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제가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천자문은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까지입니다. 그 특유의 리듬을 여기까지만 기억하기 때문이죠. 생각해 보면, 가장 기본이 되는 천자문도 제대로 외지 못하면서 ‘내 안의 유교 피가 울부짖는다’며 장난스레 내뱉곤 하던 게 창피해집니다.
학교 다닐 적 열심히 한자를 외우긴 했는데, 그게 천자문이었는지는 잘 기억은 안납니다. 의외로 '부자유친'으로 시작하는 '오륜(五倫)'은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이것이 뜻하는 바는 제가 사실 유학, 소위 유교라고 말하는 것에 그다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겠지요. 그게 맞을 겁니다.
이렇듯 위에 언급한 제가 뱉은 말이나 유교 국가라고 말하던 것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실제의 유학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제가 바라는 도덕적, 윤리적 이상향을 유교라는 흔히 먹힐 껍데기로 감싸서 누군가에게 강요해 왔다는 것이죠.
물론 제 사고의 기저에는 유교적 가치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유학에서 공자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것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니지.'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옛 선조들부터 편안함을 위한 자기합리화를 하게 되고, 그것이 내려오며 아주 조금씩 변형되어 지금의 형태로 달라진 것이겠죠.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계속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변형에 변형이 가해지고 이것이 계속해서 더해지다 보면 원래의 것이 전하고자 했던 가치는 다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이제는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죠. 의미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았으니 따를 이유가 없어진 것이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원문을 보며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것을 전하려는지를 살펴보며, 제 나름대로 해석을 더해보려 합니다.
그렇기에 시작을 처음에는 천자문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옛날, 유학을 배우는 첫걸음은 천자문이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 배울 때 가장 먼저 천자문을 외우는 것으로 오랜 기간 채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처음으로 천천히, 끝까지 읽어봤습니다.
천자문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고 생각 외로 상당히 놀랐습니다. 천자문이 사실은 서로 다른 천 개의 한자로 이뤄진 ‘시’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죠. 사실 제가 이것을 몰랐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끽해야 6글자 외운 사람이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오히려 괴상한 일이겠죠.
그럼에도 ‘놀랐다’고 표현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 시가 씌여진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바탕으로, 세상의 이치에 대해 담담하게 얘기하는 시였기 때문입니다. 인문, 사회, 과학 각 분야에서 현대에 사실로 증명해 낸 것들을 그저 서로 다른 글자들의 조합으로만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가장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면,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하늘이 검다’라고 표현한 겁니다. 지금이야 우주의 존재를 알기도 하고 우주가 검은색이라는 사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죠. 그러니 '하늘이 검다'는 말에도 딱히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주로 보는 하늘은 낮에는 푸른색이고, 밤에는 달과 별이 빛나는 하늘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우주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우주가 검다는 개념조차 없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하늘을 ‘검다’라고 표현할 일도 없었겠죠.
하지만 천자문에서 '하늘을 검다'라고 표현한 것을 봐서는 이것이 단순히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현재 저희가 알고 있는 '우주의 기본은 검다'라는 사실과도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여러 부분에서 현대의 과학 상식과 다르지 않은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부족한 부분이나 어색한 부분이 없다 하면 거짓말이지만, 생각하는 것이나 바라보는 것이 현대의 시각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흥미롭고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파악되고 나니 가장 보편적이기에, 유학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단순히 해석만을 하면 과도한 주관이 개입되어 원뜻을 해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천자문은 오히려 유학의 가장 '마지막'에 봐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저는 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조선시대 서당에 입학하면 천자문을 뗀 다음에 배우게 되는 ‘동몽선습’부터 차근차근 공부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