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와 다시 학업에 전념하고자 했지만 여전히 괴로움은 가시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싫고 짜증이 났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꿰뚫어 보려고 또다시 애쓰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노력과 집착 사이 어느 한 샛길에서 방향을 잃은 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책을 펼치면 한 페이지도 못 읽어 나가겠고, 골프 치고 예쁜 카페를 가다 보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거라던 어머님의 말씀을 사실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힘들었다. 그리고 이 마음의 고통이 단순한 번아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이 감정에 대한 증오심이 더 불타올랐다 -- 번아웃은 몇 년 전 이미 경험을 해봤고 정신건강의학의 도움도 받아 봤다.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것은 ‘방황’이었다. 나는 이렇게 정의 내렸다.
그러다 문득 요가지도자과정을 함께 한 도반 분께서 나에게 요가대강을 권유한 것이 생각이 났다. 단순히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재능이 보이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이라며 ‘요가대강 단톡방’을 알려 주셨다. 그때는 ‘나는 박사 갈 건데, 그리고 나는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요가대가로서 멋있게 활동할 건데’라는 마음의 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방황을 하고 있는 지금, 나는 그저 호기심에 단톡방을 열어 보았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오는 대강요청에 역시 전문직을 해야 취직이 잘 되는구나 생각을 했다. 첫 번째 대강 구하기에 성공했다.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과 함께 인천행 버스를 타고 나섰다.
“인천까지 간다고? 왔다 갔다 교통비로 대강비 다 나가겠다.”
수지타산 맞지 않는 일을 왜 하냐며 어머니께서는 의아해하셨다. 그러나 경력 없는 초보강사에겐 경기도 외에 선택권이 없었다. 서울의 대강은 너무 빨리 마감되거나 경력 있는 강사를 원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이라곤 열정 밖에 없었다. 요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는 멀리멀리 경력을 쌓으러 다녔다.
첫 대강에 아쉬탕가라니, 너무 긴장이 되었다. 혹여나 순서를 까먹진 않을까, 요가원까지 가는 한 시간 동안 외우고 또 외웠다. 산스크리트어는 어찌나 어렵던지 봐도 봐도 도무지 외워지지 않았다. 수련한 시간이 몇 년인데 정작 가르치려고 하니 내 머릿속에 지우개라니. ‘손바닥에 커닝페이퍼를 적을까...’ 그런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눈 질끈 감고 외우고 또 외웠다. ‘그래, 모르면 동작으로 보여주면 되지, 문제 될 건 없어. 나를 믿자!’
“나마스떼, 저는 요가강사 다정..입니다...(?)” 너무나도 어색한 인사로 시작했다. “제가 오늘 첫 수업이라 너무 긴장이 되네요, 그래도 저의 안내 목소리와 함께 잘 따라와 주셨으면 해요. 그럼 힘차게 아쉬탕가 같이 시작해 보겠습니다. 매트 앞에서 서 주시고, 가슴 앞에 합장, 두 눈 감고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의 수업이 잘 마무리되고, 회원님들의 격려와 함께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너무나도 따뜻한 경험이었다. 매트 위에서와 같이 요가강사로서 함께 호흡을 나누는 일은 치열한 경쟁도, 아등바등의 노력도 필요 없었다. 그저 나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물론 요가강사로 활동한다는 것이 아무런 노력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수련에 전념해야 하며, 끊임없는 공부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세상은 피 터지는 노력 없이 도태하고 무시당하는 잔혹한 세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대강에 나서기 시작했다. 하루 한 타임만 일하고 와도 오늘 밥 값 벌었다며 뿌듯해했다. 나이만 먹었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기가 찬 듯한 표정이었다. 부모님의 눈에는 나는 그저 취미로 돈을 벌고 있는 것, 그뿐이었다. 그러나 싱글벙글 해맑게 매일 “나마스떼, 저는 요가강사 다정입니다”로 수업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번 회원님들의 긍정적인 평가는 나를 더 으쓱하게 만들었다. 나의 존재와 나의 힘이 한 명에게라도 영향이 간 듯했다. 지금까지 써 내려간 논문들은 이 세상에 얼마나 가치부여가 되었는가 반문하며 말이다.
수업 시작 전에 나의 자기소개는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날, 얼떨결에 모인 맛집 모임에서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나의 직업을 물었다. 지금까지 나는 학생, 또는 박사 준비생,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지? 나는 더 이상 공부하지 않았다. 나는 요가강사였다. “저는,, 요가강사예요...(?)” 또다시 어색한 인사로 나를 소개했다. 그렇게 내가 요가강사인지 박사 준비생인지 그저 그런 채로 어영부영 나를 요가강사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요가강사인가?라는 의구심과 함께 요가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