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연휴가 끝났다. 1월도 지나갔다. 무력감이 밀려온다. 삶은 원래 허무하다지만 흘러가는 시간 앞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기장을 편다. 손바닥만 한 종잇장이 심판한다. 연휴에 한다는 건 다 했니. 1월은 무엇이 남았니. 연휴에 읽으려 빌린 책 3권 중 1권을 읽었다. 펴지 못한 2권에 대한 미련보다 1권의 완독을 축하하자. 장편소설이라 책 두께가 제법이다. 매일 같이 먹은 떡국 떡을 세로로 길게 세운 정도. 설에 뭐 했어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게 생겼다. 일주일 연휴 동안 인생에서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계획했다. 가령 회사 명함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어떻게 꿈을 현실로 만들 건지와 같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만 하는 일이다. 눈앞에 정어리떼가 아닌 드넓은 바다의 흰 수염 고래를 쫓는 일 같은.
심장이 요동친다. 핸드폰을 보니 이른 새벽이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었다. 매우 불쾌한 꿈이다. 눈이 떠진 김에 운동이나 가려 일어난다. 겨울은 연휴도 없다. 짙은 추위에 걸음을 보챈다. 일찍 나오니 지하철이 여유롭다. 적어도 숨은 쉴 수 있다. 버스를 기다린다. 아까보단 밝아졌지만 여전히 어두컴컴하다. 어젯밤 꿈에서 만난 괴한이 튀어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깊은 어둠이다. 꿈인가 현실인가. 눈을 감고 동트지 않는 거리를 헤엄친다. 흰 수염 고래는 어디에 있을까.
회사에 다다르니 숨이 턱 막힌다. 아가미가 없어서일까. 모니터 속 수많은 정어리에 정신이 팔린다. 이것도 저것도 못 잡고 시간만 빠져나간다. 허우적 되는 것도 업무로 쳐줄까. 하나만 걸려라는 심정으로 그물만 던지는 꼴이 우습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 그 돈이 주는 여유, 어찌 됐든 쌓이는 경력을 포기할 수 있을까. 살이 토실하게 오른 정어리떼를 지나쳐 드넓은 바다로 나아갈 수 있나. 질문은 쌓이고 답은 표류한다.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있는 갈매기처럼.
일주일 만에 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면 이미 답을 내렸겠지.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질문 앞에 온갖 핑계를 갖다 붙이며 답을 미룬다. 당장 퇴사할 용기도 새롭게 시작할 배짱도 없다. 어려운 쪽을 향해야 한다는데.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어려운 것을 향한다는데.* 지금도 삶은 어렵기만 한데, 더 어려운 길로 가야 한다니. 확실한 건 답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더 자주 더 깊이 들어가면 만날 수 있겠지. 운이 좋으면 수면 위로 뛰어오를 때 마주칠 수도. 이 모든 게 흰 수염고래를 찾는 여정이려나.
*p67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나온 구절이다.
[요마카세] 월요일 : 퇴사할 수 있을까
작가 : 흐름
소개 : 모든 것이 되고파 나 조차도 못 된 10년 차 직장인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