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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돌고 도는 이모 사랑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막내 이모가 결혼하기 전까지 이모는 우리랑 같이 살았다. 내 방에 들어와 이것저것 만져보는 지금 내 조카의 모습을 보면 어릴 때 나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8살 어린이에게 20대 성인 여성의 화장대는 새로운 놀이터였다. 이모의 눈썹 칼로 이리저리 가지고 놀다 눈썹이 반쪽이나 나간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이모와 이모 친구 손을 잡고 민속촌에 놀러가 같이 이모들의 삼촌이야기를 하고 TV를 못 보게 하는 부모님을 피해, 이모방 에 들어가 개그콘서트를 같이 보며 이제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다는 뿌듯함으로 일요일 저녁을 마무리했다.

지금의 나의 조카들이 나에게 하는 행동과 어릴적 나와 이모의 추억을 고스란히 재연한 것 같다. 아직도 막내 이모랑 오랜만에 통화하면 편안하게 이야기하며 마냥 친구같다.


그리고 나의 또 다른 할머니이자 엄마같은 큰 이모 엄마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큰이모는 5남매의 가장인 존재였고 엄마는 할머니보다 이모를 더 잘 따랐다. 그때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토요일이 되면 이모 집에 갔다. 내 기억에 토요일 저녁 유행했던 프로그램 ‘스펀지’가 보고 싶었는데 그 시간대에 집에 혼자 있어야 했다. 같이 볼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마다 이모네 집에 놀러가 스펀지를 마음껏 보며 이모와 시간을 보냈다. 이모는 “항상 넓은 너희집 놔두고 왜 좁은 이집에 와” 농담 처럼 이야기했다. 이모가 있는 집이 너무 좋았다. 갈 때마다 맛있는 간식으로 꽉 채워져있는 냉장고, 이모가 만들어준 돌솥 비빔밥의 뜨거운 온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머리가 아픈데 딸기 먹으면 나을 것 같다는 말에 바로 딸기를 한 박스를 사오는 이모. 엄마와는 또 다른 따뜻함이 작은 집을 가득 채웠다. 이모는 가끔 딸기를 사며 내 생각을한다 했다. 지금 와서 이모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때 이모도 외롭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매주 이모를 찾아가면서 그 시간이 이모에게 큰 행복이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의 빈자리를 알게 모르게 채우며 따뜻한 추억을 쌓았다.


이모의 사랑 속에 깊이 안기며 나는 언젠가 내 조카들에게 주어야 할 사랑을 미리 배운 것 같다. 그 덕분에 지금 내 조카들에게 한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전할 수 있다. 이모로부터 받은 사랑이 다시금 내 조카들에게 흘러가고 있음을 느낄 때, 나는 이모라는 존재에 감사함을 더 깊이 깨닫는다. 이모로 살아가는 건 내게 단순한 역할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순환을 경험하게 하는 선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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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마카세] 목요일 : 어린이의 위로

작가 : 아리

소개 : 어쩌다 조카 3명과 살게 된 싱글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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