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지갑을 두고 온걸 지하철 개찰구까지 가서야 알았다. 시간 딱 맞춰 나왔는데 운동 시작까지 10분 남았다. 지각이다. 집까지 뛰어가 신발 신은 채 까치발로 지갑만 구출한다. 이미 늦었지만 최대한 빨리 가려 부리나케 역으로 달린다. 골목을 지나려는데 주차된 오토바이 때문에 벤츠가 지나가지 못한다. 화가 잔뜩 난 아주머니가 차에서 내린다. 정말 누구 하나 때릴 것 같은 기세다. 바로 앞 연어덮밥 가게에서 배달 음식을 든 어린 여자분이 나온다. 본능적으로 아주머니를 말리러 뛰어든다. 누군가의 싸움에 끼어든 건 처음이었다. 아주머니는 격양된 목소리로 ‘너 중국인이지.’ 예상치 못한 말이다. 여자도 지지 않는다. ‘한국인인데 어쩔 건데.’ 음식을 배달통에 넣자마자 오토바이는 떠난다. 아주머니를 진정시키며 자초지종을 듣는다. 차가 오는 걸 보고도 버젓이 길을 막으며 오토바이를 주차했다고 한다. 그래 화날만했구나.
무사히 운동을 마치고 나오니 부재중 전화 1통 찍혀있다. 예전 회사 친한 동료다. 반가운 마음으로 다시 전화를 한다. ‘놀라지 말고 들어, J 어머님 돌아가셨데.’ 아버지를 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머니도 돌아가시다니.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어떻게’만 연발하고 저녁에 장례식장에서 보자며 전화를 끊는다. 한참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엄마와 딸 사이에 명언이 있다. 엄마 하곤 같이 못살아도 엄마 없이는 못 산다. 엄마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는거지? 엄마가 생각나 전화를 건다. 밥은 먹었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이것저것 묻는다. 다음 달 태어나는 조카 선물 이야기로 전화를 끊는다. 아 인생 허무하다.
늦은 밤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며 부둥켜운다.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전이되어 더 이상 손쓸 수 없었다고 한다. 요 몇 달간 J가 살이 쏙 빠진 이유였다. 속도 모르고 무슨 다이어트 했냐며 말한 날이 스친다. 미안함만 배가 된다. 장례식장을 나오는 길 갑자기 눈이 내린다. 눈 소식이 있었던가.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다 손을 내민다. 손바닥에 닿기 무섭게 녹아내린다. 쌓이지는 않을 것 같다고 중얼거린다. 아침에 만난 벤츠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화내서 무엇하리. 눈 녹듯 사라지는 게 인생인데.
[요마카세] 월요일 : 그냥 살 순 없잖아?
작가 : 흐름
소개 : 이해할 수 없는 인생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