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지 않은 꿈을 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경찰관, 농구선수, 축구선수, 치과의사, 목회자 …
학교에서 내민 종이 한 장 중 아주 작은 한 칸을 차지했던 ‘장래 희망’ 란에 써냈던 어린 날의 내가 꿈꿨던 직업 목록이다.
미취학 아동시절 드라마 속 제복 입은 여성의 당돌함과 나쁜 사람을 잡고 벌주는 정의감이 제법 멋있어 보여 경찰관을, 한국 농구의 전성기 시절 허재의 광팬이던 엄마의 ‘남자로 태어나면 허재 같은 농구선수가 돼’라는 태교 덕분이었는지 체육 유망주로 촉망받으며 운동선수를, 중학생 진학 이후로 만난 의사 선생님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치과의사를, 대학 입시생일 땐 누군가의 생을 보듬어줄 수 있는 위로자가 되고 싶어서 목회자를 꿈꿔왔다. 꿈들마다, 때마다의 이유가 서려있다.
꿈꾸던 어린 날에는 ‘논스톱,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와 같은 시트콤을 매일 저녁 빠짐없이 챙겨보고 ‘무한도전, 1박 2일, 서프라이즈, 도전 천 곡’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매일 주말 아침을 시작하고 저녁을 마무리했다. 티브이를 보며 시청자 역할 이상의 꿈을 꿔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시청자로 충분히 행복했기 때문에 -
그랬던 내가 N연차 방송작가로 브라운관 너머의 숨은 일꾼이 되어 있다.
안정적인 경찰 공무원과 달리 고용 불안정을 숙명으로 각오하고, 누군가의 삶을 함께 짊어지는 촉촉한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1인분의 삶을 겨우내 감당하고 있는 퍽퍽함과 촉촉함의 경계에 머물고, 존재를 옭아매는 것들로부터의 자유함을 찾아 운동을 탈출구로 삼고 있는 방송작가로 말이다.
꿈꾸던 것들로부터 다소 거리가 멀고 상반되어 있는 현실을 살고 있는 셈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꿈꾸던 것을 ‘이루지 못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는 이런 삶을 ‘실패’라고 하려나?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과 같은 아쉬움은 있지만, 이따 만큼 멀어져 있는 꿈과 현실의 이격은 다행히도 상처로 남지 않았다. 왜 그것을 이루지 않았냐고, 왜 그것을 이룰 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았냐고 자책하지 않았다. 혹은 그 노력과 재능이 아깝지도 않냐고 탓하는 일도 없었다.
나에게 방송작가는 이루지 못한 꿈의 대체품이 아니라 어느 날 예고 없이 방문한 또 다른 꿈이다. 앞으로 연재될 차수에서 어떻게 이 꿈에 가까워졌는지 계속해서 이야기 가겠지만, 방송작가는 ‘우연히’ 생긴 작은 소망이 생각지도 못한 ‘기회와 인연’이 만들어낸 현실이고 삶이다.
이처럼 때론,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내 삶에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단정 지었던 낯선 것들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삶의 한 가닥을 차지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틈새가 주는 가능성’에 위로를 받는다. 꿈꾸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과 성취도 분명 나를 행복하게 하지만 꿈꾸지 못한 가능성들이 새롭게 써 내려가는 ‘삶의 여지’가 참 다행스럽고, 반갑고, 애틋하다. 그 여지는 앞으로 걸어갈 우리네 인생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마카세] 화요일 : 읽히지 않은 인생
작가 : 세렌디피티
소개 : 긴 시간을 살진 않았지만 깨달음 중 하나는 야심찬 계획은 기꺼이 어그러지며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통제되지 않는 인생의 파편들은 마음에 흉터를 내기도 하고 의욕으로 곧게 서 있는 두 다리를 꿇어앉히게도 합니다 마음의 흉터는, 꿇어앉은 다리는 ‘인연, 우연, 기회’ 라는 전혀 다른 모양과 색깔의 가능성을 만나 아물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걸어갈 힘을 얻으며 인생이란 팔레트에 스스로 낼 수 없는 다채로운 색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만났던 그리고 여전히 만나고 있는 ‘인연, 우연, 기회’ 를 들려드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