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나의 여름이에게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아! 짜증 나”

문득문득 올라오는 이 짜증을 어찌하면 좋을까. 이불을 차고, 에어컨을 켜고, 손부채를 부쳐도 가시지 않는 이 짜증은 이유가 없었다. 마치 갱년기처럼 온 이 아이는 나를 너무나도 괴롭혔다. 밤에 자다가도 벌떡, 오후에 가만히 있다가도 불끈, 무언가 ”불편함”이라는 것이 내 몸 안에 불덩이처럼 찾아왔다.


“누가 사무실에서 괴롭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연구소에서 작성해야 하는 30개국에 대한 설문조사 보고서는 그 양이 너무 방대해서 데이터 정리만 하는데 힘겹고 지루했다. 이것 때문일까? 가슴이 답답하고 묘하게 버겁다. 워드와 엑셀을 연동해 ”편지”라는 기능을 알려준 친구가 이렇게 하면 더 이상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며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그러나 데이터가 너무 많아 내 컴퓨터는 자꾸 나와 같이 뜨거워지기만 했다.


“아! 또 먹통이야. “

또다시 짜증이 올라온다. 이렇게 저렇게 보고서를 잘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꼬이는 데이터와 먹통인 컴퓨터를 보며, 나는 왜 이것 하나 못할까? 자책해 본다. 그러나 그 자책이 이 불편감을 없애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책”이라는 아이까지 나에게 와 버렸다.


“아! 왜 이렇게 짜증이 나지?”

이 짜증은 꼬여버린 데이터로부터 촉발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언가, 어디서부턴가, 나에게 잘못됨을 인지했다. 그러나 이유를 모르니 답답함은 더해져만 갔다. 묘하게 꼬여버린 내면 안에 감정은 처음 겪는 것 같은 감정이었다. 말로 표현하면서도 표현되지 않는 이 감정을 더 이상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


그래, 여름에 왔으니 ”여름이”라고 부를게.

그 후부터 짜증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여름이가 왔어.”


어쩌면 “여름이”가 왔을 때 내면 안에 있는 감정을 다루는 법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정의 내려지지 않은 어떤 특이한 감정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여름이”와 그 해 여름을 함께 했다. 물론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이 ”여름이”는 장미 같은 존재였다. 가시 가득 제 한 몸 실컷 보호하면서, 나는 날카롭게 베어버리는 나쁜 아이. 그러나 한 발 자국 멀리 떨어져 고요히 바라보면 참 아름다운 그 아이. 나에게 와줘서 미우면서도 고마웠던 그 아이에게 마음을 담아 인사한다: ”안녕, 그리고 안녕.”

image (2).png 찬란하게 날카로웠던 나의 여름이에게

삶이란 망망대해에서 방황의 눈빛으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칠 때, ”여름이”는 나에게 왔다가 떠나갔다. 이유 모를 불편감을 줬던 나의 ”여름이”는 또다시 누구에게로 갔을까, 누구를 괴롭히고 있을까? 괴롭힘을 당하는 그 친구는 “여름이”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진 않을까? 만약 나의 ”여름이”가 당신 곁으로 갔거든, 조금은 넓은 아량으로 그 친구를 잠시 허용하길 바란다. 째려봐도 좋고, 눈길 하나 안 줘도 좋으니 당신도 이렇게 인사해 보길 권해본다: “여름아, 안녕? 그리고 안녕.”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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