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That’s really a good question”
외국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저 문장을 들었을 때 나는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 외국 인터뷰를 보니 너무 흔하게 쓰는 표현이었다.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그거 진짜 좋은 질문인데?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리액션이었다. 저 대답을 들은 후 아무리 한국어로 비슷한 뉘앙스의 문장을 찾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유독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질문에 닫혀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말은 잘못 적용되어 점점 사람들이 질문하는 걸 무서워하게 만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하세요!라고 하니, 적막이 흐르고 아무도 질문하지 안 했다는 유명한 썰처럼
나의 학부 생활을 떠올리면 교수님이 강의를 끝내면서 “질문 없나요?”라는 말에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조용했다. 가끔씩 “질문 있습니다!!” 손을 번쩍 들고 질문하는 친구는 따가운 눈초리를 받기 바쁘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늘 질문하는 친구는 “죄송합니다”를 연신 외친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질문하기를 주저한다.
’ 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거 물어봐두될까?‘라는 마음에 조마조마하며 소심하게 질문할까 말까 고민 후 결국 손을 내리게 된다.
글을 못 쓰는 이유는 좋은 글을 몰라서 가아닌, 좋은 질문을 할지 모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그만큼 질문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선생님 말씀을 그냥 잘 듣고, 외우고, 주어진 문제를 빨리 푸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한 번 더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준다.
대학원생이 된 요즘, 학부 시절을 반성하며 “질문 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손을 올린다. 나의 질문으로 얻은 교수님의 추가 설명 덕분에 사람들은 “아~” 열심히 무언가를 받적고, 꼬리 질문이 이어지는 광경을 보니 나름 뿌듯하다. 덕분에 비싼 등록금을 시급으로 나누면 20,000원은 더 얻은 것 같다.
초등학교에 가니 반 벽에 수업 중 질문하지 않기 규칙이 적혀있었다. 물론 계속되는 아이들의 질문으로 수업을 방해받지 않으려는 목적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청개구리 선생님인 나, 내가 진행하는 수업 규칙으로 ‘질문하기‘를 당당하게 내세웠다.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건 한계가 있기에 아이들의 질문이 주는 힘이 필요했다. 축구공 하나를 던져주면 튼튼한 다리와 목표가 있는 골대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배 위에도 올려보고 공 위에 한 발로 서보고 다양한 세계를 자유롭게 상상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요마카세] 목요일 : 어린이의 위로
작가 : 아리
소개 : 어쩌다 조카 3명과 살게 된 싱글레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