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호주로의 이민을 결심하게 된 건 작년 이맘때쯤 남편과 호주 여행을 다녀와서였다. 사실 난 해외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10대 후반부터 20대까지, 미국에서 보낸 10여 년의 시간을 통해 해외에서 산다는 것이 그리 꿈만 같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10여 년을 사는 동안 영어가 편해졌고, 일상적인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을 만큼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깊은 수준의 대화에서는 극복할 수 없는 큰 장벽을 느꼈다. 취업에 있어서는 영주권자나 시민권자가 아니면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평생 ‘이방인’, 그리고 ‘유색인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 내 나라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또한 무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편이 처음 친누나가 살고 있는 호주로 가서 살고 싶다고 얘기 했을 때, 난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작년 내 인생 첫 호주 여행은 내 마음을 단숨에 뒤집어 놓았다.
내가 느낀 호주를 세 단어로 표현하자면 자연, 건강 그리고 가족이다.
첫째, 호주의 자연은 감동 그 자체였다. 우리가 갔던 골드코스트와 퍼스는 둘다 해안 도시였는데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골드코스트는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을 따라 늘어선 우뚝 솟은 고층 빌딩들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진풍경을 보여줬다. 바다를 따라 이어진 비치워크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반면 퍼스는 도시가 좀 더 크게 잘 발달되어 있고, 서호주 특유의 에메랄드 빛 바다는 너무 투명해서 바닷속 모래 결조차 보일 정도였다. 이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 때문에 어딜 가나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둘째, 호주는 건강에 진심인 나라였다. 비치워크에는 이른 새벽부터 러닝하는 사람들과 서핑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새벽 4시 헬스장은 출근 전에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 였다. 길거리엔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고, 뚱뚱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트에선 음식 포장마다 건강 레벨을 표시한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심지어 일반 빵이나 유제품에도 프로틴이 기본 옵션처럼 들어가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건강과 운동에 이렇게나 심취한 나라는 호주가 처음이었다.
셋째, 호주는 모든 게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였다. 대부분의 카페와 상점들은 이른 아침에 문을 열고, 저녁이 되기 전 거의 문을 닫는데, 처음엔 이게 너무 불편 했다. 하지만 며칠을 지켜보고 깨달았다. 호주인들에게 저녁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라는 전제가 사회 전체에 깔려 있던 것이다. 학교나 직장에서도 가족과 관련된 일정이라면 최우선으로 배려를 받는다고 한다. 그게 호주의 문화이고, 시스템이고 사회적 합의였다. 그래서 호주에서는 엄마들도 별 무리 없이 육아와 일을 동시에 이어나갈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마련되어 있었다.
호주에서 이 세가지를 깨닫고 나니 마치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았다. 그 세 가지 가치는 내가 평생 추구해왔던 삶의 방향성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그 동안 찾아 헤매던 삶의 모든 답이 다 그 곳에 있었다. 해외생활이 가진 수많은 어려움과 불편함을 감수할 이유도 바로 그 곳에 있었다.
그렇게 나는 결심했다. 나와 남편을 위해, 그리고 미래에 태어날 우리 아이들을 위해, 호주로 떠나기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이민 준비는 바로 시작됐다. 두렵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확신이 더 컸다. 마치 이미 가야 할 방향이 정해져 있던 사람처럼 일사천리로 조사를 하고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겼다.
30대 중반, 많은 사람들은 이민 가기엔 늦었다고 말하고, 한국에 남는다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지금이, 내가 평생 원해왔던 삶을 위해 comfort zone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가장 완벽한 시기라고 느껴진다.
준비 과정에서 계획에 없던 임신과 출산을 하느라 일정이 조금 뒤로 밀리긴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처럼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결국 우리가 원하는 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요마카세] 목요일 : 어쩌다 엄마
작가 : 초보맘 비키
소개: 서른다섯에 엄마가 된 초보맘 비키, 자유로운 영혼에서 '엄마'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딸에게 남기는 성장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