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K장녀로써 ‘엄마와의 거리두기’는 평생 숙제이다.
네 남매를 키워낸 희생적인 우리 엄마는 동생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늘 장녀인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엄마의 훌륭한 중재자이자, 필요할 땐 무서운 회초리였다. 동생들은 엄마 말은 듣지 않아도 내 말은 곧잘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갈등상황이 끝나고 나면 언제나 나만 나쁜 사람이 되어있었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나를 통해 전달하고, 엄마가 원하는 걸 얻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희생적이고 착한 엄마’로 돌아갔다. 그리고 난 어김없이 ‘무섭고 잡도리 하는 언니’가 되어 있었다. 이 상황을 평생 반복하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십 대 후반 심리학을 전공하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엄마의 꼭두각시이자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였다는 것을.
최근에도 둘째와 셋째가 크게 다투는 일이 있었다. 다시는 엄마한테 이용당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동생들의 싸움에 피가 말라 죽을 것 같다’는 엄마의 전화를 난 이번에도 외면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온갖 감정적인 말을 쏟아내며 나에게 하소연을 했고, 난 늘 그랬듯 감정이 격해진 엄마를 진정시키고 엄마를 대신해 해결책을 찾아 가족들에게 공표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에는 내가 내놓은 해결책이 엄마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둘째 셋째를 적당히 혼내고 화해시켜주기만을 원했지만, 나는 몇 년 동안이나 계속된 둘의 싸움의 근본적인 문제는 성인이 된 자녀들이 엄마 집에서 독립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고, 동생들에게 각자 독립할 것을 제안했다.
결국 이번에도 나만 ‘동생들을 몰아붙이는 나쁜 언니’가 되었고, 엄마는 ‘불쌍한 자식들을 한없이 품어주는 좋은 부모’가 되었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평생 반복한다더니.. 나도 이렇게 나이를 먹고, 부모에게서 독립해 내 가정을 꾸리고, 내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여전히 엄마와의 탯줄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찹찹해졌다.
사실 문제는 엄마도 가족들도 아니었다. 바뀌지 않을 사람이라는걸 알면서도, 이용 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엄마를 위해 칼춤을 춘 건 결국 나였다. 엄마와의 거리두기도 결국 내가 책임지고 해내야 할 몫이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적당한 거리가 꼭 필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다만 내 무의식 속에 ‘엄마의 감정을 무시 하는 건 불효’라는 비뚤어진 관념이 매번 내 죄책감 버튼을 누르는 것을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모를 뿐.
심리학에서도 무의식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배웠다. 무의식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를 때, 그것이 ‘무의식의 자동장치’라는 걸 알아차리고, 객관화 하고, 빠져 나오는 것을 반복하는 수밖에는 없다.
오랜 시간 형성된 비틀린 모녀관계를 곱씹다 보니, 문득 이제 막 3개월 된 우리 딸과 나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지금은 땅콩만한 이 아이가 나중에 자라 성인이 되었을 때,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하게 될까? 나는 이 아이와의 탯줄을 적절한 시기에 잘 끊어낼 수 있을까? 앞으로 우리 딸을 키우면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나의 무의식에 대비하기 위해 스스로 몇 가지 다짐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딸에게 죄책감을 무기로 쓰지 말 것.
내 부정적인 감정을 아이에게 전가 하지 말 것.
감정에 휩쓸리는 엄마가 아니라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엄마가 될 것.
[요마카세] 목요일 : 어쩌다 엄마
작가 : 초보맘 비키
소개: 서른다섯에 엄마가 된 초보맘 비키, 자유로운 영혼에서 '엄마'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딸에게 남기는 성장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