가지고 뜻하진 않았을 거라 봅니다. 최소 두 명 이상의 사람이 있어야 '으뜸'이나 '처음'이란 두 단어가 의미를 가지겠죠.

그렇기에 元 으뜸 원이 여기서 뜻하는 바는 '가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으뜸 원의 의미가 '시작'이나 '근본'을 뜻하기도 하니 단순히 가장으로 한정되지 않고 '가장을 필두로 한 집단인 가족 자체'를 뜻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족(元 으뜸 원)에게 집(宀 집 면)까지 있다면 그 가족에게는 근본적인 안정감이 생기겠죠. 이렇게 해서 '거주지가 있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면 完자에 '완전하다'는 뜻이 있게 된 것이 이해가 됩니다.

또, 한울타리에서 같이 사는 것이 공동체로서의 온전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니, 집 안에 가족이 있다는 完자의 또 다른 뜻으로 ‘다 이루다’가 있는 것도 설명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같은 거주지에서 가족 공동체가 산다는 것이 어찌 보면 한 사람의 삶에 완결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기에 ‘일을 완결 짓는다’는 뜻까지 있는 것도 납득되구요.

즉, '가장이 이끄는 가족'과 '안정된 집'이 합쳐져 곧 '완전함'을 뜻하고, 더 나아가 '삶의 완결'을 상징하는 것, 이것이 完(완전할 완)자가 내포한 진정한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璧(구슬 벽)

'귀한 옥' 또는 '결점이 없는 옥'을 뜻하는 단어로, 玉(구슬 옥)과 소리를 나타내는 辟(물리칠 벽)이 합쳐진 형성자입니다.

도넛처럼 생긴 옥 가공품을 가리키는 말에서 의미가 파생하여 '玉 옥'과 동의어로 쓰이거나 '달'을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달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 것은 화씨지벽처럼 매끄럽고 결점이 없는 손질된 옥과 육안으로만 바라보던 그 시절의 달이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라 생각듭니다.


하지만 이 한자에 '물리칠 벽'이라는 한자가 왜 쓰였을까요? 전에도 말씀드렸듯 저는 한자가 생길 때에는, 이유가 있는 필요한 한자들이 합쳐져 새 글자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찾아보니 '물리칠 벽'은 원래 '길을 연다'는 뜻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뜻을 지나 '물리치다'라는 뜻으로까지 사용됐다고 합니다.

아마도 길을 열기 위해 장애물을 제거하니 다른 이의 눈에는 물리치는 형태로 보여져 '물리칠 벽'이 된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여전히 玉 구슬 옥과 같이 씌여진 이유로는 어떠한 점에서도 납득이 안 가더군요. 그래서 辟 물리칠 벽이 어떤 한자로 이뤄졌는지 추가적으로 찾던 도중 신기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물리칠 벽'이 '완전할 벽'으로도 사용된다는 것을 말이죠.

'어째서 '물리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가 '완전하다'는 뜻까지 갖게 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마구 생겨나서 벽자의 어원을 찾아봤습니다.


辟(물리칠 벽 또는 완전할 벽)은 辛(매울 신)과 卩(병부 절)이 합쳐진 글자이며 '왕이나 법을 시행하는 자'를 뜻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때 辛 매울 신은 '형벌'을 의미하고 卩병부 절은 '무릎꿇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죠.


이것들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추론해 보면, ‘왕이나 법을 시행하는 자’가 완전한 통치를 하기 위해서는 질서를 세워야 할 겁니다.

그리고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는 혼돈과 혼란을 일으키는 원인을 ‘물리쳐야’ 하죠. 그리고 원인을 ‘물리치는 것’이 맞다면, 앞서 언급한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뜻으로 나아간 것이겠고요.

또한 '장애물'에는 아마도 '안 좋은 행동(불법, 위법 등)'도 포함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장애물인 불법, 위법 등을 제거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될 것은 재판을 열어야 하는 겁니다. 마치 ‘길을 여는 것’처럼 말이죠.


이것들을 바탕으로 본다면, 璧(구슬 벽)에 辟(물리칠 벽 또는 완전할 벽)이 사용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玉(구슬 옥)과 달리, 옥에 있는 결함들을 제거하고 물리쳐서 완전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차별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즉, 璧(구슬 벽)은 단순하게 귀한 옥을 뜻하는 게 아니라 '결함이 제거되어 가장 이상적이고 완전한 상태에 이른 옥'을 상징하는 것이죠.


그러나 璧(구슬 벽)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다 보니 '과연 璧이 상징하는 "완벽한 상태"는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벽’이 말하는 '결함이 없는 완전함'이 단순히 이루기 어려운 것을 넘어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도달하기 힘들게 느껴집니다.

아니, 오히려 불가능을 넘어 사실은 ‘현실에 완벽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완벽이라는 글자가 생긴 기원전에 있던, 결함이 제거되어 가장 이상적이고 완전한 상태에 이른 옥이라 해도,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완벽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 당시에 옥을 아무리 정교하게 가공하더라도, 오늘날의 현미경이나 첨단 기술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한 흠이나 결점은 반드시 존재할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옥이 가진 물질적 한계를 넘어, 완벽이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은 관찰의 범위나 기술의 한계로 인해 그렇게 보였을 뿐임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이는 단순히 옥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과거 ‘완벽하다’고 여겨졌던 수많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나은 기술과 새로운 관점에 의해 그 불완전함이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어, 뉴턴의 물리학은 한때 완벽한 이론으로 간주되었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며 기존 이론의 한계가 밝혀졌습니다.

그 당시 완벽했던 것은 결국 한 시대의 맥락 안에서 최선의 상태였을 뿐, 절대적이고 영원한 완벽함은 아니었다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영구적일 수는 없다는 것까지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보자면 '완벽'의 정의는 ‘결함 없이 완전한 상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흠이나 개선의 여지가 없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그 상태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 완벽이라는 상태를 만족하려면 모든 조건과 맥락을 아우르는 '절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절대적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완벽이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선, 기준이란 것은 누군가가 결정해야 되고 또 그것에 많은 사람들의 동의가 필요하죠. 하지만 그렇게 결정되더라도 결국 인간의 한계가 기준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감각과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도구와 기술 역시 그 순간의 발전 수준에 의해 제약되기 때문이죠.

이는 곧, 기준이 시대적·기술적 맥락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미 앞서 언급한 ‘완벽의 정의’가 시대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달라져 온 사례에서 이 점은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기준'은 결정자의 주관적 판단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같은 대상을 놓고도 각자의 가치관, 문화적 배경, 심리적 상태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을 객관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에게 완벽한 예술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는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관성과 상대성은 절대적 기준의 불가능성을 더욱 부각시키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예시들은 결국 언어적으로도 '완벽'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완전하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언어는 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조된 도구로 볼 수 있죠. 그렇기에 완벽이라는 개념 역시 경험적인 한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완벽함을 정의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반대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나 개념’이 존재할 가능성을 의미하죠.

예를 들어 언어를 통해 정의되는 추상적 개념들을 살펴보죠. ‘완벽한 사랑’이나 ‘완벽한 행복’ 같은 표현을 생각해 보면, 이는 각 개인의 경험과 감정, 가치관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됩니다.

어떤 사람에게 완벽한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는 결핍된 관계로 보일 수도 있고, 완벽한 행복이라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보잘 것 없을 수 있으며, 그 자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완벽'이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가 인식하는 범위(경험에 따른 가치관과 배경, 상태 등) 안에서만 사용될 뿐, 사실은 단어 자체의 정의와 본질조차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완벽’이 현실에서 제대로 정의되거나 구현될 수 없다는 말은, 철학과도 연결됩니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이데아론'에서 '완벽한 형태는 현실 세계가 아닌 이데아 세계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모든 사과는 '완벽한 사과'라는 이데아의 반영일 뿐, 현실에 존재하는 사과는 그 자체로 완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현실 세계는 항상 이상적 형태를 반영할 뿐, 그 자체로는 완벽하지 않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결국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말하는 ‘완벽’은 현실이 아닌 이상적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며, 이 이상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완벽’은 추상적인 것을 넘은 무언가로 해석하는 것이 맞겠죠.


이는 유명한 독일 철학자인 칸트가 자신의 저서 '인식론'에서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경험과 인식 능력에 의해 필터링된다.’라고 주장한 것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언어적인 부분에서 제가 말한 것과 비슷한 이 내용은, 결국 ‘완벽함’도 '우리의 인식 능력(시간과 공간의 틀)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일 뿐, 그것이 실재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칸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러한 것들을 물자체(Ding an sich)와 현상으로 구분했습니다. 여기서 '물자체(Ding an sich)'란 '인간의 감각과 인식의 틀을 넘어서 존재하는 사물의 본질적인 실체로서, 감히 경험하거나 알 수 없는 세상의 진정한 모습'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나무를 본다고 할 때, 그 나무는 우리의 시각, 경험, 관념을 통해 필터링된 모습일 뿐, 나무의 본질적인 실체는 알 수 없다는 것이죠.

즉, 플라톤이 얘기한 이데아론과 비슷하게 결국 '현실에서는 무언가의 본질적인 것을 볼 수 없다'는 뜻이며, 여기에 ‘완벽’이라는 개념 또한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죠.

즉, 철학적 개념 속에서도 ‘완벽’은 '이상적이거나 추상적인 것 너머에 존재하는 불가해한 개념'인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보면, 현실에서 ‘완벽한 원’을 구현할 수 없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물론 수학적으로 완벽한 원이나 논리적으로 완벽한 이론처럼 '개념적 완벽'은 존재할 수 있겠죠.

수학적으로 정의된 원은 중심에서부터 일정한 거리의 점들이 모인 집합으로 완벽한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론적 수준에서만 성립하며, 물리적 현실에서는 이 개념적 정의를 완벽히 구현할 수 없습니다.


물리적 현실에서 완벽한 원을 그린다고 가정해 보죠. 현시점에서는 아무리 정교한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제작 과정에서는 미세한 불규칙성이 발생하며, 측정 도구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물리적 현실에서 만들어진 원은 미세한 오차를 가지며, 이는 곧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완벽한 원을 구성하려면 원을 이루는 물질 속 전자와 미시 세계의 입자들이 모두 완벽히 동일한 조건에서 존재해야 할 겁니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입자들이 온도, 습도, 중력, 내부 요인, 외부 요인 등으로부터 모두 완벽히 ‘동일한’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 따르면,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불확정성 원리'가 작용합니다. 그렇기에 ‘동일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이는 '물리적 현실에서 완벽한 조건을 구현할 수 없다'는 점을 더욱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죠.

혹여 충족하더라도 아주 찰나의 시간만 가능할 겁니다. 그러나 이 또한 결국 ‘완벽’이란 것에서는 벗어남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현재 기술 수준에서 완벽한 원을 구현했다 하더라도 앞서 말한 것처럼 시간이 지나 더 정밀한 기술로 관찰하면, 새로운 결함이 드러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합니다.


사실 더 정확하게 하자면, 개념적으로도 완벽한 원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수학적으로 정의된 원조차 인간이 만든 수학적 체계 안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을 바탕으로 보자면, 인간의 관찰과 사고 과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수학적 체계라는 것 자체가 이미 ‘완벽’이라는 정의에서 절대적으로 벗어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존재나 다른 체계에서는 '완벽한 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다르게 정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수학적 정의조차 특정 맥락과 한계를 가진 인간 중심의 산물임을 보여줍니다. 단지 그것이 무엇인지 현재의 저희가 알 수 없을 뿐인 것이죠.


더 나아가, "완벽한 원"의 개념은 수학적 구조가 아닌 현실의 요구에 따라 변형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원주율(π)과 같은 값은 무한소수로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 값이 '완벽히 계산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를 그대로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수학적으로도 완벽함은 무한에 가까워질 뿐,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 상태로 남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학적 정의의 체계와 완벽한 원에 대한 이상적 개념 모두 본질적으로 인간의 사고와 인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한계 때문에 개념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완벽이란 본질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것'임이 명확해집니다.


수학에서만 그럴까요?

물리학과 우주론에서도 ‘완벽한 상태’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물리학과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완벽한 질서 상태는 자연의 본질에 어긋난 것이죠.

여기서 완벽한 질서 상태란 에너지와 물질이 완전한 균질성(모든 것이 완벽히 동일한 상태)을 이룬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엔트로피 증가 법칙(열역학 제2법칙)'은 '모든 시스템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무질서해지고, 균질성이 붕괴되며 다양한 구조를 형성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주의 본질은 혼돈과 무질서이며 이는 자연법칙의 핵심이므로, 결국 완벽한 질서 상태는 시간이 흐르면서 붕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주가 ‘완벽한 상태’로 시작했다면 애시당초 빅뱅도 없었을 것이며, 현재와 같은 다양성과 생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는 ‘완벽’이라는 상태가 우주의 근본 법칙과 본질적으로 모순된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주에서조차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벽’이라는 글자에서 시작된 제 물음표는 '완벽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언어, 철학, 수학, 과학 모두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을 보면 '완벽'은 '현실적으로도, 개념적으로도 성립이 불가능한 상상을 넘어선 허상의 결과물'일뿐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이 물음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찾아보고, 신나서 글을 쓰던 도중 알아차린 것이 하나 있습니다.

‘완전’이라는 글자에 대해서는 알아보지 않았다는 것, 사실상 완벽이라는 글자를 구성하는 핵심 단어를 철저히 무시하고 글을 썼다는 것이죠.

언제나 글을 쓰기 시작할 때면 적던 경고문에 나온 글처럼,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글을 쓰는 자의 한계일까요.

잠시 슬펐지만, 반대로 더욱 즐거워지며 스스로에게 궁금해졌습니다.

‘완전이라는 글자를 통해 완벽함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과연 '완전'이라는 글자를 알아보고 난 후에도 입장이 동일할 것인지, 아니면 변할 것인지 '완벽'이란 글자를 알아본 것처럼 '완전'이라는 글자를 하나하나 뜯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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