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여유
1. 사물이 물질적·공간적·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2.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
'여유'의 뜻은 앞선 글에서 제가 해석했던 '온(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穩(온)'의 어원의 시작점인 ‘곡식을 걷어 모으는 것’과 여유의 첫 번째 의미와도 맞으며, ‘편안함’은 여유의 두 번째 의미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도 부합합니다.
물론 어찌 보면 끼워 맞춘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간 제가 쓴 글들을 순서대로 보면 '온(穩)'을 큰 틀에서 바라보며 원래의 뜻을 풀이하다 보니 나온 것이 ‘여유’였을 뿐, 여유를 먼저 찾고선 온(穩)을 해석한 게 아니란 걸 확실히 알 수 있었지요.
게다가 단순히 풀이하다가 발견한 단어라기에는, ‘여유’의 발견은 '완벽'과 '완전'이라는 글자의 열쇠 역할을 할 정도로 중요했습니다.
왜 그런지 이제 찬찬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온전(穩全)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하다
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다
전과 다르게 지금은 제가 이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가볍게 사용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여유'에 대해 알아차리고 나서 '온전'을 다시 보니, 그 의미가 확실히 다르게 다가옵니다.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하다’라는 말을 떼어내 '여유'를 덧붙여 생각해 보면, '시간의 흐름'을 내포한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바탕’은 '사물이나 상태의 원래 모습'을 뜻하고, ‘고스란하다’는 '본래의 상태가 변형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유지된다'를 의미합니다.
이 두 단어 중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바로 ‘고스란하다’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스란하다'의 의미에 들어있는 ‘유지’입니다.
유지
어떤 상태나 상황을 그대로 보존하거나 변함없이 계속하여 지탱함
유지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어떤 상태나 상황을 그대로 보존하거나 변함없이’ 이 부분은 '온전'의 뜻과 동일하죠. 정확하게는 '전(全)'의 의미와 같죠. 그렇기에 ‘계속하여 지탱함’, 이 부분이 '유지'의 '주된 뜻'인 겁니다.
더불어서 '계속한다'는 것은 '시간의 연속성'이 이뤄진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시간의 흐름'과 '유지', 그리고 '여유'가 무슨 상관이 있나 싶으실 겁니다. 하지만 아주 깊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여유'를 느끼기 위해서는 그 순간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을 잊어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시간의 흐름'을 알아야지만 '여유'를 알 수 있습니다. 무언가 하기 싫은 걸 할 때면 시간이 느리게 가거나, 반대로 엄청 즐거운 것을 할 때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겁니다. 이것이 '여유'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지나간 시간을 천천히 느끼며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여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싫을 때도, 좋을 때도 시간을 인지하고 있으면 여유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놀이공원에 놀러 갔다고 가정해 보죠. 일단 놀이공원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놀이공원의 '본바탕'은 '노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여유롭지 못하게 되고 초조해지게 됩니다. 줄을 서는 데 걸리는 시간, 이동에 걸리는 시간, 먹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을 계산하면서 남은 시간을 계산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저 거기서 논다는 것에만 집중하면 무엇을 하든, 어떤 일이 벌어지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탄다고 할 때 ‘음 올라가는 데 15초, 급격히 내려가는 지금 1,2,3,4,5초 끝, 이제 커브 10초’ 같이 계산하면서 타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적어도 놀이기구를 탈 때에는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되죠.
그러나 끝나고 나면 ‘아, 재밌는데 짧네. 아쉽다.’와 같은 생각은 다들 해보셨을테고, 여기서 느껴지는 아쉬움도 공감되실 겁니다. 이는 지나고 나서 그 시간을 한번에 머릿속에 그리기 때문에 느끼게 되는 감정입니다. 머릿속에서는 보통 지나간 시간의 일정 부분을 생략하니까요.
이와 같은 방식으로 놀이공원 내에서 '시간의 흐름'을 잊는 것을 내내 유지하다가 집에 돌아갈 때가 되면 바로 느끼게 됩니다.
‘아, 알차게 보냈다.’라고 말이죠.
바로 이것이 놀이공원의 목적이며, 그에 맞는 '여유'를 즐기는 겁니다.
이처럼 '여유'란 오히려 그 순간에는 '시간의 흐름'을 잊고 '주된 목적'에 집중해야지만 제대로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지나간 '시간의 흐름'을 회상하는 것, 그것이 ‘여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여기서 지나간 시간이 당시에 좋았는지, 안 좋았는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과거를 다시금 훑어볼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상태'가 '여유'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이번 부산 여행은 여유롭게 보낸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쉬면서 몇 달간 했던 것들을 돌아볼 여유도 있었고, 올라오는 기차에서 끝내줬다고 생각을 하며 여행을 돌아보는 '여유'도 가졌으니 말입니다. 물론 아직까진 '완벽'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온전'하게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현재까지 해온 해석을 역순으로 바라본다면 ‘여유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온전'이란 단어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전의 또 다른 뜻인 ‘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다’를 ‘유지’를 통해서 바라보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바르거나 옳다’라는 말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올바른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못 되다'의 뜻은 '악하거나 고약하다'는 것이죠.
뜻만 모아서 보면 ‘악하거나 고약한 것이 없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올바르다’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문장 어디에 '유지'와 '여유'가 들어갈까?’라는 의문이 들 겁니다. 아마 ‘바르거나 옳은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틀렸습니다.
답은 '악하거나 고약한 것 즉, 못된 것이 없는 상태'에 들어갑니다. 좀더 정확히 하자면 '못된 것이 없는 상태가 '유지'되고 있기에, 바르거나 옳다'는 것이죠.
그리고 못된 것이 없는 상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여유'가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는 속담에서도 잘 알 수 있죠.
‘곳간에서 인심 난다’
이 속담이 뜻하는 바는 ''물질적 여유'가 있어야지만 베푸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이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어렵고, 이렇게 되면 타인을 배려하거나 돕는 행동에도 자연스럽게 제한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인간은, 아니 모든 생명체는 살아남는 데에 있어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려면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물질적 여유'는 '마음의 여유'를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상황에서는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행동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곳간에서 인심 난다’, 이 말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로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 아닙니다. '물질적 안정이 '여유'를 가져오고, 그 '여유'가 더 나은 윤리적, 도덕적 상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는 깊은 의미를 담은 속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질적인 여유'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적 여유'도 동일하게 중요하지요. 이 점을 알려주는 아주 유명한 동화가 있습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와 연관이 깊은 동화 ‘스크루지’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 지독한 구두쇠 스크루지는 우연찮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유령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과거의 유령은 그가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겪었던 외로움과 고통을 보여줬습니다. 어린 시절의 스크루지는 가난으로 인해 친구들과 함께할 기회도 잃고, 가족들과의 관계도 소원했던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 경험이 그를 차갑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화시킨 원인을 보여주는 것이죠.
현재의 유령은 스크루지에게 그의 탐욕과 냉정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보여 줍니다. 그의 직원인 크래칫 가족은 가난하지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따뜻한 가족애 속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병약한 타이니 팀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가족에게 희망을 선물합니다. 스크루지는 크래칫 가족의 모습에서 자신에게 없는 따뜻함과 정신적 풍요로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넘치는 행복을 느끼는 이들을 보며 자신의 삶이 얼마나 공허했는지 깨닫게 된 것이죠.
마지막으로, 미래의 유령은 스크루지에게 그의 비참한 최후를 보여 줍니다. 돈과 물질적 풍요를 쌓아올렸지만,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는 쓸쓸한 운명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스크루지는 자신이 쌓아온 부와 욕심이 결국 자신을 고립시키고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스크루지는 돈만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더 나아가, 그는 '물질적 여유'를 넘어선 '정신적 여유'와 사람들과의 연결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원천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변화한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아침, 자신의 재산을 나누고 크래칫 가족을 도우며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병든 타이니 팀을 치료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자신의 이웃들과 따뜻한 관계를 형성하며 마침내 마음의 평안을 찾게 된 것이죠.
이 동화는 단순히 스크루지라는 인물의 변화를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질적 풍요가 아닌 정신적 여유와 사랑이야말로 삶의 본질적인 가치라는 교훈을 전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물질적 여유'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정신적 여유'도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그러니 '편안할 온(穩)'은 단순히 글자에서 출발한 곡식에서 얻게 되는 '물질적 여유'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얻게 될 평온한 마음과 편안함을 바탕으로 한 '정신적 여유'까지를 포함하는 것이죠.
즉, '온(穩)'의 편안함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여유', 이게 바로 온의 진정한 해석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전에 제대로 해석을 하지 못한 '전(全)'의 진정한 해석은 무엇일까요?
아까 역순으로 바라보면 '여유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온전'이란 단어의 '핵심'이라고 썼는데, 더 정확히 하자면 '역순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말한 내용들이 '순환'하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이 공동체가 모여서 마을을 형성하고, 인구가 늘어나니 자연스레 생산량도 늘어날 겁니다. 생산량이 늘어나니까 작업량이 늘어나고, 작업량이 늘어나니까 자연스레 공동체끼리 뭉쳐야겠죠. 뭉치니까 수확량이 더 늘어나고, 수확량이 더 늘어나니까 여유가 생깁니다. 여유가 생기니까 자녀를 많이 낳게 되고, 자녀를 많이 나으니까 마을이 더 커지겠죠. 마을이 더 커지니까 도시가 형성되고, 그 안에 또다시 공동체가 느니까 생산량도 늘어나는, 이것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식으로의 '순환'이 온전히 이뤄질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전(全)'을 보면 매우 쉽게 해석이 가능해지죠.
'전(全)'은 '온전하다, 모두'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위 내용들을 바탕으로 보면, 단순히 원래 모습 그대로 고정시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옥을 보관함에 넣어 보존하는 행위는 가장 기초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그 이후로 옥 자체를 관리하고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물질적 여유' 또한 '유지'해야 하는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온전할 전(全)'자의 핵심이 바로 '유지'입니다. '온전한 것을 온전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갖추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전(全)'자의 진정한 뜻인 것이죠.
그렇다면 '전(全)'의 다른 의미인 '모두'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위에도 말했지만 여간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구비해놔야 합니다. 옥을 놓고 단순히 생각해 봐도, 옥은 그 시절에 권력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니까 옥을 '유지'하려면 권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권력을 '유지'하려면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하겠죠. 그런데 그 자격을 '유지'하려면 인망을 가져야 하고, 인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확장되는 것만 보더라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모든 것’을 갖추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유지'라는 단어에서도 말했듯 '온전할 전(全)'자는 단발성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속하는 의미를 가지며 나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죠.
조금 어렵게 표현하긴 했지만 결국 돌고 돌아서 '유지'의 뜻과 동일하다고 봅니다. ‘계속해서 지탱한다’가 곧 '지속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게 바로 '유지'인 겁니다.
결국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유지하는 것'.
이게 바로 '전(全)'자가 의미하는 ‘온전하다’의 뜻이자 정확한 해석이라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온전(穩全)'이라는 글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全)자만 쓰면 끝 아닐까?' 싶으시겠지만, 그건 아닙니다.
'온(穩)'이 의미하는 진정한 '여유'를 '유지'한다면 자연스럽게 윤리적, 도덕적으로 올바른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겠죠. 그리고 올바른 상태를 '유지'하면 공동체에서 인망이 생기고, 인망이 '유지'되면 자격을 갖추게 되고, 자격을 '유지'하면 권력이 생기며, 권력을 '유지'하면 재물이 생기고, 재물이 생기면 다시금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온(穩)'의 '여유'가 생깁니다.
즉, 단순히 '온(穩)'과 '전(全)'의 의미로 본다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유'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유지'하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풀어진 '온(穩)'과 '전(全)'의 뜻을 함축적으로 담은 문장이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하다’와 ‘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다’입니다.
이것은 ‘고스란하기에 본바탕 그대로’로도 볼 수 있으며, ‘바르거나 옳으면 못된 것이 없다’로도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맞으니까요. 어느 것이 먼저인가가 중요한 게 아닌 겁니다. 하나가 이뤄지면 다른 하나가 이뤄지는 것이니 말이죠. 그리고 이 내용을 더 축약한 단어가 바로 '온전(穩全)'입니다.
결국 '온(穩)을 바탕으로 전(全)이 되고, 전(全)이 됨으로써 온(穩)이 되는 것, 이러한 순환'이 '온전(穩全)'의 진정한 뜻입니다.
깊게 들어가다 보니 표현하는 단어가 어려워 보이는 거지, 사실은 정말 쉬운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밥을 먹으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있으려면 일을 해야겠죠. 하지만 일을 하려면 밥을 먹어야겠죠. 또다시 밥을 먹으려면 돈이 필요해지는 것. 이것이 '온전(穩全)'이 말하는 '순환'의 예시입니다.
여기에 이제 각자가 추구하는 중요한 것들을 이것, 저것 더해서 순환을 하는 것이 각자의 '온전한 삶'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죠.
한편으로 보면 단순한 쳇바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같은 것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전에 제가 쓴 글인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에서 '하루를 충실히 보내는 것만으로도, 그 하루를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반복되는 매일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즐기며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 하루하루를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반복되는 매일이 아니라 새로운 매일이 되는 겁니다. 즉, 쳇바퀴처럼 보이는 것도 그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쓰고 보니, 위에서 말한 '여유'에 대한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다만, 그보다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않도록 그 순간에 집중하는 방법을 좀더 세밀하게 알려주는 글로 느껴집니다. 그저 문장에서 느껴지는 것을 적었던 것뿐인데, '온전(穩全)'이라는 단어를 알고서 다시금 읽어보니 온전한 삶을 보내는 방식을 알려주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새삼스럽지만 제가 쓴 글이 참 흡족하게 잘 쓰여진 것 같아 보여서 기쁩니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제가 ‘완전(完全)’이라는 단어의 핵심이 되는 힌트를 발견했다는 것이죠.
사실 힌트라기보다는 정답인 것 같지만, 일단 기존에 해석한 것들을 바탕으로 완전(完全)을 바라보기 전이니까 확신을 하진 않겠습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 이왕이면 줄일수록 좋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완전(完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완전(完全)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슴
처음 '완전(完全)'이란 단어와 뜻을 적은 것이 3편인데, 그 이후로 2편밖에 안 지났음에도 기분상으로는 그 사이에 10편은 쓴 거 같습니다. 체감상 느껴지는 게 이럴 정도로 깊게 몰입했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처음 얘기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그동안 단어 자체를 꽤 적절치 않게 써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온전(穩全)'이라는 단어를 자세히 알고 난 후에는 더 더욱 그렇게 느껴졌습니다만, 이것 역시 현재의 추측일 뿐이니 앞으로 또 달라질 수 있겠죠.
이제 그간 써온 '완(完)'과 '전(全)'을 바탕으로 '완전(完全)'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죠.
완(完)의 뜻은 ‘완전하다’, ‘다 이루다’, ‘일을 완결 짓는다’ 이 세 가지입니다. 어원적으로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고 해석했었죠. 어린이가 공동체(가정)를 형성함으로써 어른이 되는 일을 '완결'지었고, 공동체(가족)를 형성함으로써 어른이 되기 위한 '기초적인 일을 다 이루었다'는 의미로 각각의 뜻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완(完)'이 의미하는 ‘완전함’은 보호받는 자리에서 보호하는 자리로의 '이동'이며, 이를 가장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가정’이라는 어원적 해석이 맞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해석한 '완(完)'의 의미와 '전(全)'의 의미인 ‘유지’로는 '완전(完全)'의 뜻이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완(完)'이라는 글자가 '전(全)'에 파묻히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죠.
저는 한자로 이뤄진 글자는 일반적으로 앞 글자와 뒷글자가 서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온전(穩全)'은 '편안할 온(穩)'의 의미가 '온전할 전(全)'으로 이동하며 이어지는 단어로 볼 수 있습니다. '여유'는 '유지'되지 않으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여유’가 ‘유지’로 '이동'하며 '순환'함으로써 다시 '여유'가 생길 수 있는 구조를 이루는 것처럼 말이죠.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보면 '완전(完全)'이라는 글자 또한 ‘완(完)’의 의미로 볼 수 있는 ‘이동’이 '전(全)'을 의미하는 ‘유지’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동'과 '유지'가 이어지냐는 질문은 둘째치고,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는 말에는 '유지'는 보이지만 '이동'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또 실수를 했다는 뜻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완(完)'에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실수가 없진 않았습니다.
'완전(完全)'의 '전(全)'이라는 글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온(穩)'을 알아봤던 것처럼, '완(完)'을 이해하려면 '전(全)'을 먼저 알아봤어야 했던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사실에, 이전에 글을 쓰며 힘들었던 것들이 떠올라 매우 참담하며 저를 슬프게 만들었습니다만, 이미 걸어왔던 길이니 처음만큼 어렵진 않겠죠.
실수한 부분을 알기 위해서는, 이전에 한 설명과 '온전(穩全)'에서도 얘기한 공동체를 이루고 나서부터 어떻게 되는지를 보다 세밀하게 봐야 합니다.
그간 들었던 예시보다 조금 더 먼 고대 수렵 시절로 놓고 보도록 하죠. 이 시절에 혼자 살기 위해서는 우선 외부로 나가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을 해야 합니다. 또한 집에 와서도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언제 있을지 모르니 일이 끝나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겁니다. 그럼 제대로 쉬지 못하니 체력이 점점 부족하게 되고, 결국 이는 다음 사냥에서 더 큰 리스크로 다가오게 될 겁니다. 즉, 이 시절에 혼자 산다는 것은 목숨의 위협이 시시각각으로 커지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가정을 이루면 많은 것이 바뀝니다. 일단 혼자일 때에 비해 소비량이 증가하긴 합니다. 하지만 한쪽이 사냥을 담당하고, 다른 한쪽이 나머지 일을 담당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분업해서 작업을 하면, 확실한 휴식 시간이 확보되고, 이는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이어질 겁니다. 또, 생산량이 늘었으니 조금은 여유가 생기겠죠. 여유가 생기면 이제 가정을 이루는 목적 중에 하나인 번식,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녀가 생기면 다시금 소비가 늘어납니다. 결국 현재로는 부족하니 또 작업량이 늘어나겠죠. 식량을 더 많이 구해야 하니 더 많은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나머지 일에서도 아이를 돌보는 것이 추가되니 일 자체도 더 많이 늘 겁니다.
그래도 자녀가 어느 정도 크면 다시금 생산량이 늘어납니다. 자녀도 사냥이나 나머지 일을 돕는 것도 있지만, 자녀가 가정을 이룸으로써 보다 더 효율적으로 일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같은 가족이니 협력할 때 배신의 위협도 낮을 겁니다. 이는 사냥을 할 때 같은 인간에 대해 조심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사냥의 성공 확률도 올라가고 수확량도 많아지게 되겠죠. 게다가 여기서 자녀가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단순히 +1이 되는 게 아닙니다. 상대의 가정도 합류할 수 있기에 +3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단순 계산만 놓고 보더라도 인구수가 2에서 시작해서 3이 되고 6이 됩니다. 여기서 손자가 생기면 7이 되고 그 손자가 결혼하면 14가 되는 겁니다. 근데 자녀를 한 명만 낳진 않았겠죠. 그러니 인구는 기하급수로 늘고 이게 반복되다 보면 마을로 커지는 겁니다. 거기서 일은 더 효율적으로 세분화되며, 이러한 것들이 반복되면 도시가 되고, 나라가 되는 겁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하나를 알아차리게 됐습니다. 바로 '순환', '온전이 의미하는 순환'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완(完)'이 주는 느낌은 '온전(穩全)'에서 느낀 선형적인 순환과는 매우 다릅니다. 정확히는 '확장성'을 가지고 있는 게 느껴졌죠.
앞서 든 예시로 보면 '순환'은 밥, 돈, 일, 밥 이런 식이었다면, '완(完)은 여기에 '확장성'이 추가된 겁니다. 밥을 먹기 위해 돈을 벌려고 일을 했는데, 돈이 밥값보다 많이 벌린 거죠. 그래서 더 좋은 음식을 맛보니 돈이 더 많이 필요해진 겁니다. 그래서 일을 열심히 했더니 돈이 더 많이 벌리는 느낌이라는 것이죠.
이렇게 보니 ‘완(完)’을 의미하는 것이 ‘이동’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단조로워 보입니다. 이것은 선형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처럼 느껴지죠.
그렇다면 ‘완(完)‘의 의미를 단순한 '이동'으로 해석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이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더 큰 틀에서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물리적, 혹은 상황적 이동이 아닌, 그 이동이 가져오는 결과와 그에 따라 상태도 이동하는 것.
바로 '변화', 이 변화가 바로 '완(完)'의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예컨대,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것은 단순히 성장이라는 생물학적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었습니다. 이는 '보호받는 존재에서 보호하는 존재'로의 '변화'이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했죠. 그러나 이러한 어린이에서 어른으로의 변화는 개인의 삶을 넘어 공동체의 발전과 확장에도 기여하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은 마치 하나의 '순환'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순환을 통해 확장'되는 구조입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가정을 이루며, 그 가정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끝없는 반복이 아니라 점진적이면서도 확장적인 '변화의 연속'입니다. 이 변화의 시작은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순간이며, 이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경험, 그리고 책임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즉, '완(完)'의 본질은 바로 이러한 '변화'에 있습니다. 단순히 완결 짓거나 다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확장과 발전을 이끄는 힘처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온전(穩全)'이 말하는 '안정적인 순환'과 대비되어, '비선형적'이고 보다 '역동적'이며 '확장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라는 단어를 가지고 '완전(完全)'의 뜻에 넣어보면 확실히 해석은 됩니다.
완전(完全)
(변화에)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이를 유지하는 것에) 모자람이나 흠이 없슴
하지만 여전히 선뜻 이해가 되진 않습니다. '완(完)'을 변화라고 해석하자마자 속이 뻥 뚫린 기분이 들었는데 말이죠. 왜 그럴까요? 이제는 정말 단어 자체의 해석에서 더 이상 고칠 부분이 없다고 이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확신하기에 더 답답합니다.
또다시 장고에 빠질 뻔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완전(完全)'
이것을 '완(完)'과 '전(全)'으로만 놓고 해석했기에 그런 겁니다.
정말 거의 다 온 게 느껴집니다.
산의 정상이 눈에 보이는 수준이죠.
정상까지의 정확한 거리는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완전(完全)'의 '완전한 해석'을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