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씻고 있던 중이었나? 잠깐 쓰레기 버리고 온 사이였나? 왜 진동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전화를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한 고민은 얼른 덮어두었다. 초저녁부터 잠자는 침대의 여왕이 되어 버리는 엄마가 이 시간에 전화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엄마가 전화를 걸어온 시간은 밤 10시 30분, 부재중을 확인한 시간은 11시.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엄마가 늦게까지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노력은 하시는데 이내 잠자는 침대의 여왕이 되어버린다) 좋아하는 방송이 방영되는 날도 아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은 마음에 재빨리 전화를 건다. 안절부절못하며 동동거리는 내 마음과 달리 전화 너머로 들리는 연결음은 참으로 평온하다. 으응~ 누가 들어도 깊은 단잠에 취해 있던 목소리다. 전화 연결음보다 평온하고 어린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나긋함이란 이런 거지 싶은 목소리다. 마음이 놓이면서도 아마도 전화를 받지 않는 나를 뒤로하고 눕자마자 태평하게 자고 있었을 엄마를 상상하니 피식 웃음도 나온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묻는다.
“늦은 시간에 전화했길래- 무슨 일 있었어?”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깊은 잠에 취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대답하는 게 분명하다. 잘 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전화를 끊는다.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인데, 딸 목소리가 듣고 싶다는 다정한 엄마의 사랑 고백을 받은 마음에 찾아온 것은 목울대를 조여 오는 슬픔이었다.
본가에 있는 날이면, 취침 전 꼭 이행하는 나만의 의식이 있는데 우리 집 강아지 짹슨이에게 다가간다. 옆으로 누워 네 발 뻗고 잘 때도 있고, 배를 까 보이며 발라당 누워 자기도 하고, 안쓰러울 정도로 잔뜩 웅크려 잘 때도 있는 우리 집 짹슨이. 작은 머리를 매만지다 콧등을 쓸어 올리고, 포실포실한 배를 쓰다듬는다. 마사지받는 듯 시원한지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있고, 만져주는 게 기분이 좋은지 이렇게 저렇게 자세를 바꿔가며 쓰다듬어 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때론 그 모든 게 귀찮은 건지 눈만 멀뚱하니 떠서 나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 눈을 바라보면 깊은 슬픔에 빠지고 만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니, 내가 오늘도 널 외롭게만 두지는 않았니, 너의 하루는 어땠니, 어디가 아픈데 말을 못 해서 우리가 몰라주는 건 아니니. 자주 찾아오지도 못하는데 산책이라도 더 시켜줄걸. 이런저런 질문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다, 그 폭포수가 떨어지는 종착지는 단 하나이다. ‘오래오래 살아줘’ 그렇게 눈을 보며 간절히 부탁한다.
딸이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는 이토록 다정하고 따뜻한 말과 쓰다듬고 주무르며 느끼는 강아지의 온기, 단 한 번이라도 들어보고 싶지만 영영토록 들을 수 없는 눈빛의 언어 앞에서 꽤 자주 슬퍼진다. 지금은 직접적으로 듣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이 언젠가는 마음에만 남는 그리움이 되어, 사무침으로 되짚어보는 흔적만이 되어 버릴 미래가 덜컥 찾아올 것만 같아 속절없이 마음이 쓰러지고 만다.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는 털북숭이, 느끼고 싶어도 느낄 수 없는 온기,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눈빛들. 왜 나는 벌써부터 상실과 부재의 아픔을 지레 겁먹고 아파하는 것일까. 이렇게 미리 예방주사를 맞는다면 그 순간에 덜 상처받을 수 있을까. 덜 아파할 수 있을까. 덜 슬플 수 있을까.
잔뜩 겁난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하나의 씨앗이 보인다.
언젠간 아파하고, 슬퍼하고, 상처받을 것들.
그건 내가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해 마지않는 것들.
그렇다면, 겁쟁이가 돼도 좋지 않을까-
[요마카세] 화요일: 절찬리 기록 중
작가명: 세렌디피티
소개: 쓰고자 하는 마음에 사로 잡히다가, 이제는 쓰고자 하는 마음을 붙잡아 놓질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버렸습니다. 무엇이든, 어찌 됐든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