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다음날 출근할 생각에 일요일 저녁부터 불안하다. 아침부터 또 뭐라 하겠지? 걱정부터 앞선다. 내 전임자는 팀장과의 미팅마다 청심환을 먹었다 한다. 그마저도 소화가 안 돼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닐 것만 같았다. 몇 개의 폭탄이 쌓였을까. 결국 그는 회사를 그만뒀다. 내 미래인가 속이 쓰라린다. 출근이었던 팀장은 아침에 갑자기 일정을 바꿔 재택을 한다. 휴. 한시름 놓는다. 온라인 미팅으로 대체해 주간보고를 마친다. 월요일 별 탈 없이 시작한다.
예측 가능한 불행은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번에 못 타면 지각인데 뒤이어 오는 만원 버스에 발을 동동 구르는 것처럼. 월요일에 팀장과 미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평온했던 휴일은 마음 졸이는 일요일이 된다. 관객에게 정보를 주고 스스로 예측하게 해라.‘ 스릴러 영화의 대가 히치콕의 말이다. 히치콕은 관객에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던진다. 터지던 터지지 않던 발아래 놓인 폭탄은 이미 관객의 내장을 파고든다. 예측 가능한 불행이 다가온다 느낄 때 현실은 스릴러가 된다.
어떻게 해야 폭탄 앞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팀장과 미팅 자체는 내게 불안이다. 그렇다면 사건이 불안을 만드는 것일까. 사실 미팅은 죄가 없다. 주간 보고 하는 시간일 뿐 불안을 자아내지 못한다. ‘이번에 버스 못 타면 끝이야.’ , ‘팀장은 화부터 내고 비난만 할 거야.’ 미팅과 불안 사이에는 마땅히 그러할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대로 예외 없이 폭탄은 터졌나 곱씹는다. 오늘만 해도 팀장은 화를 내지 않았다. 잘못된 믿음이 삶을 스릴러로 밀어 넣었다.
눈앞에 상황을 어떻게 느낄지는 내 마음이다. 그 마음을 선택할 자유는 내게 있다. 상황의 주인은 내가 아니지만 마음의 주인은 나다. 그 자유를 잃지 않아야 한다.
[요마카세] 월요일: 퇴사할 수 있을까
작가 : 흐름
소개 : 모든 것이 되고파 나 조차도 못 된 10년 차 직장 인 기록