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과 완전에 대한 제언 5

by 물음표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완전할 완(完)'이 의미하는 것은 '변화'입니다.

그러나 앞선 글에서도 얘기했듯, '완전(完全)'이라는 단어에서 '완(完)'이 단순히 변화만을 뜻한다면 이해하는 데에 차질이 생기게 되겠죠. 이러한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완(完)'이 '완전(完全)'이라는 단어에 속하는 순간 단순히 변화만을 뜻하지는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말 그대로입니다.

'완전(完全)'의 의미는 뜻풀이로만 보면 ‘완전하고 온전함’입니다. 즉, '완전(完全)'이라는 단어에서 쓰이는 '완(完)'은 이미 ‘완전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는 겁니다.


'온(穩)'은 여유,

'전(全)'은 유지,

'온전(穩全)'은 순환,

'완(完)'은 변화라고 했으니,

완전(完全)에 들어가는 '완전할 완(完)'은 글자만 놓고 본다면 '변화와 유지'를 둘 다 품고 있는 글자가 됩니다. 이것이 맞다면, 완전(完全)의 '온전할 전(全)'은 온전의 의미인 '순환'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한다면 이전 글에서 '빠트렸다'고 말한 부분이 해결됩니다.

'완전(完全)'은 단순히 변화와 유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유지, 순환' 이 세 가지를 모두 갖고서 그 의미를 생각해봐야 했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변화'와 '유지' 이 둘의 개념은 각각 잘 알아봤고, 그렇다면 이제 ‘완전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될 '완(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변화와 유지의 관계'가 어떤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사실 '완(完)'이 어떻게 변화를 뜻하는지 알고 나니 유지도 다르게 보였기에, 유지와 변화의 관계가 어떤지는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일단 ‘유지’를 보다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됩니다. '어떤 것을 유지한다'는 행위는 얼핏 보면 단순히 현재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유지하려는 것'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죠.

그러면 ‘유지하는 대상’ 이외의 것들에는 어떨까요?

맞습니다. 대상을 제외한 모든 것들에는 필요하면 고치고 손질하며,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과정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이해가 더 쉽겠지요.

소중한 가족사진을 오래도록 유지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 사진을 지키기 위해 낡은 액자를 새 액자로 바꾸기도 하고, 쌓인 먼지를 닦을 때 쓰던 수건도 낡아지면 바꾸게 됩니다.

이 밖에도 소중한 가족사진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관리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변화'들이 발생하고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그 하나를 위해서.

즉, 사실상 하나를 뺀 나머지 모든 것들이 ‘변화’하는 것이 '유지'이며, 그렇기에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변화’가 동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완(完)'에서 사용된 변화와 유지는 동등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잊고 있었습니다.

바로 '유지하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이냐?'는 것이죠.

우리가 유지하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물건인가요? 아니면 물건을 통해 얻게 되는 가치나 상징 같은 것들인가요?


이전에 제가 썼던 ‘테세우스의 배’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실체를 가진 것에는 어떠한 의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 자체로 온전하기 때문이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집이라는 그저 벽과 지붕으로 이뤄진 구조물에 불과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가족과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안식처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투자 수단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유지’를 본다면 다를 건 없습니다. 우리가 유지하려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물건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를 통해 느끼는 '우리가 정한 개념‘이죠.

예를 들어, 부모님의 사랑을 상징하는 가족사진이 중요한 이유는 사진 그 자체가 아니라 부모님과의 기억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진과 기억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대부분 사진을 선택할 겁니다. 기억이 없어진다면 사진은 모르는 사람과 찍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결국 유지하려는 무언가를 통해 개념이 유지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 개념이 유지되기에 물건이 유지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서 개인적으로는 흥미롭지만, 참으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그 개념이라는 것도 '변화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개념도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사람에 따라 더 좁게는 그 사람의 나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가족의 개념을 예시로 살펴보죠.

과거 전통 사회에서는 가족이란 부모, 자녀, 형제, 그리고 확장된 친족까지 포함하는 공동체적인 개념으로 여겨졌습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생계와 삶의 터전을 공유하며 상호 의존하는 구조였던 것이죠.

반면,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의 개념이 핵가족 중심으로 변화했습니다. 또한, 동거 커플이나 비혼 가정,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등의 형태가 늘어나며, 가족의 의미가 더욱 다양하고 유연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대와 문화의 변화는 가족이라는 개념조차 고정된 것이 아닌, 변화와 재정의의 과정을 겪게 만듭니다.

또, 앞서 든 예시처럼 부모님과의 추억을 담은 가족사진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이후,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느껴지는 부모님과의 추억에 대한 감정과 소중함의 깊이가 전혀 다르다는 거지요.


하지만 '개념마저도 변화하는 게 확실하다면, 유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변화와 유지의 관계에서 유지를 포함한 모든 게 변화한다면, 결국 변화만 있는 것이 아닌가?’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죠.

그러나 '완(完)'의 의미에 ‘유지’가 존재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틀린 것이 없습니다. 이것의 해결방법은 늘 그렇듯 아주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됩니다. 바로 ‘변화 자체가 유지된다' 같은 방식으로 말이죠.


'변화'라는 것이 얼핏 보기에는 ‘달라진다’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렇기에 이전과 단절되는 것처럼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죠.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앞서 ‘제언 4편’에 썼듯이, 가장으로부터 보호를 받던 아이가 자라서 가장이 되고 가족을 보호하는 주체로 이동하는 것이 '변화'입니다.

하지만 이를 포함해 부모님이 조부모가 되며, 내가 부모가 되고, 시간이 더 지나 조부모가 되다 어느덧 선조라는 단어에 묶이는 변화까지 전부 다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연속성' 안에서 '변화'가 '유지'되는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개념도 '변화'와 '유지'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부모님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식을 향한 사랑처럼 사랑의 주체가 변하기도 합니다. 또는 같은 부부의 사랑일지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되고 경험되죠.

여기에 더해 내포하는 의미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다른 단어로 변할 수도 있죠. 그렇지만 어떠한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단어로서 규정지은 사랑이라 부르는 것 자체는 유지됩니다.


예를 들어, 한 쌍의 부부가 사랑을 기반으로 결혼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설렘과 열정을 느끼며 사랑을 표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표현 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열정적이던 사랑은 안정감 있는 동반자 관계로 변모하고, 때로는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며 관계의 형태를 다르게 만들어 갑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 속에서도 그들 관계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녀가 태어난 이후 부부는 서로를 향한 사랑의 대상에서 벗어나, 자녀를 돌보는 부모로서의 사랑을 추가로 품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자녀가 자라 독립하게 되면, 부부는 다시 서로에게 집중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을 유지해 나갑니다. 이처럼 사랑은 대상과 형태가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 본질은 관계의 연속성을 통해 '유지'됩니다.


결국, 변화하는 사랑의 모습들은 모두 하나의 큰 연속성 안에 놓여 있으며, 변화와 유지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는 변화와 유지의 관계성에 있어 변화가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유지와 얽혀 있는 흐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죠.

즉, '완(完)의 핵심‘인 ’변화'는 단절된 순간들의 나열을 뜻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변화'를 통해 '유지'되고, '유지' 속에서 '변화'하는 하나의 거대한 '연속성'인 겁니다.


이렇게 '완전(完全)'에서 '완(完)'이 '변화와 유지로 이루어진 연속성'이라면, '전(全)'이 의미한다 했던 '순환'도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거라 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화와 유지도 서로 반복되며 도는 느낌인데, 순환도 비슷하지 않나?’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순환은 말 그대로 되풀이되는 과정이니까요.

그럼 이제 이들이 어떻게 다른지, 어떤식으로 연결되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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