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일기

동몽선습 부자유친(父子有親) 8_1

by 물음표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昔者에 大舜이 父頑母嚚하여 嘗欲殺舜이어늘

석자 대순 부완모은 상욕살순

舜이 克諧以孝하사 烝烝乂하여 不格姦하시니

순 극해이효 증증애 불격간

孝子之道가 於斯至矣로다

효자지도 어사지의


'옛적에 위대하신 순임금이 아버지는 완악하고 어머니는 모질어서 일찍이 순을 죽이려 하거늘

순은 효도로써 화합하고 끊임없이 다스려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셨으니

효자의 도리가 여기에서 지극하였다'



내용을 보면 이전까지 나온 문장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부분에, 가장 알맞은 일화를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을 죽이려고 한 부모가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했으니 효자의 극치라고도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저는 여기서 한 가지 물음표가 찍혔습니다. 기존 해석으로 놓고 봤을 때, 자식이 부모를 ‘다스려’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한 게 ‘효(孝)’라고 한 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니 ‘효(孝)’가 아닌 것을 넘어 보통 ‘다스린다’는 말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말할 때 쓰는 단어이기 때문이죠.


‘다스리다’

국가나 집안, 사회 등의 일을 보살피고 그 구성원을 이끌어 나감


물론 추가적으로 다른 뜻도 가지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다스린다'라고 쓰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신하가 임금을 다스려 좋은 임금으로 만들었다'

'종복이 주인을 다스려 부자를 만들었다'

'부하가 대장을 다스려 전쟁을 이기도록 도왔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 쓰이지 않는 단어입니다.

그러니 기존 해석으로만 놓고 본다면 '자식이 부모를 다스린다’는 것은 오히려 앞에 언급한 유학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행동인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식이 뛰어난 이라면 부모를 다스리는 것도 ‘효(孝)’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저 이야기 자체가 잘못된 예시다.


전자의 경우에는 기존에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던 유학으로도, 제가 그간 해석해 왔던 유학으로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내용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못났어도 복종해야 하는데 '끊임없이 다스린다'니 말도 안됩니다.

또 제가 해석한 '소통'으로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알아가고 채워가는 것이지,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일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 것이죠.

그러니 '자식이 부모를 다스린다'는 것이 앞서 얘기해 오던 '효(孝)'를 행하는 내용이라는 점에는 확실한 의심이 듭니다.


그렇다면 해석이 잘못됐을지, 이러한 제 생각이 틀린 것인지 이전과 마찬가지로 일단 직역을 해봐야겠습니다.


'대순(大舜)은 아버지는 완고하고, 어머니는 악하고 말이 거칠어서 일찍이 순을 죽이려 하였으나,

순은 이를 잘 조화시켜 효도로써 대하여 점점 더 잘 다스리니, 간악한 짓이 이르지 못하였다.

효자의 도가 여기에서 지극함에 이르렀도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기존의 해석이든, 직역이든 '다스린다'는 한자가 쓰인 순간 이미 기존 유학이 말하는 자식의 역할에서는 벗어납니다.

그래서 '혹시 한자 자체가 여러 뜻을 가지고 있나?' 하고 찾아보니 결과는 더 심각했습니다.


사용된 '乂(벨 예, 징계할 애)'는 '다스린다'는 의미로 쓰였지만, 실제로는 ‘베다, 징계하다’라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물론 '베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 대략 8번째쯤에 '어질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어진 것이 주된 의미였다면 ‘어질다’는 의미만 갖고 있는 한자를 사용했겠죠. 그러니 위의 일화는 실질적으로 효도를 의미하기에는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억지로 '어질다'는 의미로 사용됐다고 본다면, 계속해서 어질게 대해 부모가 더 이상 간악한 짓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잘못된 해석을 보다 보니 문득 '이 일화에도 오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보다 근본적인 의구심이 들더군요.

이러한 의문이 든 바탕에는 '아무리 어머니가 악할지라도 진짜 '순'을 죽이려 했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산후 우울증이 심해 자식을 죽이고 싶어할 수는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호르몬 상의 문제이니 개인이 어찌할 수는 없겠죠.

그렇기에 만약 산후 우울증이었다면 위 문장에서 '순'의 어머니는 기본적으로 '악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미쳤다'라고 표현했을 겁니다. 그도 아니라면 '사람이 변했다'라고 표현했겠죠.

그러나 단순히 '악하다'고만 표현한 것을 봐서는 산후 우울증도, 변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혹여나 산후 우울증으로 자식을 죽이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면, 죽이더라도 갓난쟁이 즈음에 죽이려는 시도를 하지 다 큰 사람을 죽이려고 하진 않았겠죠. 그리고 그랬다면 '순'은 진작에 죽었을 겁니다. 이는 태생적으로 '악하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렇다면 죽이게 되는 데까지 어떠한 사건이 있었을 거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순' 임금의 일화를 한번 찾아봤습니다.



'중국 신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삼황오제 중 한 명인 '순'은 '고수(瞽叟)'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고수'는 '맹인'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리석고 완고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지닙니다.


'순'의 생모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고수'는 계모를 맞이해 아들 '상(象)'을 낳았습니다. '고수'와 계모는 '상'을 편애했고, 이에 따라 '순'은 끊임없이 박해를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순'은 땅을 일구고 부모를 봉양하는 데 성실했으며, 매를 맞고 꾸중을 들어도 화내지 않았습니다. 가족의 냉대 속에서도 '순'은 '예(禮)'를 지키며 묵묵히 제 역할을 다했고, 그의 인품은 점차 마을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났습니다.

어느덧 '순'이 머무는 곳마다 이웃이 화목해지고, 백성들이 스스로 질서를 지키는 모습에 사람들은 감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후계자를 찾던 '요'임금의 귀에도 전해졌고, '요'임금은 '순'의 진면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를 여러 직책에 기용했습니다.

'순'은 농사, 행정, 제사, 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했고, '요'는 마침내 두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그에게 시집보내며 '순'을 사위로 삼았습니다.

이 일은 단순한 혼인이 아니라, '순'의 인품과 역량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순'이 '요'임금의 신임을 얻고 국정을 맡게 되자 '고수'와 계모, '상'은 질투와 불안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은 '순'을 우물에 빠뜨려 죽이려 했고, 헛간에 불을 지르는 등 노골적인 살해 시도를 감행했습니다.

그럼에도 '순'은 미리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위기를 모면했으며, 다시 살아 돌아와도 부모를 원망하거나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정성껏 모셨고, 동생 '상'에게도 땅을 나누어 주며 '의(義)'를 지켰습니다.


이후 '순'은 '요'임금에게 제위를 물려받아 천자가 되었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덕(德)'과 '예(禮)'를 바탕으로 정치를 펼쳤습니다. 그는 '우(禹)'를 발탁해 홍수를 다스리게 했고, 사해가 평온해지는 데 기여했습니다.

순의 통치는 백성들 사이에 큰 신뢰와 존경을 낳았으며, 후세 사람들은 이 시기를 '요순지치(堯舜之治)'라 불러 이상적인 태평성대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이 부모가 저지른 행동은 단순히 불화라고 부를 수준을 넘어섭니다. 아동 학대는 물론, 노예처럼 착취하고 반복적으로 살해를 시도한 점은 당시뿐 아니라 현대의 기준으로 보아도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정도의 중범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모를 모신 '순'을 효자의 도리 그 자체로 보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이 일화에서 계모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더군요.


일단 '순'의 집안은 부유한 집이 아닙니다. 오히려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그저 일반적인 집안이죠. 즉, '순'이 따로 물려받을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기에 재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전처의 자식을 미워한 것은 아니란 뜻이죠.

여기에 더해 아버지인 '고수'가 딱히 '순'을 더 편애하고 전처를 그리워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일화에 나와 있듯 계모 사이에서 낳은 둘째인 '상'을 보다 편애했다고 적혀 있으니까요.

거기다 어릴 적부터 효심이 지극했던 '순'이 계모를 싫어하거나 골탕 먹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여기까지만 본다면 계모가 '순'을 미워하는 것을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태생적으로 악독한 이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이라면 진즉에 죽이지 않았을까요? 물론 '순'을 노동력으로 이용하기에는 좋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애딸린 홀아비이자 부유하지 않은 농사꾼에게 시집온 것을 생각해 본다면 계모가 무조건적인 악인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계모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화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니 있는 정보들 내에서 추측해 봐야겠죠.


그렇다면 일단 여기서 계모가 왜 '순'을 죽이려고 했는지는 잠시 내려놓고, '순'은 어떻게 저 정도의 효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알아봐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인물일지라도 가족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데도 오히려 그들을 극진히 모신 일화는 제가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타고나길 착하고 선하며 순둥순둥한 아이들이 있긴 합니다. 보통 이러한 아이들은 부모 말을 잘 듣기도 하고 딱히 유별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아이더라도 저 정도의 억압과 살해 위협을 견디며 끝없이 '효'를 실천할 수는 없습니다. 비뚤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수준이죠. 아니면 위축되어 움츠러들고 조용하게 사는 것이 보통일 겁니다.


그러니 '순'이 올곧은 효자로서 살게 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효’라는 행위 자체를 못 했을 테니 말이죠.

예를 들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수저를 드시기 전까지 기다리고 있는 어린 아이를 보기 어려운 것처럼, 반드시 누군가가 '순'에게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 ‘누군가’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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