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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돌이켜 보면, 성장통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방송작가는 어떤 일 해요?” 하는 일이 ‘방송작가’라 답하면 따라오는 단골 질문 중 하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까. 요약해 말하기엔 하는 일이 광범위하고 그 종류도 다양하고, 하나하나 나열하기엔 이렇게까지 궁금한 건 아니었을 질문자를 당황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작가’는 소설, 시, 에세이 등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며 ‘사진작가’는 피사체를 찍고, ‘드라마 작가’는 극본을 쓸 거라고 쉽게 상상이 된다. 같은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졌건만 ‘방송작가’가 하는 일은 좀처럼 유추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방송을 만드는 사람이겠거니 싶을 뿐이다.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하는데?라는 질문을 동반한 채로.


매일 출근하는 상근직과 일주일에 N번만 출근하는 비상근직으로 나뉘는데 기본적으로 9 To 6와 같이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직장인들의 루틴과는 다른 삶을 산다. 출근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퇴근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방송작가는 오늘 출근해서 언제 퇴근할지 모르는 숙명을 마주해야 한다.


첫 방송작가의 시작은 일주일에 세 번, 아침 10시 오후 5시에 퇴근하는 루틴이었다. 굉장히 이상적이지 않은가! 남들보다 느지막이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고, 출근 안 하는 날에 자기 계발과 취미활동을 하기에 너무 좋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퇴근 후, 출근을 하지 않는 평일에도 심지어 주말에도 일은 찰떡같이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나는 일에 집착할 마음이 1도 없는데 일은 스토커처럼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녔다.


겨우 겨우 섭외를 끝냈건만 이런저런 이유로 결정을 번복하는 경우들이 있다. 대체할 다른 출연자를 찾기 위해 검색 엔진을 다시 가동하고, 핸드폰 통화 목록에는 010으로 시작되는 번호들을 계속 쌓아간다. 전화를 돌릴 때마다 같은 멘트를 되풀이하는 자동응답기가 되어 버리고, 바짝바짝 마르는 입에 수분을 채워줄 텀블러도 옆에 고이 두어야 한다. 찾은 아이템 리스트를 메인 작가님께 말씀드려 OK 사인이 떨어지면, 그때부터 긴긴 통화(취재)가 시작된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 반 이상. 이 시간 동안 상대방을 진심으로 궁금해야 한다. 방송 일을 하면서 깨닫는 건 ‘이유 없는 출연’은 없다는 것이다. 방송 출연 이유가 될만한 특이성, 특별성, 독창성, 기이함 같은 ‘개성’을 발견하는 것이 방송작가의 역할이자 역량이다.


그리고 이를 ‘무조건적으로’ 해내야만 한다. 당장은 계속해서 거절당하더라도, 섭외해야 할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하더라도 해낼 때까지 킵고잉이다. 방송 펑크가 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 게 방송작가니까. 그렇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씨름을 하다 보면 어느샌가 끝이 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방송을 마주할 때면, 방송이 끝나고 올라가는 스탭 스크롤의 수많은 명단 중 내 이름 석 자를 바라볼 때면 그래 저걸 위해서 내가 그 개고생을 했지 생각하며 성취감, 뿌듯함, 묘한 승리감을 느낀다. 그렇게 일주일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선조들의 지혜를 체감해 왔다. 그 주기가 일주일이라 다행일성 싶다.


약 3-4년 간의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반복되는 업무 루틴’이었다. 어제 처리한 업무와 오늘 처리한 업무가 다르지 않았고 앞으로도 달라질 기미가 1cm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삶에서 ‘의미’가 중요한 나에게 일의 단순한 반복은 도태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물론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은 달콤하고, 일의 당위성이 되기에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월급이 주는 기쁨은 떨어진 혈당을 끌어올려주는 한 조각의 초콜릿 정도에 불과했다. 나를 안주하게 만드는 순간의 달콤함, 그뿐이었다. 월급이 일에 대한 건강한 욕심과 삶에 대한 애착을 만들어주진 못 했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혈기 왕성한 20대의 나는 보다 더 특별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유명세를 얻거나 대단한 업적을 이루거나, 높은 자리로의 승진과 같은 특별함 아니다. 다만 삶의 터전 삼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같이 더불어 사는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다. 30대가 된 지금도 이 마음엔 변함이 없고 오히려 소망의 채도는 더 짙어져 있다. 앞으로 나이를 먹어도 이 마음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매일 같은 나이고 싶지 않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방송작가가 하는 일로 섭외, 취재, 대본과 같은 일의 목록을 나열해 답할 수 있지만, 왠지 이렇게만 답하는 건 영혼 뺀 시체를 내놓는 듯하다.


섭외를 하고, 취재를 하고, 대본 쓰는 일을 반복하며 발견된 의미들이 있다. 세상과 사람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되는 너른 시야를 선물 받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좌절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어서, 대신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대책 없는 성실함의 근육이 자라기도 하고, 일주일마다 송출되는 방송 그 자체로 매주 수고했다 위로받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참여한 방송을 부모님과 지인들이 재미있게 봤다고, 방송을 통해 도움 받았다는 출연진의 연락에는 내가 세상에 작은 점만큼이라도 기여했구나 하는 안도감을 받기도 한다. 결코 쉽게 얻어지진 않았다. 성장에는 성장통이 따르는 법이지만, 이만큼 성장해 있을 내가 있을 테니 멈춘 것보다야 기쁘게 마주할 일이다! 이 글을 쓰며 생각 나는 노래가 있으니 들으며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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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걸 어째 나 또 한 단계 성장해 버린 거잖아

끝!인 줄 알았지

눈물과 땀을 양분으로 자라

알아봐 주면 좋긴 하다만

티가 나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어

넓어진 보폭, 광명의 시야

이 느낌은 억만금을 줘도 못 사

기특해, 기특해, 기특하다.

기특해, 기특해, 나 참.”


- 윤하, 기특해



[요마카세] 화요일 : 읽히지 않은 인생

작가 : 세렌디피티

소개 : 긴 시간을 살진 않았지만 깨달음 중 하나는 야심찬 계획은 기꺼이 어그러지며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통제되지 않는 인생의 파편들은 마음에 흉터를 내기도 하고 의욕으로 곧게 서 있는 두 다리를 꿇어앉히게도 합니다 마음의 흉터는, 꿇어앉은 다리는 ‘인연, 우연, 기회’ 라는 전혀 다른 모양과 색깔의 가능성을 만나 아물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걸어갈 힘을 얻으며 인생이란 팔레트에 스스로 낼 수 없는 다채로운 색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만났던 그리고 여전히 만나고 있는 ‘인연, 우연, 기회’ 를 들려드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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