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일기

동몽선습 수편(首篇/머릿말)

by 물음표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처음 유학에 대해 쓰기로 맘먹었을 때에는, 이미 말씀드렸듯 유학 자체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은 대충 천자문-소학-대학-사서삼경 이 순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수준이었죠.

그래서 '동몽선습'이라는 이름을 처음 보자마자 생각이 들었던 건 ’좀 느낌있어 보이네.‘였습니다. 어릴 적 '동몽선습'에 대해 배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기억나는 건 전혀 없고 한자도 모르니 그저 발음이 주는 느낌을 제 마음대로 표현해본 거였죠. 그러나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고는 놀라운 점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번째로 '동몽선습'은 조선 중기 박세무라는 학자분이 저술하신 것이었고,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를 위한 교과서이기까지 했습니다.

당연히 '유학을 배울 때 쓰는 첫 교과서이니 책을 쓴 사람도 중국의 사상가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던 거죠. 유학 자체가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니 자연스레 유학 관련 모든 서적은 중국에서 씌여졌을 거라고 당연시했던 생각이 살짝 부끄러워졌습니다.

따지고 보면 시작은 중국일지 몰라도 끝까지 유학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는 건 한국인데 말이죠.


두번째로는 '동몽선습' 그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동몽선습

童蒙先習


童 아이 동, 蒙 어리석을 몽, 先 먼저 선, 習 익힐 습


직역하면 '배우지 못한 어린이가 먼저 익히는 책'입니다. 제 마음대로 의역하자면 '어린이를 위한 유학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수학의 사칙연산에 해당되는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순간 '너무 쉬운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습니다. 사칙연산은 수학에서 가장 기본이자 기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찌보면 수학은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변형하고 확장한 것이기도 하니 사칙연산이 가장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죠.

물론 집합론 같은 이론적인 분야에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거기에서도 의미로서의 사칙연산은 쓰일 것이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몽선습'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유학에서 다루고자 하는 어떠한 개념의 근본 원리에 대해 알아보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유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 내용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풀어쓴 것, 바로 그 책이 '동몽선습'이겠죠.


그렇다면 이제 '동몽선습'에 적힌 내용은 어떨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天地之間 萬物之衆에 惟人이 最貴하니

천지지간 만물지중 유인 최귀

所貴乎人者는 以其有五倫也니라

소귀호인자 이기유오륜야


'하늘과 땅 사이, 즉 세상 모든 존재(만물)의 무리(생명들)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가장 존귀하니

사람이 귀한 이유는 그들에게 오륜(五倫)이 있기 때문이니라.'



'동몽선습'의 가장 첫 문장입니다. 따지고 보면 딱히 해석할 여지가 없는, 그저 ‘오륜이 있는 인간이 최고다’를 얘기한 내용이죠. 그런데 저는 이 글을 읽자마자 바로 '오만함'이 느껴졌습니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 지는 사람의 한평생인 60년 또는 100년을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상당히 긴 시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45억년이라는 지구의 나이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매우 티끌과도 같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긴 시간 동안 지구에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한 것이 인간만은 아닐 겁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관점에서보면, 첫 문장부터 인간이 가장 존귀하다고 못 박은 듯 말했다는 것이 오만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건, 지구 역사상 인간만큼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특별한 존재로 규정하려 한 오만한 생명체는 없었을 테니 말이죠.


생각해 보면 '만물의 영장', '신의 형상을 닮은 존재' 같은 인간이 가장 뛰어남을 확언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다 보니 문득, 어디선가 들었던 얘기가 떠오릅니다.

사람이 욕을 할 때에는 자신의 콤플렉스나 약점을 남에게 투영해서 공격하는 메커니즘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무능하다는 불안을 가진 사람이 남을 "쓸모없는 놈"이라고 비난하거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 남의 외모를 공격하는 식이죠.

이를 '프로젝션(투사) 이론'이라고도 하는데, 저는 이것이 '인간이 최고다'라는 말을 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은 스스로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에, 이를 극복하고자 마치 자기 세뇌하듯 “인간이 최고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즉, '만물은 인간보다 낮은 존재고 인간이 최고'라는 믿음으로, 자연 속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불안을 극복하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의 '개체'로서 야생에 놓여졌을 때, 인간은 사자, 호랑이, 곰 같은 최상위 포식자의 장점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니까요.


그렇기에 아마도 '동몽선습'에서는 이를 타당하게 만들고자, 인간이 만물 중에 최고인 이유를 붙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륜'이라는 유학의 도덕 결정체를 통해서 말이죠. 이것은 어떤 개념을 만들어 내면서까지 스스로의 위치를 정당화시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규정해야만 안심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제 의견을 보강해주듯 다음 문장에서 오륜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是故로 孟子曰

시고 맹자왈

父子有親하며 君臣有義하며 夫婦有別하며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長幼有序하며 朋友有信이라 하시니

장유유서 붕우유신

人而不知有五常이면

인이부지유오상

則其違禽獸 不遠矣리라

칙기위금수 불원의


'그러므로 맹자가 말씀하시길,

부자유친(父子有親) :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친애(親愛)가 있어야 하고,

군신유의(君臣有義) :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義)가 있어야 하며,

부부유별(夫婦有別) :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분별(別)이 있어야 하며,

장유유서(長幼有序) :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序)가 있어야 하며,

붕우유신(朋友有信) : 친구 사이에는 신뢰(信)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니


사람이 오상(五常, 다섯 가지 도덕적 원칙)을 모른다면, 그가 짐승과 다를 바가 멀지 않으리라.'



앞선 내용에 이어 해설하기 전에 먼저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마지막에 쓰인 ‘오상(五常)'이죠. 뭔가 해서 찾아보니 '오상'은 저도 이미 알던 거였습니다. 바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유교' 하면 다들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내용이죠.

여기에 더해 '오륜'과 '오상'의 차이점이 뭔지도 알아봤습니다. 핵심만 말하자면, 오륜은 인간 ‘관계’에서 지켜야 할 덕목이고, 오상은 각 ‘개인’이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오륜에는 오상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내용과 별개로, 첫 문장과 더불어 맹자의 말까지 인용하며 '오륜'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오상'을 언급한 건 의아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찬찬히 보니, 저자는 그저 ‘오륜보다 더 근본에 해당하는 오상이 없는 인간은 결국 짐승이다.’라는 자기 생각을 덧붙여 얘기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륜이 있기에 만물의 영장이다’ 와 ‘오상이 없으면 짐승이다’는 같은 내용을 주장하는 거로 보입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불안하기에, 여기에 더해 인간이 최고인 또 다른 이유를 덕지덕지 붙이기 시작한 것이죠.


그렇다면 오륜과 오상을 기본으로 갖추라는 방법까지 알려주며 ‘이것을 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요? 오히려 반대로 ‘가장 기본이 되는 덕을 갖추면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전하려는 건 아닐까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현재까지 쓰인 문장만으로 본다면 유학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가장 존귀해져야 한다’로 보입니다. 물론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 또한 오만한 발언이며 콤플렉스가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오만함도 조금만 다르게 해석하면 자신감 또는 희망을 불어넣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는 다음 내용을 보면 좀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然則 父慈子孝하며 君義臣忠하며

연칙 부자자효 군의신충

夫和婦順하며 兄友弟恭하며

부화부순 형우제공

朋友輔仁 然後에야

붕우보인 연휴

方可謂之人矣리라

방가위지인의


'그렇다면,

아버지는 자애롭고(父慈), 자식은 효도하며(子孝),

임금은 의롭고(君義), 신하는 충성하며(臣忠),

남편은 온화하고(夫和), 아내는 순종하며(婦順),

형은 우애롭고(兄友), 아우는 공손하며(弟恭),

친구는 서로 인(仁, 어짊)으로 도우니(朋友輔仁)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사람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일단, 이 내용은 '오륜'을 통해 '오상'이 어떤 식으로 관계에 적용되는지를 좀더 풀어헤쳐 설명한 내용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방법을 보다 세밀하게 알려주는 것이죠. 물론 핵심은 마지막 줄에 있습니다.

‘이 전부를 해야지만이 사람이다’

즉, '오상과 오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사람이라 부를 수 있고, 그래야지만이 가장 존귀한 생명체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또는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오만하고 싶으면 기본이나 갖추고 얘기하든가‘


물론 현재까지 얘기한 것을 바탕으로 보면 전자가 맞을 겁니다. 그 어떤 철학에서도 ‘오만해져라‘라는 것을 가르치진 않으니까요. 그리고 여기까지 봤을 때, 저는 물음표가 하나 찍혔습니다.

‘그래서 동몽선습에서 중요하게 여기며 가르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배워야하는 것, 그리고 이를 오만하게 표현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이냐?’라고 말이죠.


이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일단 현재까지 제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 맞다는 전제하에 찬찬히 살펴봐야겠죠. 앞서 말했듯, 오상과 오륜은 개인이 지켜야 할 것과 관계에서 지켜야할 것들을 정리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어찌 되기에 이것을 기본으로 지키라고 얘기할까요?


제가 생각하는 답은 이렇습니다.

먼 옛날, 인간이라는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기본 원칙은 무리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를 쓰거나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그 다음이었겠죠.

예를 들어, 현대인 부부가 '더블배럴 샷건'과 '백과사전'을 들고 고대 시기로 간다 한들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그 두 개를 가지고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다면 가능하겠지만 '이 부부 둘이 과연 무리를 이룰 수 있었겠느냐?'라고 한다면 그 또한 아닐 겁니다.


그렇기에 인류라는 종의 생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종인 인간끼리 '관계를 어떻게 잘 맺느냐'가 중요했을 겁니다. 그리고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개인이 지켜야 할 것들도 확실히 인지해야 하겠죠. 그래야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배려함으로써 무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인간은 한 개체로만 놓고 보자면 육식동물보다는 당연히 약하고, 초식동물보다도 딱히 뛰어나다 할 것이 많지 않았으니 말이죠.


이 점에서 유학에서 말하는 '오상'과 '오륜'이 바로 무리를 올바로 이룰 수 있는 방법이자, 인간이라는 종이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을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즉,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무리를 이루어야 하고, 마구잡이로 자기 생존만 꾀하면 무리가 해체될 수 있기에, 가장 성공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무리를 이루게 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는 유학. 어찌 보면, 유교 윤리는 동양판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흐름으로 본다면, 처음 제가 느꼈던 오만함도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자가 유학을 설파하던 그 시절은 난세였기에, 사람들은 절망과 도탄에 빠져있었을 겁니다. 여기에 더해 ‘뭉치지 못하면 상잔을 통해 망하겠구나’라는 점도 보였을 겁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했겠죠.

그렇기에 제가 생각하는 유학의 핵심은 '인간은 무리를 이루어야 하지만, 무리 속에서 각자 도생만 취하다 보면 결국 무리가 붕괴되고 죽음으로 치달을 테니 ’오상‘과 ’오륜‘을 통해 무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유학은 앞서 말한 ‘동양판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라기보다, 오히려 ‘인류를 위한 가장 체계적인 사회 생존 전략서’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제가 처음 느꼈던 오만함은 속으로는 다같이 죽을까봐 덜덜 떨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면 강한 척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그저 ‘강해 보이려는 연기’에서 느껴졌던 것이죠.

그러니 '인간이 가장 존귀하다'는 말은 그렇게 해야지만 견뎌낼 수 있는, 가슴 밑바닥에 자리한 거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했던 ’간절함‘의 또다른 표현이었습니다.

바로 이 ‘간절함’이 유학의 기초이자 존재 이유며, 시작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동몽선습에서 배울 내용들은, 간절함을 바탕으로 작성된 모든 인간 관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부모자식,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어른과 어린이, 친구간의 '관계'에 대한 '방법론'입니다. 아마도 현대식으로 출판됐다면 책제목은 이랬겠죠.

‘이렇게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_ 인간관계 기초 실천편’


이제 이 ‘인간관계 기초 실천편’의 첫번째,

'부자유친(父子有親)'을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죠.

작가의 이전글유학?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