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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전시 하우투 - 관람객 가든씨의 일일

준비물부터 경험을 남기는 법까지, 소소한 꿀팁을 알려드립니다.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벌써 세 번째 올리는 이 전시 썰풀이 글을 지금까지 성실히 읽어주신 분들이 얼마나 계실지는 잘 모르겠다. 그 분들이라면 ‘그렇게 좋다는데 한 번쯤은 전시를 보러 가볼까’ 하고 마음이 동하셨을까 살짝 기대도 해 본다.(제가 전시 글을 쓰는 목표가 그것이기도 합니다. 호호) 이번 편은 그런 감사한 분들께 선물하는 소소한 꿀팁이 될 예정이다.


전시 관람은 평균 1~2시간정도 걸리는 이벤트다. 작은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는 30분 내외로도 다 볼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관람 계획을 세울 때에는 한시간 반~두시간 정도를 잡고 다니는 편이다. 규모가 크거나 영상 작품이 많은 전시는 꼼꼼하게 보면 3시간 이상이 걸리기도 하지만 평균을 내자면 그렇다.


그렇다면 ‘하루 종일 전시를 봤다’ 라는 말은 정말로 하루 종일 전시만 본 것일까? 아니다. 전시만 연달아 보면 일단 하루종일 서거나 걷는 셈이므로 체력적으로 너무 지치기도 하고, 너무 많은 새로운 정보가 뇌에 한꺼번에 들어와 뒤섞인 잼 상태가 되어 나중에는 은은한 후두부 두통과 함께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가 된다. 내가 기꺼이 매주 주말을 전시로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진짜 이유는 사이사이에 껴 있는 소소한 이벤트 혹은 루틴이 있기 때문이다. 떡 먹을 때 굳이 콩고물을 열심히 모아 묻혀 먹는 것처럼 가끔은 그 콩고물이 더 기억에 남기도 한다. 이처럼 하루를 전시로 잘 채우려면 그 사이에 기분좋은 휴식을 잘 끼워넣는 게 정말 중요하다.


더욱이 기쁜 사실 중 하나는 보통 전시를 ‘몰아 볼’ 수 있을 만큼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모여 있는 곳은 대개 놀러 나오기도 좋은 동네라는 사실이다. 몇 보 걷기만 하면 새로운 공간이 또 펼쳐지는 종로나(국립현대미술관-바라캇컨템포러리-국제갤러리-학고재-금호미술관-현대갤러리가 한두 블럭 안에 몰려 있다), 고급스러운 카페나 음식점이 즐비해 배 고플 일 없는 도산공원 일대(아뜰리에 에르메스-화이트큐브 서울-옛 코리아나미술관인 스페이스 씨-송은)는 언제나 약속 장소로 잡으면 적어도 평균 이상의 경험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느좋’ 플레이스도 정말 많다.


자 그러면, 한번 전시 차력쇼를 달리는 평범한(?) 하루를 온전히 따라가 보자. 이 가상의 하루는 어느 날씨 좋은 토요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하 국현미 서울) 및 그 근처 여러 미술관/갤러리에 가는 일정을 기준으로 한다.


아침 9~10시 기상

출근하는 날보다는 조금 늦게 일어난다. 직장인답게 7~8시 사이에는 한 번 깨지만,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잠에 들었다가 일어난다. 이러다가 완전히 늦잠을 자 버리는 바람에 눈물을 흘리며 모든 관람 일정을 빈 일정에 끼워 맞추게 되는 날도 있지만, 별다른 휴일 없이 직장인의 사이클에 익숙해진 상태라면 무난하게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외출 준비

전시 관람은 생각보다 상당한 체력을 요하는 유산소 운동이기 때문에, 최대한 편안한 복장으로 갖추어 입는다. 걷기 편한 신발 역시 필수다. 특히 재생 시간이 긴 미디어 작품을 아무데서나 털썩털썩 앉아서 볼 수 있도록 어두운 색의 하의를 추천한다. 화장도 귀찮다. 선크림만 바르고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나오는 날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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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로 발달한 전시 관람객은 수험생과 사실상 구분할 수 없다. 인스타에 올릴 멋진 뒷모습 사진을 찍어줄 사람도 없이 혼자 다니는 고독한 전시 차력사에게 멋진 착장이란 사치다. (가끔 기분 내고 싶을 때에는 꾸미기도 한다. 사진을 단 한 장도 남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가방 싸기

전시 차력쇼를 달려야 할 때 반드시 챙겨야 할 것들을 소개한다. 여기서 전시 차력쇼란,

관람 시간이 두 시간 이상 걸리는 큰 규모의 전시를 2개 이상 관람

관람 시간이 한 시간 내외인 규모의 전시를 3개 이상 관람

4개 이상의 미술관 혹은 갤러리를 순회하며 관람

수와 상관없이 5~6시간 이상을 전시 관람에 투자

을 하루 안에 해치워버리는 날을 말한다. 이 기준은 순전히 나만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준이다.


�전시 보는 날 추천 준비물

물/음료가 담긴 텀블러 - 국공립 미술관에는 보통 정수기가 있어 리필도 쉽다. (그러나 작은 갤러리는 해당사항이 없고, 서울시립미술관에는 아리수 정수기가 비치되어 있으니 수돗물을 싫어한다면 물을 구비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도 그렇지만) 카페인에 중독된 현대인이라면, 커피 테이크아웃 주문 시 할인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챙기는 것을 추천한다.

영양제 - 주로 오*몰 등 한번에 털어먹을 수 있는 고용량의 비타민제를 선호하는 편이다.

간식 - 주변의 멋진 카페 혹은 베이커리에서 조달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식비를 아끼고 싶다면 초콜릿, 파우치로 된 간편식, 팩 두유, 에너지바 등을 챙긴다. 지치면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으므로 에너지를 적절하게 주입해 주어야 한다.

보조 배터리 - 요즘은 환경 이슈로 인해 전시 리플렛을 pdf 파일이나 앱, 웬 AR 영상으로(2024년 광주비엔날레*의 처참한 선례가 존재함)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중요하다. 5년째 아이폰 12미니 어르신을 모시는 필자처럼 배터리 용량이 적은 기기를 사용한다면 필수이다. 반드시 곤란한 상황이 생기게 된다.


*광주비엔날레 사례 - 보조배터리를 챙겨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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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대참사라고 느꼈던 2024년도 광주비엔날레 AR가이드 웹 UX. 적정기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캐릭터도 귀여웠고 설명 내용도 좋았는데, 꼭 AR이어야만 했나요? 그래야만 했나요?


그 외에도 긴 이동 시간이나 애매하게 뜨는 시간을 함께할 가벼운 책(전시와 관련된 책이라면 더욱 좋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작은 노트와 펜 등을 챙기는 것도 좋다. 나는 올해부터 노트를 따로 마련해 전시 관람 시 지참하고 있다. 오디오 가이드를 선호하는 편이라면 이어폰도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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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및 기타 인문/사회/예술 관련 인풋을 전부 짬뽕해 기록하는 노트. 휘뚜루마뚜루 아무렇게나 막 들고 다닙니다. 아무거나 막 적기 좋은 편하고 핸디한 노트와 잉크가 콸콸 잘 나오는 펜만 있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습니다.


출발 및 이동

묵직한 가방을 챙겨서 나온다. 어차피 하루 종일 서 있거나 걸어다닐 예정이므로 체력과 관절을 아끼기 위해서는 최대한 앉아서 휴식하며 가는 것이 좋다.


미술관 도착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유명 빵집 대기자 무리와 관광객을 뚫고 국현미로 향한다.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국현미 서울의 앞뜰에 도착했다면,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티켓을 구매한다. 애호가라면 묻고 따질 거 없이 바로 통합권(5,000원)을 구매한다. 만약 우대조건에 해당된다면 누리도록 한다. (부럽다!)

나는 그 어떤 우대조건에도 해당되지 않아, 무조건 본전은 찾을 것 같다는 계산 하에 유료 멤버십(MMCA 가족)을 결제했다. (그리고 한 달에 최소 두세 번씩은 가는 중이다. 이미 본전은 뽑고도 한참 남았다..)


짐 보관

우리들의 어깨는 일회용이다. 강제 승모근 훈련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짐을 맡기는 것을 추천한다.


관람

관람은 지극히 개인차가 큰 부분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전시에서 단 하나의 작품만이라도 가슴에 깊게 남았다면 그 전시 관람 경험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왕 온 거, 사진도 찍고 설명도 꼼꼼하게 읽어 보는 건 어떨까? (나의 녹이듯 꼼꼼하게 보는 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 어려운 예술 및 철학 용어를 대체하는 ‘쉬운 설명’을 병기하는 경우도 많고, 전용 가이드 앱이 꽤 잘 되어 있어 적극 활용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보여지는 것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난해한 작품도 작가의 생애나 작품 세계 등 작품의 바깥을 알게 되면 거짓말처럼 이해가 될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국현미의 경우 전시 공간 바깥의 복도에 관련 도서를 함께 비치하거나 작가 인터뷰 영상 등을 함께 두는 경우가 있어, 관심이 가는 무언가가 있다면 살펴보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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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도슨트가 있다면 슬쩍 따라 다니는 것도 좋다. 개인적으로는 도슨트 주변으로 관람객이 몰리기 때문에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30분~1시간이라는 딱 적당한 시간동안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주요 작품을 살펴보게 되면 확실히 이해도 잘 되고 기억에도 잘 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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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으며 관람하는 것도 좋다. 국내 미술관은 해외에 비하면 사진에 매우 관대한 편인데, 이는 정말 큰 축복이니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사실 눈으로 훑어보며 느끼는 것이 관람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고도 생각한다. 멀리서 작품의 전체를 찍었다면, 가까이 가서 작품의 디테일을 찍어 보면 또 다를 것이다. 카메라의 줌 기능도 적극 활용해 보자. 환조 작품이나 대형 설치 작품의 경우에는 어디서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상당히 역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면 더 꼼꼼하게 살펴보며 알아가는 과정을 즐겨도 좋겠다.


요마카세_3_2.png (유머러스하고 능동적인 전시 관람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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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토크 등을 듣거나, 리플렛을 탐독하여 알아낸 즐거운 사실들이 있다면 이렇게 가방에서 아무 펜이나 꺼내 마구마구 적어도 본다. 참고로 이 사진은 난해하다고 느낀 전시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텍스트를 탐독한 후 비로소 어떠한 깨달음을 얻은 순간 기쁨에 차 찍은 사진이다.)


만약 어떤 작품을 보면서 다른 무언가(책, 영화, 게임, 다른 전시 혹은 작품, 사람, 사건, 사회 이슈 등 정말 무엇이든 다 좋다.)가 떠올랐다면 그것과 연결짓거나 비교하면서 생각을 확장해도 좋겠다. 아마 떠오른 이유가 분명 있을텐데, 동행이 있다면 무엇이 떠올랐는지와 그 이유를 말하며 자유롭게 감상을 교환해도 좋다. 분명 그렇게 감상을 나눈 작품은 훨씬 오래 기억에 남아 나중에 다른 작품을 감상하게 될 때 불쑥 떠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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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이다. 전시를 보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만큼 이렇게 전시 외의 다른 것들을 떠올리거나 작품의 알지 못하는 빈틈을 상상으로 채우며 보낸다. 머리 쓰는 일도 유산소 운동이라면 전시 관람은 정말 고강도 유산소 운동이다.)


주유소 경유

아, 드디어 하나를 다 봤다. 갑자기 당이 떨어지고 피곤한 기분이 든다. 카페인을 충전해야 한다. 잠깐 물품보관함에서 짐을 빼 미술관 바로 앞에 위치한 ‘파란 병 카페’로 이동한다. 사실 반드시 파란 병 카페일 필요는 없다. 미술관 안 카페도 (가격 빼고) 상당히 훌륭하다. 그냥 가깝고 쾌적하고 커피도 맛있는 곳이라 선호할 뿐이다.

요마카세_3_8.png (문득 정말로 파란 병 카페의 지브롤터 메뉴를 자주 간식으로 즐겼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겠다.)


통창으로 기와가 내려다 보이는 2층에서 마시면 좋겠지만, 휴식이 필요한 우리에게는 1층의 좌석으로도 충분하다. 가져온 전시 리플렛을 다시 보거나, 책을 꺼내 읽다가 인스타 스토리를 무한으로 넘기며 토요일 낮을 만끽한다. 관람과 관람 사이 카페에서 휴식하는 시간을 제법 사랑하는 편이다.


반복 또 반복

연료를 채우고 휴식을 마치면 또다시 미술관으로 가서 작품을 감상한다. 한 작품을 오래 녹이듯 들여다보다가, 사진을 찍고, 생각나는 것을 메모하고, 잘 모르는 정보는 인터넷에 검색도 하고, 전시를 보는 멋진 나의 사진을 SNS에 업로드한다. 벌써 밖은 어둑어둑하다. 사실상 화룡점정인 굿즈샵 혹은 미술관 내부 서점에 들러 가방에 굿즈나 도록도 좀 사서 집어넣으며 기분좋게 미술관을 나선다. (그리고 집에 가서 지쳐 쓰러져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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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 이걸 매주 반복한다. 이걸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런 글도 쓰게 될 만큼 썰이 쌓인다. 이제는 정말 ‘루틴’이라는 게 생겨버릴 만큼 ‘전시를 보는 주말’이 너무 익숙하고 편안하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여러 미술관 공간들이 어떻게 새롭게 바뀌어 있을지, 어떻게 또 예상하지 못한 생각으로 나를 데려갈지 기대를 안고 가게 된다.

누군가는 ‘매주 같은 걸 하는데 지루하지도 않나?’ 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어떻게 매번 다른 전시를 보는데 경험이 같을 수 있겠는가. 덕질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매번 다르고 매번 새롭고 짜릿하고 즐거운데 어떻게 그게 지루할 수가 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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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현미 2,000원부터 … 우리나라 티켓은 정말 저렴합니다. 단돈 2,000원으로 사랑을 시작해 보세요. 와! 전시회 티켓 붕어빵만큼 싸다!)

요즘 더 많이 하는 생각이지만, AI와 알고리즘 바깥에서 살기 어려운 일상일수록 나를 ‘예기치 않은 순간’으로 이끌어줄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나름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내 친구의 인스타 피드와 내 인스타 피드가 너무나도 달랐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언젠가는 나도 모르게 높게 쌓인 콘텐츠의 장벽으로 둘러싸인 가장 지적으로 게으르고 편안한 공간 안에 고립된 채 무뎌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스쳐 지나갔던 것 같다. 그 뒤로는 (원래도 새로운 걸 많이 찾아다니는 편이지만) 더 적극적으로 낯선 것에 나를 노출시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나를 낯선 인지적 충격으로 내던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전시 관람인 것 같다.

별 건 아니지만 나는 이런 과정을 자주 반복하면서 전시에 대한 좋은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랬듯, 우연히 발걸음한 미술관에서 몇 번의 결정적인 순간을 마주하고, 그 좋았던 느낌을 또다시 기대하며 주말을 미술관에 기꺼이 내어 주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코너 속 코너] 지금 당장 보러갈 만한 전시를 추천해 드립니다

<합성열병>, 스페이스 씨(강남구 언주로 827), 6월 28일까지

도산공원 인근 스페이스 씨(구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진행하는 <합성열병>을 추천합니다. 개인적인 총평부터 말해 보자면, 기술과 예술이 만났을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반응을 (굳이 어떤 관점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고) 폭넓게 살펴보는 전시라고 느꼈습니다.

제목은 자크 데리다의 ‘아카이브’에 대한 정의에서 착안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아카이브’란 단순한 기록의 나열이 아닙니다. 때로는 자기파괴적인 성격으로도 해석되는,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욕망이 뒤섞인 복잡하고 다층적인 합성물입니다. 이는 우리가 왜 과거를 기록하고 때로는 회귀를 열망(데리다는 이를 ‘아카이브 열병’이라고 지칭합니다)하는지를 탐구하기 위한 증거가 됩니다.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고 더 나은 결정을 하게 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마치 ‘미래를 말해주는’ 것만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AI 역시 인류가 여태 오랜 기간 쌓아 온 ‘기억’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죠. 무엇이 되었듯 외삽추론의 근거는 경계 내부에 있습니다. 미래의 근거가 과거에서 기인한다는 점은 참 흥미롭고도 모순적입니다. 인간이 망각을 통해 기억하고 기억을 통해 망각하는 것처럼요. <합성열병>은 이렇게 기술을 통해 모호해진 과거-현재-미래의 경계를 파고드는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입니다.

전시된 작품마다 기술과 예술이 조우하는 방식이나 접근하는 관점이 매우 다르니, 그 태도와 방식을 비교하며 관람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재생 시간이 긴 미디어 작품이 다수 있으니, 시간을 여유롭게 잡고 방문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플롯, 블롭, 플롭>, 아뜰리에 에르메스(강남구 도산대로 45길 7), 6월 1일까지

체력이 남으신다면 바로 근처에 위치한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김아영 작가의 전시 <플롯, 블롭, 플롭>를 함께 관람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과거와 현재, 관찰자와 경험자, 국가 간 경계, 현실과 상상, 거시사와 미시사 등 얼핏 생각하면 완전히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는 개념들이 작가의 관점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위해 뒤섞입니다.

김아영 작가는 철저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SF적 상상력을 가미해 사변적인 세계관을 그려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 왔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시각적인 완성도를 높임으로써 그 세계관을 훌륭하게 설득시켜내기 때문에 일단 시각적으로도 정말 즐겁습니다. 영상이나 전시 구성 자체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으니, 도산공원 인근에 갈 일이 있다면 슬쩍 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요마카세] 토요일 : 전시 왜 봐?

작가 : GARDEN

소개 : 주말마다(사실 평일에도..) 전시를 보러 다니는 직장인의 전시 보는 이야기입니다. ‘전시 왜 봐?’ 라는 질문에 짧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상상해도, 무엇이 펼쳐져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들을 글로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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