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일기

동몽선습 부자유친(父子有親) 8_2

by 물음표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사실 답은 간단합니다.

'순'이 올곧은 효자로서 살도록 가르쳐 준 이가 계모는 확실히 아닐 테고, 아버지인 '고수'라고 하기에는 고집이 세고 어리석으며 '순'을 죽이려고까지 했으니 자식인 '순'이 그런 인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찍이 죽은 '생모'밖에 없겠죠.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본다면 당연히 '순'의 생모는 올곧으며 유하고 선한 이였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아내를 둔 '고수'의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점은 오히려 자기 판단 없이 ‘누구의 말만 따르는 사람'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기에, 생모가 살아있었을 때에는 그 고집이 ‘선함’ 쪽으로 발현되었을 겁니다.


즉, 생모가 '순'에게 유하고 다정한 사랑을 주었고, '고수' 역시 아내인 생모를 믿고 따랐기 때문에 '순'은 부모가 서로 다정한 가정 속에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거라는 거죠.


그러나 생모가 죽은 후, 상황은 매우 달라졌을 겁니다. 아마도 어리석고 고집이 센 '고수'는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을 테고, 그 대상이 은연중에 '순'이 됐을 겁니다. 그러던 와중에 계모와 재혼을 하게 됐을 테고요.

그리고 이 부분에서 계모를 악인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면, 왜 '순'을 미워하게 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일단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고수'는 부유하지 않은 농사꾼이며 자식이 있는 홀아비입니다. 이름의 뜻대로 실제로 장님이었다면 더더욱 배우자감으로는 별로였겠죠. 그리고 장님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매력적이진 않고요.

시대가 시대이니 결혼을 못하고 있는 여자가 있으면 빠르게 시집을 보냈을 테고, 마침 '고수'가 사별했으며 마을에 결혼적령기 남성이 없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모는 '고수'와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다는 점에서 악하다기보다는 그저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사람'이 '순'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렇게 착한 효자가 왜 현실적이지 않지?'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전 글에서 자식은 'AB'이자 'C'인 존재라고 얘기했던 것을 바탕으로 보면 됩니다.

'순'의 아버지는 어리석고 고집이 셌고, 어머니는 올곧고 선했죠. 그러니 자식인 '순'은 당연히 '어리석을 정도로 올곧고 선하며' 이것에 '고집'을 부렸을 겁니다.


당연히 이 기반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몸소 실천하던 다양한 선행들이 있었겠죠. 아마 '순'이 다른 이들을 돕고 식량을 나눠 주고 어머니에게 말하면 칭찬을 듣기도 했을 겁니다. 이러한 추억들로 인해 어머니가 그리운 '순'은 더더욱 배운 것에 초점을 맞췄을 겁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현실적인 계모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가난한 집안에서 외부로 식량을 버리는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칭찬받으러 온 '순'을 타일렀을 겁니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아라."

"우리 먹을 것도 없다."

그러나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선함을 익힌 '순' 입장에서는 이전에 하던 것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정말 순수하게도 돌아가신 어머니랑 비교하는 말을 했겠죠.

"이렇게 해야 다 같이 잘 살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예전에는 이게 옳다고 하셨는데..."

이같이 말입니다. 아마 '순' 입장에서야 진심이었겠지만, 계모 입장에서는 모르는 척 긁는 말로 들렸을 겁니다. 계모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착한 '순'은 아마 계모의 말을 듣긴 했을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에게는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부분'도 있기에 계모가 말한 '부분만' 하라는 대로 했을 거라는 거죠.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밥을 나눠 주지 말라' 하면, 밥은 안 주고 반찬은 나눠 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이 계모를 욕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선행을 줄이는 '순'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봤을 테고, 그에 따라 '계모가 하지 말라더라' 하고 답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럼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레 ‘전처는 안 그랬는데 쯔쯔’로 시작해서 '순'의 생모에 대한 여러 미사여구를 늘어놨겠죠. 소문이란 그런 것일 테니까요.

당연히 이 말은 계모의 귀에도 들어갔을 겁니다. 아니, 동네 사람들의 시선만 봐도 알겠죠. 당연히 원인은 '순'이라는 것도 알아챘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 정도 수준이라면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버틸만 합니다. 어차피 가난한 홀애비 집으로 시집온 시점에서 이 정도도 못 버틴다는 건 말이 안될 테니까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한 해, 두 해 반복되고 임신까지 한 상태였다면, 슬슬 가정폭력을 저지르고도 남았을 겁니다. 단지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순'으로 인해 결혼한 뒤부터 임신할 때까지 매우 큰 상처를 받기도 했을 테니까요.

물론 처음에는 죽일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시절에도 살인은 중죄고, 거기다 전처의 아이였으며 마을에서 평판도 좋았으니 말이죠.


이러한 일들이 동생 '상'이 태어난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라지게 됐을 겁니다. 일단 '고수'는 자식보단 배우자를 우선시하며 와이프에 맞춰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계모가, 점차 다른 의미로 속을 썩이는 '순'에게는 냉대하고 자신이 낳은 '상'은 이뻐했을 테니 '고수'도 이에 따라 '상'을 더 편애하게 됐을 겁니다. 물론 '순'도 '상'을 이뻐했겠죠.


그러나 '상'이 커가면서 점차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순'이 월등히 뛰어나 그런 것임에도 마을 사람들은 '순'과 같지 않은 '상'을 보며 혀를 찼을 겁니다. '어미가 문제니 '순'처럼 하지 않는 게지'라고 말이죠.

아마 누군가는 직접적으로 '상'이 문제라고 얘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문들을 계모는 알게 됐을 테구요.

그러니 이제 단순 미움이나 냉대가 아니라 '순'이 증오스럽게 보였을 겁니다. 여전히 본인 고집대로 이웃에게 베풀며 집안 식량을 거덜내는 것처럼 보이는 '순' 때문에 자신이 낳은 '상'까지 욕을 먹으니 말이죠.


그래도 증오를 품는 것과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다르기에 아직까지는 직접적으로 죽여야겠다는 생각까지는 안 했을 겁니다. 아니, 정확히 하자면 죽일 계획을 세우는 것까지는 안 하고 있었겠죠.

그렇다면 어째서 죽이려는 시도까지 했을까요?


그건 아마도 '요'임금의 공주들과 결혼을 하면서 권력을 가지게 된 게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누누이 말했듯 죽이려고 했었다면 진작에 시도를 했을 겁니다. 그리고 부마가 된 것이 갑작스레 트리거가 되기에는 아직 설명하지 않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둘째이자 '순'의 동생인 '상'입니다. '상'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형이었을 '순'을, 왜 죽이려는 데에 동참을 했을까요?


사실 위에는 자세히 쓴 게 아니라 안 나왔지만, '순'을 죽이려고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인 게 '고수'와 '상'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상'은 '순'에게 그리 지독한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바로 부모의 세뇌에 가까운 잘못된 가르침 때문입니다.


말했듯, '상'은 태어나자마자 '고수'와 계모의 편애를 받고 자랍니다. '순' 또한 이뻐했기에 사랑받는 게 아주 당연한 입장인 것이죠. 그 와중에 부모님은 형인 '순'을 무시하고 노예 취급하는 듯한 언행을 일삼으니 자연스레 '상'도 '순'을 무시하고 있었을 겁니다. 아마 바보 취급을 했겠죠.


문제는 성장하여 동네에 나갈 때부터 발생합니다. '상'은 계모가 비교당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순'과 비교를 당했을 테니 아주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분명 집안에서는 형이 바보이고 혼나는 입장이었는데, 밖에 나오니 오히려 모두가 형이 대단하다고 하고 형만 칭찬하며 형과 자신을 비교하니 말이죠.


여기서 문제는 '상'은 어리기 때문에 감정 조절을 잘 하지 못하고, 마을의 평판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 마을 어른들에게 대들고 친구들과 싸우고 그랬을 겁니다. 자신의 세상이 부정 당한다고 느꼈을 테니까요. 또한 자신과 부모님이 틀렸다기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틀렸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을 겁니다.


더군다나 '상'은 현실적이고, 적당히 이기적인 계모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교육받고 자라게 되니 '순'의 행동을 이해 못하게 되는 건 더 심해졌겠죠.

이는 나이 먹을수록 그 차이가 더 뚜렷해지고, '순'을 제외한 온 집안이 욕을 먹게 되는 원인이 형이라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듭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로 증오가 쌓여가는 찰나에, '순'이 일대를 다스리던 임금의 공주 2명과 결혼까지 하니 나머지 가족이 선택할 일이야 뻔하게 되는 것이죠.

계모는 자신이 저지른 일로 자신이라면 당연히 할 것 같은, 그러나 실상 '순'은 절대 하지 않을 복수를 걱정하며 불안에 떨었을 겁니다.

'상'은 자기보다 못나야만 하는 '순'이 마을에서 잘나가는 걸 넘어서 임금의 사위인 부마까지 되고, 그것도 단순한 부마가 아니라 중책도 맡고 공주 2명과 동시에 결혼도 하니 질투심에 못 이겨 가구를 부순다든가 하는 등 난동을 피웠을 겁니다.

당연히 '고수'는 계모와 '상'에게 엄청나게 시달리며 자기 집안의 화목을 깨는 '순'이 싫어졌을 테구요.


그러다가 아마도 '상'이 제안했을 겁니다. '순'을 죽이고 형수를 취하면 자신이 부마가 될 수 있다고 말이죠. 그리고 마침 각자 다른 이유이지만, 그 근원이 되는 '순'을 제거하기만 하면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룰 수 있으니 죽이기로 결정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게 있었으니, '순'은 어릴 적부터 농사도 짓고 사람도 돕다 보니 매우 건강했을 테고, 집안의 모든 것도 '순'의 손 안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불이 나도, 우물에 떨어져도 '순'은 그곳이 어떤 구조이고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를 아주 자세히 알고 있었겠죠. 운이나 큰 기지가 아니더라도 살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겁니다.


물론 살 수 있는 것과 그런 짓을 저지른 가족을 용서하는 건 다른 일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순'은 용서를 했죠. 아니, 용서로도 모자라 그 후 왕이 되어서도 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동생 '상'에게는 땅을 내어주며 제후의 지위까지 주었습니다.


이후 부분부터는 서술한 책에 따라 여러 가지로 갈립니다. 누군가는 부모와 '상'이 뉘우쳤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고수'를 쫓아냈다고도 표현하며, 누군가는 끝끝내 계속 질투하고 틈을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결말이든 '순'은 계속 그들에게, 못해도 최소한 '상'에게는 잘 대해 줬다는 건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순'은 좋은 배우자도 둘이나 가졌고, 임금도 되었으며, 백성들도 잘 다스리면서 가족들도 잘 살게 해줬으니 행복했을까요? 아닐 겁니다.

아마 '순'은 행복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이유는 다시금 생모가 살아있을 적부터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순'은 생모가 살아있을 적엔 분명 행복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행복의 근원은 생모의 선함으로 이뤄진 행복한 ‘가족’인 겁니다.

생모가 죽고도 '순'이 어리석을 정도로 착하고 선함에 있어 고집을 부린 이유는 배운 것이 그것뿐이여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배움을 실천하게 된 이유는 행복했던 ‘가족’이 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순'이 내내 원했던 것은 올곧고 선함이 아닌, 그것으로 쌓아올려졌던 ‘화목한 가정’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재혼하는 것도,

계모가 들어오는 것도,

계모가 험담하는 것도,

동생이 태어나도,

부모가 편애를 해도,

동생이 자신을 무시해도,

온 가족이 나를 죽이려고 해도

용서를 한 겁니다.

아니, 용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을

어리석게도 끝끝내 놓지 못해 고집을 부리며

오히려 '가족'을 '붙잡고' 있던 겁니다.


하지만 그가 부린 고집은 매우 일방적이며,

타인의 감정이나 의사를 철저히 무시한 겁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유함과 선함을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강요‘한 것이죠.


그 결과 임금의 지위는 얻었지만

'고수'는 끝내 바뀌지 않았고,

현실적인 계모는 살기 위해 입을 다물었으며,

'상'도 권력의 나눔에 잠시 수그러들었을 뿐 진심으로 뉘우치진 않았을 겁니다.

결론은, 외적으로야 모두 '복종'하고 '예(禮)'를 갖췄지만 이는 가족으로서 '사랑'과 '효(孝)'로 화목한 것이 아닌, 원문의 내용 그대로 '권력'과 '권위'로 가족을 다스린 것이죠.

'치세'에서는 '승리'했을 수 있지만, 진심으로 원했던 '화목한 가정'에서는 철저히 '패배'한 겁니다.


그간의 '동몽선습 부자유친 편' 원문들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하늘이 정한 친한 관계입니다.

친하기 위해서는 가까이서 자주 봐야 하며,

가까이서 자주 보며 자식을 '보호', '양육'해야만 '부모'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보호'와 '양육'을 하기 위해서는 사랑해야지만 오랜 기간 유지를 할 수 있고,

자식은 이러한 깊은 사랑을 받았기에 자연스레 부모를 사랑하고 존중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잘’ 지속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서로의 '敎(교)'와 '諫(간)'을 통한 '소통'입니다.

'소통'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해보고 정리됐을 때 'C'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동몽선습'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어찌 보면 '내가 C로 존재한다'는 말은

결국 '부모가 부모로서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고,

'부모가 나를 사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자식은 '효를 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 글에 적었듯,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섭섭함이 있을 수 밖에 없겠죠. 그러니 필요한 것은 수직적인 관계로서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로서의 '소통'인 것입니다.


'관계'라는 것은 결코 일방통행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일방통행이어도 사이가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친한 관계가 아니라 '이득'과 '손실'에 따른 관계입니다.


그러니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이득을 따져서는 안됩니다. 가장 가까운 이조차 이득에 따라 달라진다면 나 개인은 완벽히 고립될 테고, 이는 결국 세상에 홀로 존재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누군가는 '고립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는데 잠시 고립을 선택하는 것과 돌아갈 곳이 없어 고립될 수 밖에 없는 것은 매우 다르죠.

여기에 더해 앞선 원문에 따라 부모와 자식을 '있는 그대로'로 보지 않아 고립됐다면, 스스로의 고립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까요?

이는 실상 돌아갈 곳이 있음에도 스스로 돌아갈 곳을 지워 놓고선 고립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결국 '고립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득을 따진다는 것은 굴복에 의한 관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언젠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힘의 '역전'으로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것이 육체적인 힘이 되었든, 지적인 측면에서의 힘이 되었든, 권력이 되었든 '역전'이 발생하면 자기도 모르게 했던 공격들로 인해 역으로 당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니 이러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 부모와 자식은 '敎(교)'와 '諫(간)'으로 악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서로' 타일러야 하는 겁니다.


이 일화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무리 가까이 있다 한들 '敎(교)'와 '諫(간)'을 하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되며, '소통'이 안 되면 오해와 불화가 쌓이게 되고, 이게 더 커져서 가족간에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살인까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더 나아가 아무리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옳다 한들, 강요하는 것은 안 좋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화목을 사랑하고, 선을 사랑하며, 유함을 사랑할지라도 그것이 '일방적'이라면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한들 강요가 되어 시기, 질투와 분노를 일으키며 증오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죠.


그러니 이 '순'임금의 이야기는 결코 '효(孝)'의 극치나 '효자(孝子)'의 도리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어리석을 정도로 도리를 고집하고 그 도덕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때 어떤 오해와 불화가 생기는지,

그리고 그 불화가 가족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나아가 끝내 모든 것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정작 가장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가까운 ‘친’한 관계일수록 '소통'을 해야 함을 강조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이 일화는 그간 '부자유친' 편에서 가르치고자 했던 모든 부분을 포함한 예시로,

이를 지키지 않으면 일어날 일들이 자세히 실려 있는

'부모, 자식 관계'의 '오답지'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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