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헤매며 무작정 떠났던 안동 봉정사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선생님 저 안동으로 가보려고요. 남은 2주 수업은 다음 기수에 참여해도 될까요?”
요가 지도자 과정을 밟는 도중에, 모든 것을 다 제치고 떠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고작 2회의 수업만 들으면 자격증이 나올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나는 왜 고통스러울까? 요가철학 수업 때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배웠다. 내가 지금 고통스러운 이유는 어떤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구나. 그러나 나는 어떤 집착을 내려놓지 못한 것일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공부하는 것 나에게 있어 즐거운 일이었다. 때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재밌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저명한 학자가 되는 것이 꿈은 아니었지만 계속 공부하면서 토론하고, 번잡한 세상살이를 이론화하는 것이 나의 낙이라고 생각했다. 또, 석박을 마치고 연구원이 되거나 교수가 되어 끊임없이 공부를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길이 막혀 버렸다.
박사 지원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기간이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처음부터 한 번에 잘 될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2년의 시간을 거쳐 지원해 보려고 했으나 1년 만에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공부가 너무나도 하기 싫어진 것이다. 내 마음의 괴로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합격 통지서를 한 군데에서도 못 받아서 낙심을 했던 것일까?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공부에 대한 열정이 단지 여기 까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괴로웠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숨 쉬기가 어려웠다. 답답하고 암울했다.
내가 좋아하는 또 한 가지가 있다--요가. 나의 삶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저녁 7시 땡 하면 모든 것을 멈추고 조교실을 나갔다. “너 요가하러 가지? 내일 봐!” 친구들은 모두 내가 요가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만큼 좋아했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 1시간 요가 수련은 무조건 지켰다. 아마 요가가 아니었다면 나의 정신은 더 피폐해졌을 것이다. 눈앞에 쌓여 있는 reading list와 한 주 한 주의 과제는 버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게 만들었다. 눈 깜짝하면 중간고사, 기말고사, 논문심사, 졸업. 어느덧 나는 졸업을 했다.
힘든 학업의 기간 동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은 요가수련을 할 때였다. 시끄러운 머릿속을 고요하게 만들고, 요동치는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요가였다. 시간이 날 때면 3시간 연강을 들을 만큼 요가원은 포근한 곳이었다. 나도 언젠가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요가대가로서 학생들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제2의 인생으로 요가인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흑발의 젊은 내가 요가 지도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멋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